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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맨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 2장 18절에서 마지막 29절까지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입니다. 도하디라 교회의 사제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내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나누니 내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그러나 내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배를 내가 용납하미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꿰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주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오 또 그로 더불어 가늠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란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도와드려야 남아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이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 일을 다스려 질긋 깨트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줄이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잠시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시간에도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예배도 예배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예배가 생애 첫 예배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오니, 우리의 심령을 주님의 은혜로 충만히 채워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분주한 세상 일을 생각하는 것을 잠시 내려놓게 하여 주시옵소서. 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이 한날 주님 안에서 쉬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단에서 연약한 설교자가 섰사오나 주의 성령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일하여 주시옵소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떼를 얻던지 못 어떤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힘입어 부족한 종단에 섰사오니 성령께서 함께하여 주셔서 믿음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이 시간이 온전히 주님께만 드려지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천상의 교회는 완전하고 흠이 없는 교회이지만 그러나 이 땅에 있는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상의 교회가 완전함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끊임없이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격려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일곱 교회의 편지들을 살펴보면서 주님이 얼마나 열정을 가지시고 한 교회 한 교회를 돌아 보시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그들의 용기를 북두다 주시고 끝까지 신실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호된 책망을 하시며 순결함으로 완전함으로 나아가라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피려고 하는 이 두아디라 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대조가 되는 교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자칭 사도라는 자들의 그 거짓댐을 잘 드러냈고 본별하여서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렸죠 그러나 오늘 살피려고 하는 이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과 사랑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 모습이 처음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칭찬을 들었지만 그러나 그 대신 거짓 선지자 이세배를 물리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상의 한 교회가 완전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세워져 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이 일에 우리의 소망을 둔다면 우리가 이 일에 진정한 가치를 깨달고 우리의 마음을 이곳에 두며 우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여 드린다면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 순결한 교회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두아디라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세 가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서 기억해야 하는 진리는 참된 믿음은 선한 행위를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선한 행위를 산출한다는 것입니다. 고원 없는 믿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믿음이 역사하는 곳에 선한 행실이 열매로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9절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내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오니 우리는 19절 상반절에 나와 있는 단어들의 그 배열 순서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 섬김과 인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이 섬김과 인내를 낳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에서 우리의 사랑과 믿음과 소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바울이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19절에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다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 사실 인내라고 하는 그 단어를 우리는 소망이라고 그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인내할 수 있습니까? 소망이 있는 사람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자살합니다 너무 안타까운데 삶의 소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의 소망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그런 비참한 일들이 있는데 여러분, 누가 끝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립니까? 그것은 소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인내라고 하는 그 단어를 우리가 소망이라고 바꿔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한 교회 안에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의 모습이 아름답게 맺혀져 있는 이 모습 여러분 얼마나 사모할 만한 그런 모습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갖지 못했던 모습이죠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지만 그리고 거짓된 가르침들을 물리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두아디라의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이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런 모습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두아디라 교회는 일시적으로 일정 기간만 이런 완벽한 모습을 갖췄던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9절 하반절입니다. 내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내 나중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여러분 어떤 모습을 아름답다고 하십니까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웅장한 그런 산들을 바라볼 때 아름답다 또 어떤 분들은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또 감탄하시면서 아름답다라고 그렇게 말하기도 하겠죠 여러분 우리는 영적으로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런 모습인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하고 그것을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돌밭이 나오죠. 돌밭에 뿌려진 씨는 잠깐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 씨가 자랐습니다 그래서 곧삭을 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해가 뜨겁게 쬐어올 때에 뿌리가 없으므로 시들어 버렸던 것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교회가 잠깐 동안 처음 열정을 가지고 잘 시작하였다가 나중에는 그 열정이 다 식어버리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포기하는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럼 많은 교회들이 세워져 갑니다 그러나 나중의 모습은 처음보다 너무나도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 일수인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이 두아디라 교회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참된 믿음이 역사하는 곳에는 선한 행위들이 나타나게 되는 곳입니다 마태봉 7장 16절에도 보시면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귀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도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우리의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신 참 믿음이라면 우리의 삶 가운데 선한 열매들이 맺혀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스란 성도 예와 같은 신실한 교회를 만나는 것은 지상에서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23절에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3절 말씀 또한 참된 믿음이 선한 행위를 산출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23절 말씀을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가르치시는 것인가 여러분 그렇게 오해하셔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행위로 우리의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23절 그 하반절에 보시면 주님께서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개혁성경에는 뜻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헬라워 단어는 Nephros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Nephros라고 하는 단어는 영어로 키드니를 말하는데 그래서 킹제임스 성경에는 레인이라고 하는 키드니라고 하는 단어로 이 뜻에 해당하는 그 단어를 번역했는데요 그래서 킹제임스는 직역을 한 것이고 그리고 개혁성경은 그 Nephros라고 하는 단어를 의역한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이 키드니, 콩팥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모든 의지의 결정이 일어난다고 그렇게 믿었던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너의 뜻과 마음을 살피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인간의 가장 깊은 곳, 생각의 가장 깊은 곳까지를 살피시는 분이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결실되는 행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열매 맺는 행위대로 갚아주리라고 하시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행위를 살피면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가늠할 수가 있는 것이죠. 물론 사람들은 종교적인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행동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는 그 행동들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위선자들의 행위를 주님께서는 다 아시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야구보도 야고버서 2장 20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 허탄한 사람아 행암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재단에 드릴 때에 행암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내가 보곤이와 믿음이 그 행암과 함께 일하고 행암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사랑한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내가 믿음이 있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인가 참된 믿음인가를 돌아보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고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구원이 한순간이라도 우리의 성화나 우리의 거룩함이나 우리의 선한 행위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와 반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속죄를 제공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자신의 의리를 우리에게 돌리심으로 말미 아마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지할 것이 없고 우리가 의지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거룩한 생애가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신뢰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한 채 우리에게도 그런 인내들이 우리에게도 섬김들이 우리에게도 사람들이 그렇게 열매로 맺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고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크게 두 번째로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야 되는 진리는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이 교회의 생명이라는 진리입니다.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이 교회의 생명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함과 순결함을 지키고 유지해 나가는 일은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 편지를 보내시며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분 그 눈이 불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살피실 때에 불꽃 같은 눈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살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까? 주님께서는 신이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용서함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기꺼이 들이셨습니다. 그 주님께서 그 핏값으로 사신 교회가 죄와 타협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논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을 들여서 사신 교회, 생명을 들여서 구원하신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실 때에 세밀한 눈으로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어떤 물체들을 관찰할 때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상세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조그만 죄까지라도 주님에게는 큰 것이며 우리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면서 이 정도쯤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문제도 주님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여러분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보내실 때에 똑같은 편지를 써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세밀하게 진단하셔서 각 교회에 맞는 정확한 처방을 내리셨습니다 어떻게 예와 같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주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서 가지시는 그 기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때 보면 아무게, 아무게라고 쓰고 내용은 똑같이 쓰고 그다음에 누구로부터 이렇게 써서 편지를 연하장을 보내시지 않습니까? 크리스마스가 되면 많은 분들에게 감사 편지를 쓸 때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편지를 보십시오 주님 자신을 소개하는 묘사나 또한 그들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과 권면하는 말씀들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만큼 세밀하게 진단하셔서 정확한 처방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의 고룩함과 순결함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칭찬과 책망의 말씀이 다 이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순결함과 거룩함을 잃어갈 때 주님은 그 교회를 향하여 불같은 열정으로 그들을 책망하시며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요한교시록의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이 또한 이 교회가 거룩함을 향해서 순결함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의 강단에서는 참된 하나님의 진리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인간의 사설들이 선포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만이 순전한 말씀만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주 오후 예배 때 이 진리를 성도들에게 설교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합니다 여러분 오늘 들은 이 설교를 이해하셔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깨달고 가셔야 되는 것입니다 들은 것으로 만족하셔도 안 되고 이 말씀을 다 이해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저에게 전화를 하십시오 또 저에게 신방을 요청하십시오 그럼 제가 상세하게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들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리고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삶의 것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의 성결한 삶이 우리의 삶에도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왜 믿음에 있어서 성장하지 못합니까? 왜 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무슨 천만 성도 한국 교회가 그렇게 자랑하면서 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왜 세상은 여전히 더 어두워져 가고 왜 세상은 더 죄악으로 썩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까? 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성도들이 있지만 연약한 아이들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어린아이들밖에 없는 것입니다 장성하여서 하나님의 교회의 일들을 감당할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입니다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그리스오의 군사들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전쟁터로 내보낼 수 있습니까? 훈련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일꾼으로 세울 수 있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심한 영적인 그런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일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진정으로 신실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고 그것이 어렵고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며 실천해 나갈 때 믿음의 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음식과 몸의 관계와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은 음식을 먹으면 여러분의 몸에 반응하게 되어 있죠 그렇지 않습니까 저도 여러 다이어트법들을 사용할 때에 그것이 즉시 즉시로 나타나더라고요 그렇구나 내가 무엇을 먹는 것은 내 몸에 직결되는 것이구나 그러나 이 진리가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그런 진리입니다 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적용하며 살아갈 때에 반드시 성결한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로 머물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까? 이 일이 어려운 일입니다 이 일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보가모 교회를 보십시오 발람의 교훈을 허용하여서 음행과 우상의 재물을 먹게 되지 않았습니까? 순교의 피가 안디바라고 하는 그 사람의 신실한 순교의 피가 흘려졌던 보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이 들어와서 그들이 영적인 가늠과 육체적인 가늠을 범하는 그 상태까지 나아가지 않았습니까? 오늘 두하디라 교회의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교훈을 허용하여서 영적으로 가늠하고 육체적으로 가늠하는 그와 같은 상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설정한 어떠한 기준으로 이 정도면 됐다라고 하는 것은 주님께는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님 자신을 묘사하실 때에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심판주의 모습입니다 버가모 교회에 칼을 차고 나타나시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 도하디라 교회의 주님의 모습은 심판주의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9절에서 20절에 보면 빛난 주석 Burnished Bronze라고 영어 성경은 번역하고 있는데 빛난 구리 그러니까 강한 다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14장 19절에 보시면 천사가 낯을 땅에 휘둘러 땅에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며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600 스타디온에 퍼졌더라 포도주 틀을 밟으시는 주님의 그 다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진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도하디라 교회는 2세기경에 또 다른 거짓된 가르침을 허용하였고 그래서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주님께서 촛대를 옮겨버리셨습니다. 왜 이 교회는 이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지상에서 사라져버린 것인가 본문에 보면 자칭 여선지자 이세벨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의 괴개를 소위 사단에 깊은 것이라고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소위 사단에 깊은 것. 그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해 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강단에서 뭔가 새로운 건, 뭔가 신령한 건, 뭔가 깊은 것을 가르친다고 하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 우리 목사님의 성경해성은 신령한 것 같아 뭔가 새로운 것 같아 여러분, 90% 이상이 거짓입니다 신령한 것 어떤 새로운 것 그것이 사단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풍자적으로 이세벨의 말을 인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소위 사단의 깊은 곳 완전한 교회의 송도들을 깊은 곳으로 영적인 깊은 곳으로 인도해준다라고 하는 그런 미명아에 그들을 꿰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짓된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인내로서 견디며 성숙함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너무 많은 욕심을 냅니다 단번에 성숙함에, 완전함에 이루고자 하는 그러한 유혹들을 쉽게 봤는데 여러분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결하게 살아가는 그 삶은 인내하며 견디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거룩함을 위하여 많은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들이 날마다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순간에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신령하고 깊은 것이라고 그러한 길로 인도해 주겠다고 그렇게 미혹해나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되고 쓰러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한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는 거룩함과 경건함이 있습니까? 다시 질문을 바꿔서 여러분들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거룩함과 경건함을 사모하십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거룩함과 경건함이 없을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사모하고는 있는가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교회를 차를 타고 오는데 늘 지나다녔던 그 거리에 한 은행에 불이 났어요 그와 같은 광경을 보여 쉽지 않은데 마치 이라크에 폭탄 테러가 터진 것처럼 차 한 대가 시커멓게 되어있고 은행에 불이 막 나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아직 소방차는 오지 않았고 엠블런스만 도착했는데 왜 이렇게 소방차가 안 오는 것인가 은행이 다 타게 생겼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마지막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울리면 우리가 자랑하던 모든 것들이 다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여러분 무엇이 남아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산 삶 우리가 그것을 통하여서 구원을 얻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적용하며 살아가려고 했던 그 삶 경건하고 거룩한 삶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함이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이 본문을 통해서 살펴보고 싶은 진리는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24절 말씀해 보시면 도와디라에 남아있어 도와디라에도 이세벨의 교훈이 휩쓸고 간 그 처참한 교회에도 신실한 소수의 사람들이 남아있습니다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여기 이 교훈은 이세벨의 거짓된 교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신실함으로 남아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교회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짓된 진리에 휩쓸려 가고 있었을 때에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열한기상 19장에 보시면 엘리아 구약에 참 많은 능력을 행하였던 선지자 엘리아가 나오죠. 엘리아가 갈멜산에서 바할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처단한 이후에 아하베 왕비였던 이세벨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됩니다. 그때의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11기상 19장 10절입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벌이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미오며 오직 나만 남아 건을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14절에도 보시면 오직 나만 남아 건을 하나님 저만 남아 있습니다 하늘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다 이세벨의 그 거짓된 가르침과 우상 숭배에 넘어가고 저 홀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 하며 자신의 생명까지 취하여 가시기를 바라였던 그 탄식하였던 그 엘리아에게 11기상 19장 18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답변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인을 남겨리니 다 무릎을 발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발에게 맞추지 아니한 잔이라 참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 가운데 엘리아는 살아갔습니다 백성들도 거역하였고 또 왕과 왕비는 앞장서서 우상 숭벼를 백성들에게 독려하여서 정말 영적으로 가장 낮은 그런 곳에서 엘리아가 사역을 했는데 그때도 주님께서 바할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의 사람들을 남겨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 끝까지 신실한 남아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으로 가득한 이 미국당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한국당을 치시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깨어서 기도하며 끝까지 신실하기로 다짐하는 남아있는 자들의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유엘서 2장 32절에도 보면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며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이미라 이사에서 10장 20절 말씀입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족 속에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어둡고 절망적인 시대에도 이와 같은 신실한 자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완전히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 것입니다. 사랑한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떠한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까?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들로 남아계십니까? 고난의 강도가 얼마가 되든지 끝까지 인내하며 견디시는 그런 분들이십니까? 술래의 길에서 어렵다고 포기하고 고난 때문에 낙담하며 절망하며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께 신실한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에 하나님께서 때때로 고난들을 주십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그것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가 더욱 성숙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오늘날 우리에게 기도할 그런 열정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갈 그런 힘들이 없습니까? 저는 그것이 고난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아마 여러분들보다는 일반적으로 여러분들 보다는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 저는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경건하게 살아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힘이 된다라고 그렇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통해야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려고 할 때에 맞닥뜨리는 그런 반대들, 고난들을 만나야 그 고난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갈 에너지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고 편안한 가운데에 있는데 누가 밤을 새며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사슴이 신의 물을 찾기에 갈긋한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 가운데 고난이 있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기뻐할 일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것, 환란이 없는 것을 찾아서 여러분 시간을 낭비하지 마시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고 그럴 때예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한 단계의 경건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 기도할 수 있는 에너지로 바뀌게 해달라고 그래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아가게 해달라고 그래서 결국에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렇게 사모셔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마치면서 18세기 영적 대각성에 가장 아마 훌륭하게 쓰임을 받은 미국의 설교자일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그 결신문 한 구절을 읽어드리고 설교를 마치려고 하는데요 조나단 에드워즈 들어보신 분들도 계시고 또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낳은 최고의 설교자입니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설교자여 최고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70가지의 결심문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루에 한 것이 아니라 어떨 때는 하나, 어떨 때는 두 개씩 하면서 70개의 그 결심문을 썼는데 제가 약 15년 전에 총신대학교에서 목기학 석사 과정을 공부할 때 이 에드워드의 결심문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리고 큰 충격을 받았고 충격만 받았고 삶에는 적용하지 못했는데 어제 설교 준비를 다 마치고 밤에 홀로 다시 그 에드오즈의 결신문을 읽는 그런 시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충격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살아야 되겠구나라고 하면서 제가 많은 도전들을 받았는데 밖에 나가시면 프론데스크에 한국어판과 영어판 두 개로 제가 준비해놨습니다. 여러분 가실 때 한 편씩 가져가셔서 집에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결심문 중에 63번입니다. 어떤 순간에도 모든 측면에서 인격의 어떤 부분이나 어떤 환경하에서도 언제나 성도다운 참빛을 비추며 탁월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참으로 완벽한 성도가 세상에 단 한 명 있다고 가정할 때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힘껏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자 제가 다시 한번 읽어드릴 건데요 이 결심을 한 것이 에드워즈가 그의 나이 20세였을 때였습니다 저는 두 배도 더 산 사람인데 이 결신문 앞에 제가 얼마나 제 자신들의 큰 도전을 받았는지 모르면서 다시 한번 읽고 기도하고 설귀를 마치겠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모든 측면에서 인격의 한 부분이나 어떤 환경하에서도 언제나 성도다운 참빛을 비추며 탁월하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는 참으로 완벽한 성도가 세상에 단 한 명 있다고 가정할 때 만일 내가 그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내 힘껏 노력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자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도와디라 교회를 통해서 저에게 주신 그 교운들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말씀만큼만은 우리의 귀전이 아닌 우리의 신비에 새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른 날들은 세상의 일들에 바빠서 우리 영혼을 돌아보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 이날만큼은 우리 영혼을 돌아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며 기도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며 엎드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 이 어둡고 캄캄한 시대에도 성숙한 성도들을 세워주시고 또한 이 시대 가운데도 세상을 향하여서 진리의 빛을 비추이는 참된 교회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소망은 진실한 교회와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생명의 길을 우리의 삶을 통하여 우리의 증거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면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나아가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알지 못하며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할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유아들처럼 그렇게 멸망으로 휩쓸려 가겠사오니 하나님 이 땅에 세우신 교회들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교회를 섬기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교회들을 통하여서 영혼들이 돌아오는 구원의 기쁨을 맛보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 교회를 오늘 머리 숙인 사랑하는 성도들 모두를 주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에 의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 가운데 성숙함으로 완전함으로 이끌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The church in Thyatira
Sermon ID | 830151110394 |
Duration | 44:17 |
Date | |
Category | Sunday Service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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