00:00
00:00
00:01
Transcript
1/0
시그리스 10장 19절부터 마지막 절까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오.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심에 우리가 마음의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혔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밑불신이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죄를 법만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이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패한 자도 두세의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장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저. 전날에 너희가 빚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란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너희 잔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깐 후면 오시리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오.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아멘. 39절 말씀까지 보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그 말씀을 펴놓고 잠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 성령의 충만하심을 이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허락하여 주시며, 말씀을 듣는 귀한 영혼들에게 말씀을 들을 필요를 허락하여 주시사. 이 시간 하나님께서 저희가 깨우쳐 알기에 필요한 귀한 진리의 말씀이 전하여지고 들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다고 하였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룰 이 죄인에게는 아무런 능이 없으나 그러나 살아있는 말씀이 오늘 이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시며 우리 마음 가운데에 필요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방금 찬양대가 찬송한 찬송을 보면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다 하는 이러한 찬송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다니. 세상에 얼마나 귀한 것이 많은데. 내 아들을 보면 얼마나 귀한데,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보면 얼마나 귀한데, 내 직장, 가게에 가서 보면 그 할 일이 얼마나 귀하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데, 그게 무슨 말인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니. 이것이 아마 어느 분에게는 생소함. 그것이 무슨 말인가? 왜 저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찬송을 하고 있는가? 아마 이렇게 들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생각해 보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은 이 눈에 보이는 지금 이 삶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계속 여러 모양으로 거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잠시 잠깐이면 이 세상은 지나간다. 이 세상에서 하던 모든 것은 잠시 잠깐이면 지나가고, 그 후에는 무언가 따르는 것이 있다고 여러 모양으로 거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하는 사업이 중요합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특별히 개력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우리가 하는 사업이 하나님께서 주신 일입니다. 우리 손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일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을 맡아가지고 망치로 무엇을 박는 일을 하든지 또는 무엇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조립하는 그러한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학교에서 어떠한 사람들 가르치든지 배우든지 이러한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그 일을 힘써서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일을 하는 가운데, 생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없이 영원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하는 일만을 바라본다면 이것은 참으로 헛된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그러한 시절을 겪었겠지만 아마 이 가운데 그러한 시절을 지나가는 우리 청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삶이란 무엇이냐. 자기 노트에다가 착 써놓고 삶이란 무엇이냐. What is life?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고 내가 앞으로 직장생활하는 것은 무슨 뜻이 있고 이제 이런 것을 삶에 대해서 생각하고 인상을 쓰면서 깊이 생각에 골똘해지는 이러한 시절들을 여러분들이 지나가 보았고 아마 그러한 시절을 지나가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 우리가 우리가 하는 일만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의 일만을 본다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 후에 죽고 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우리가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는 참으로 어디에 있는가? 그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 참으로 여러 가지로 애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여러 곳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우리의 삶은 헛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은 이제 영혼을 창하여 나아가는 한 과정인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닷가에 쌓은 어떤 모래성과 같이 이제 잔뜩 쌓아놨다가 한번 물이 들어왔다가 싹 나가면은 없어지는 그러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그것은 영원히 남는 그것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오겠습니다. 우리가 영원을 우리가 할 때에, 영원, 끊치지 않는 시간, 그래야 시간이 그치고 영원이라고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그리고 그것을 주관하시고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거기에 참된 우리의 삶의 원인이 있고, 거기에 이유가 있는 것을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 찬양대가 부른 찬양의 그 의미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하여보지만은, 모든 관계를 맺어보지만은, 그러나 주 예수보다는 귀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예수 그리소를 발견한 사람들의, 예수 그리소를 믿은 사람들의 공통된 고백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귀한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사는 삶은 헛된 삶이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한 과정인 것을 생각할 때에, 그리하여 영혼을 향하여 가는 과정인 것을 생각할 때에, 예수 그리소를 믿지 못하고 사는 삶은 그 삶은 허비된 삶이다 하는 것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여러모로 말씀하시며, 오늘 이곳에서도 그러한 진리를 우리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 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 삶에서 행한 대로 거기에 따르는 대가를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간 그 모든 과정이 헛되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한번 이제 우리가 죽어지면 그것이 우리와 함께 무덤 속에 들어가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남아서 그것이 우리의 행한 대로 대가를 받는 것이 반드시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기독교만의 진리는 아닙니다. 그 모든 종교가 그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한 그 업에 따라서 거기에 대한 보응을 받는다 하는 것이 그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모든 도덕이 그것을 가르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돌아볼 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는 평균하지가 않습니다. 정말 선하고 우리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악하고 못된 사람들 앞에서 구박을 받고 비박을 받다가 그저 죽어가는 경우들을 우리가 봅니다. 그저 악한 자가 이기는 세상 같고, 악한 것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이 오늘날의 세상이라면 여기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선을 행한들 무슨 뜻이 있고, 악을 행한들 무슨 뜻이 있겠는가? 이것에 대한 피변적인 거기에 대한 악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되겠고, 선에 대한 보상이 또한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할 수밖에 없는 피변적인 필요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때에 그것이 반드시 있어야 될 수밖에 없다 하는 것을 또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호소할 때에 그의 호소 중에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주께서,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시면 불가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이시라면, 하나님께서 오르신 분이라면, 옳은 사람과 그른 사람을 한꺼번에 똑같이 취급한다면,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취급한다면, 그것은 옳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로 행하실 것이 아닙니까? 공의로서 선과 악을,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는 것이 그 아브라함의 기도였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성경이 그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관에 심판하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린도 후소 5장 10절에서 보면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오른 것을 옳다고 하시고 그른 것을 그르다고 하시는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관의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얘기를 들었을 때에 조금 희망이 생깁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고통을 받고 저 못된 사람이 나를 괴롭히지만 그러나 이제 심판받을 때 그때 가서 한번 봐라. 그때 네가 가서 한번 하나님 심판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보면 그때 한번 맛을 보겠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 서더라도 그래도 나는 좀 착하고 나는 좀 선한 일을 많이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나는 그래도 좀 받아주시지 않겠는가 아마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얘기할 때에 두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에 비켜서 우리를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누구를 보아도 너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그래도 죄가 없다고 하실 수 있는 분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형제를 미워하면 곧 그는 살인한 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삶 가운데에서 누구를 행여나 미워한 적이 있으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살인하지 말라 하는 그 법을 어겼다고 말씀해 주시고 오겠습니다. 또는 여인을 보고 음심을 품는 자마다 또는 남의 가진 좋은 것들을 보고 그것을 보고 욕심을 내거나 그것을 보고 부러워하며 그것이 내 것을 만들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면 그러한 것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내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했는데 우리가 부모를 참으로 공경하며 항상 그를 섬기며 그를 순종했는가? 주안에서 순종했는가? 하나님의 법을 우리가 앞에 놓고 알면 알수록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인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행한 것이 대가가 있고 우리의 삶에 행한대로 갚아주신다고 했는데 그런데 나의 행한 것은 죄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아는 사람들이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을 제공해 주시고 계십니다. 19절 말씀을 보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탐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오.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심에 우리가 마음의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혔으니, 천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첫 번째로 우리가 생각한 것은 우리 삶에서 행한 대로 우리가 대가를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으로 발견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또한 오늘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상급을 우리에게 거저 주시었다고 여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 근래에 처음 오신 분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시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생각해 나온 가운데 분명한 것은 그는 죄없으신 그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지만은 그리고 그는 영원한 하나님이지만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서 피를 흘리셨다고 오늘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흘리셨는데 왜 피를 흘리셨는가? 그것은 우리의 죄를 씻혀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없애하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휘장을 열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하여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까 염려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그가 열어주셨다고 오늘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이 구약 성경을 보시면 그 아수에로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이 상당히 독재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왕으로 있을 때에 사람들이 그 앞에 나와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그 잘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왕 앞에 그 사람들이 나왔을 때 왕이 이제 앞으로 오라고 자기가 손에 들고 있는 호를 내밀면 그 앞에 나오시겠지만 그러나 왕이 나 너 오늘 만나기 원치 않는다 하면 그 사람은 당장의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왕이었습니다. 이때 그 에스들과 마음 가운데 귀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생명과 자기 민족을 위한 소원이 있을 때에 그 왕 앞으로 나가기가 너무도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나갔을 때에 그가 나갈 길을 얻었고 그 앞에 나갔을 때에 그가 자기의 소원을 얘기하고 그 소원을 다 틀어주는 그러한 자리까지 그가 나갔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을 얻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셨다고 오늘 성경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크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죽으시면 이제 십자가에 못 받게 하시면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필요한 모든 제사를 들이시고 그가 부활하셔서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성경이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영원한 상급의 약속이 거저 주어졌을 때에 이 약속을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할 수가 있는가? 우리가 돈을 많이 내면 그것을 우리에게 받을 것인가? 또는 우리가 어떠한 지성을 오래하면 그것을 받을 수가 있는가? 그러한 길을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기만 하면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대신해서 세상에 오셨고, 그가 나를 위해서 피를 흘리셨고, 그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고, 그가 나를 위하여 사셨고, 그가 나를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다고 하는 것을 믿기만 하면, 그리하여 자기의 죄를 깨닫고 그 앞에 가지고 나가서 나의 행한 죄를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의 피로 씻혀주시옵소서 그 앞에 믿음으로 구하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씻혀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 삶에서 행한 대로 우리가 대가를 받되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죄의 삶이 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상급을 거저 약속해 주시고 믿기만 하면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음의 말씀을 이제 우리가 들었을 때에 아, 그래? 그러면 내가 한번 믿어볼까? 손해 볼 거 없겠는데? 예수 믿는다고 한번 말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을 열어준다고 하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회개하며 나오는 자들을 주님께서 결코 내어줬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구원받는 길을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말씀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에 이것을 잘못 이해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 성경 말씀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요한 진리를 거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진리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앞에 죄 용사함을 받고 구원 받은 믿음은 약속된 상엽을 받을 때까지 참고 견디는 믿음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았다고 했으니까 내가 한 번 20년 전에 그 교회에 다녀보았고 그때 교회에서 내가 수례도 받았고 그때 내가 무슨 직분도 받아보았고 나는 이제 그때 구원받았으니까 이제는 지난 20년 동안 내가 하나님 없이 살았지만 그러나 아무 염려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은, 참된 믿음은 약속된 상급을 받을 때까지 참고 견디는 믿음이라고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믿음을 주실 때에 그두도 하여금 참고 견디는 믿음을 허락해 주신다고 구원받은 믿음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오겠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은 우리가 참으로 믿는다면 23절 말씀을 찾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10장 23절 말씀 보면 또 약속하신 이는 믿붓이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차부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복음이 정말 귀한 것이라면 정말 우리가 찬송한 대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한 영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귀한 복음이라면 우리는 이 믿음에 흔들리지 말아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으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하기에 이것을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혼자의 힘으로서는 그저 혼자 떨어져서는 우리가 구원 받는 믿음은 각자 가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것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서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받는 믿음은,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활은 남을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생활이라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지난 새벽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격려한다 하는 이 말은 원래 좋지 않은 뜻을, 그러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격려한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시는 학생들은 그것을 지나오지 못했지만, 오래전에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신 분들은 그것을 아마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데모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때는 한일관계 무슨 이런 박정희 대통령 할 때 그거에 이제 반대하는 그거 데모들을 했던 그러한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이 데모할 때 보면은 그것이 그저 다 학생들이 한꺼번에 야 나가자 해서 나가는 게 아닙니다. 몇몇 학생들이 있습니다.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그저 꿈입니다. 데모꾼입니다. 그래서 학교만 오면은 이제 그리고 제 눈치로 볼 때는 아마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는 대모할 마음이 더 생깁니다. 그래가지고 시험을 앞두면, 야 우리 나가자. 이제 우리 나라를 생각해가지고 우리가 여기 앉아서 시험 보고 있을 때냐. 나가서 우리 한번 붙자. 그래가지고 선동을 합니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붙기 시작해가지고 선동이 되면 점점 무리가 커지고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 교문 바깥으로 나가서 돌을 던지면서 천둥을 넘어가가지고 칠리탄이 터지고 이러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런 선동입니다. 이 선동하는 사람들이 보통 열심히 아닙니다. 공부 시간에 공부하고 있으면 들어가가지고 애들을 막 잡아 끌어냅니다. 야 이 놈, 야 이제 너는 의리도 없이 우리는 이제 나가서 이제 그 나날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데 너는 이제 앉아가지고 시험 보려고 하냐. 이제 의리 없다고 막 잡아 끌어내가지고 억지로 선동을 합니다. 그러한 단어입니다. 격려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그저 나 혼자 선하게 살면 됐지 뭐 난 뭐 어떻게 하든지 그저 가만 놔두자. 이것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기 위하여 서로 사랑을 행하기 위하여 선동하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잡아 끌어가지고 서로 사랑하게 하고 서로 선한 일을 하게 하고 이것이 믿음 받은 사람들의 생활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오겠습니다. 또한 그뿐만 아니라 모여기를 피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이는 사람들입니다. 모이는 것을 점점 게을리 하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아무리 잘 믿었다고 하더라도 20년 전, 30년 전에 자기가 산끼도를 쉬없이 하고 왔다고 할지라도 오늘 그가 모이지 못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의 신앙은 위험한 자리에 있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있는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임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방도로 주신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지키게 해주시고, 하나님 앞에 같이 기도함으로 은혜 받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같이 모여 성찬을 나누며 또한 세례하며, 또는 이러한 하나님 안에서 친교하며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리가 참고 견디기에 꼭 필요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귀한 방도인 것입니다. 구원받은 신앙은 이러한 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붙잡는 신앙입니다. 모이기를 그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생각하고 이제 회사에 나갈 때에는 골치가 좀 아프고 하더라도 거기는 기를 쓰고 나가더라도 그저 교회에 나갈 때 날이 좀 굳이다든지 조금 머리가 이쪽에서 찡 하면은 에이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한다면은 그것은 순서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구원이 중요하다면은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다면은 모이기를 힘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이 참고 견딜 수 있는 귀한 도구로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고 피를 흘리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또한 믿은 자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의 용서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죄의 용서함을 받은 자들에게 따르는 것이 있는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살아있을 때 행한 일이 따른다고 그리하여 그들의 착한 행시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은혜로운 약속을 주셨을 때에 이 약속을 믿지 않냐 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형벌이 따른다는 것을 또한 성경은 주의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거져주시는 은혜가 있고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있을 때에 이것을 믿지 않고 이것을 그저 농담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거짓말로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헛소리로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이 따른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29절 말씀을 한번 내려다 보시기 바랍니다. 기브리스 10장 29절 말씀.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해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명을 욕되게 하는 자에 당연히 받을 경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영원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하고, 그가 나의 죄를 시킬 수가 없다고 하고, 그가 죽은 것은 자기 힘이 없어가지고 로마 사람에게 잡혀서 죽은 것이라고 하고, 나는 그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그래야 그를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그가 세상에 와서 사기한 사람으로 인정한다면, 그리하여 그 하나님 아들의 명예를 짓밟고 그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기의 발로 짓밟는다면 그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그가 자기의 거룩한 피를 흘려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흘렸을 때 그것을 아무런 뜻없는 부정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거기에 따르는 심판이 얼마나 중요하겠는가 생각하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이러한 것을 위하여 역사하시며, 성령님께서 이러한 것을 인처주시며,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증거했을 때에 성령을 거짓말하는 자로 인정하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에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가끔 사람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은 사랑인데 뭐 하나님은 그 사랑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뭐 큰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여러분들이 가정을 생각해 보면은 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을 사랑을 하십니다 여러분이 어릴 때 자라날 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여러분의 아버지를 참으로 안다면, 여러분의 어머니를 안다면, 그러나 여러분을 사랑하는 그분이지만, 그러나 그의 뜻을 어겼을 때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분이 그분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우리가 지도하려고 할 때, 너 누가 제일 무섭냐? 그러면 아빠가 제일 무섭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들에게 말이 전해지고, 어떻게 하면 교육이 될까? 이렇게 하면서 얘기하다 보면 아빠가 무섭다. 왜 무섭습니까? 아빠가 항상 그저 자기를 미워해서 무섭습니까? 사랑하니까, 다른 이웃보다는 자기를 사랑하니까, 자기가 잘못되었을 때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먼저 와서 자기를 징계하고 훈계하는 사람이 아버지니까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의로운 신체 판장입니다. 불의를 용서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10편, 7편에서 말씀하시기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죄를 보실 때 그는 분노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자기의 죄를 하나의 앞에 내어놓고 나의 죄를 시켜주시옵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 피라를 가지고 오지 아니하고 나는 죄 없다고 하며 자기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 칼을 가르시며 그 화를 이미 당겨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전명하신 하나님께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고 11에서 10장 3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갚으리라, 또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절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가는 것이 무서울 진자. 과거에 이러한 하나님의 권고를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그 실수하였다, 그것이 잘못됐다 하는 것을 자기들이 멸망을 당할 때에야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은 그저 아무렇게나 살아가다가 죽으면 끝나는 삶이 아니고, 우리의 삶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행복된 삶을 약속해 주시고 거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은 그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나오기만 하면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참고 견디며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 이러한 은혜가 있을 때에 이러한 것을 찾지 않고 일한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를 떠나가라고 하는 두려운 말씀을 받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그 삶이 얼마나 헛되고 얼마나 험한 삶이 되는가 하는 것을 오늘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삶만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가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나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 앞에 불을 짓고 그를 믿고 살아가는 삶만이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고 그 삶이 영원한 성급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삶이다 하는 것을 오늘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시고 또한 그와 함께 영원한 축복의 약속을 제공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말씀 가운데 있는 인도함을 받고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며 그리고 그 구원을 붙잡고 참고 견디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줄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이 이 자리에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지기를 소원하며 나온 귀한 영혼들이 쌓아온 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저들의 마음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귀한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기의 모든 죄를 회개하며 내어놓고 그를 바라보며 그를 통한 후원의 역사를 소유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자리에 구원받고 믿음의 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지치고 피곤한 심령이 있거든, 예수 그리 쏘아내는 영원한 그 약속을 바라보며 다시금 힘을 얻게 허락하여 주시고 장래 있는 영광을 바라보며 오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향하여 힘써 걸어가는 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모두가 그날 주님께서 저희를 심판하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자로 발견되게 허락하여 주시며 주님과 함께 영원을 축복 가운데 지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지낼 수 있는 은혜를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저희 삶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사 이 자리에 나온 저희 모든 무리가 예수 그리소를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게 허락하여 주시며 예수 그리소를 통하여 주신 은혜를 붙잡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귀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온 사랑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특별히 간고하오니, 아버지 하나님 오늘 전한 말씀이 여러 가지로 생소할지라도 그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깊이 생각하게 하여 주시며, 이 말씀이 계속 그 마음가운데에서 들려지게 허락하여 주시어 구원받는 귀한 믿음에 이를 수 있도록 주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이 가운데에 행여나 세상의 어려움 때문에 시험을 받고 아버지의 세상에 흔들리며 세상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자가 있거든 아버지 오늘 이 말씀이 그 마음속에 들려지는 말씀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여. 뒤로 물러가는 자들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심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고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오. 힘들수록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귀한 믿음을 저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교회가 이 일을 위하여 사용받게 허락하여 주시오. 구원받는 백성을 더하여 주시며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귀한 은혜의 역사를 저희 가운데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급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감동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후원받으며 또한 그 안에서 참고 견디며 승리하며 그 나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귀한 주님의 성도들 가운데 이제로부터 영원히 함께할 지어다. 아멘.
The Severity of the Judgment of Christ (Korean)
Series Series in Hebrews
Sermon ID | 9230015234 |
Duration | 40:39 |
Date | |
Category | Sunday Service |
Bible Text | Hebrews 10:19-39 |
Language | Korean |
Documents
Add a Comment
Comments
No Comments
© Copyright
2025 SermonA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