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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이 말씀을 통하는 예를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이 아침 저희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열었기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령님께서 또한 말씀을 전하는 자를 사용하여 말씀하여 주시옵기를 간구하옵나이다. 인간의 지혜나 인간의 말로 하나님의 뜻을 저희가 전하고 깨달을 수 없기에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를 도구로 사용하시사. 사랑하는 교회를 향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주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려질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하는 장례식에 참석을 하시게 되면은 항상 즐겨 찾아 읽는 성경 구절들이 몇 곳 있습니다. 오늘 읽은 요한복음 14장 1절부터 6절도 그 가운데 항상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장례를 할 때에 그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근심하는 것 당연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그러한 근심 가운데서 슬픔 가운데서 이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찾는 것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은혜이며 또한 지혜일 것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하신 배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자신의 십자가에 죽으실 것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집자가에서 그가 고난을 받으신 후에 죽으시고 다시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때였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라고 그들에게 밝히 말씀하신 때였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소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참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 그리소를 따르기 위하여 자기의 삶의 가장 귀한 것들을 기쁘게 내려놓았던 사람들입니다 세리로서 세금을 받는 것으로 생활하던 세리마테는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을 쫓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호기를 잡던 베드로아안드레 요한 야고부는 예수님께서 나를 쫓으라고 하셨을 때 그 아비와 그 배를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자들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았을 때에 자기의 삶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그를 쫓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자로 믿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 회복은 그들의 정치적인 회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로마의 학정 가운데 있는 그 나라를 로마에서 구원하고 그리고 자신들에게 자유를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다스릴 그러한 분으로 예수 그리소를 기대하며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서로 생각하기를 예수님께서 왕의 자리에 앉으시면 누가 좌편에 우편에 앉아 그와 함께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의 기대와 전혀 상반되는 기대할 수 없었던 놀라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할 때에 그들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심히 두려웠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부인할 그 사람인가? 주님 나입니까? 내가 주님을 배반할 사람입니까? 그들 각자 각자는 마음에 근심하였습니다 그것뿐만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아직 이스라엘을 회복하지 않으셨는데 죽으신다니요? 우리 선생님께서, 우리의 메시아께서 죽으신다면 우리는 뭐가 됩니까?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쫓았는데 예수님이 죽으신다고 하는 것 그 다음에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고 어떠한 행복도 약속될 수 없는 삶이었기에 그들은 마음의 힘이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할 때 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참으로 참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떻게 우리 선생님이 죄인들 가운데 가장 흉악한 죄인들에게만 내려줄 수 있는 형벌을 우리 선생님이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허락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 선생님께서 잡혀가실 때 그를 그대로 내려줄 것인가 그를 위하여 어떻게 싸울 것인가 그들은 마음 가운데 크게 근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큰 근심 가운데 있을 그때 예수님께서는 14장 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근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 알고 있는 나의 세상은 이제 다 무너지고 나에게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행할 수 없어 보이는 그러한 명령을 주님께서 이곳에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명령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우리가 부르는 찬송에 따라서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이 찬송을 우리가 부를 때 우리는 우리 하나하나가 나의 삶의 고백이라고 이 찬송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살아감은 우리의 삶은 근심과 슬픔과 고통으로 쌓여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그저 학교에 평안히 왔다 갔다 하면 즐거울 것이라고 우리 어른들은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나 그 학생들의 마음 가운데 있는 염려와 고통 부모를 만족시킬 만한 그 성적을 낼 수가 있을까 또는 내가 이 학교에서 계속 공부할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내가 원하는 학교에 지나갈 수 있을 것인가 또는 친구들 사이에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그리고 그 부모들 삶을 바라보며 가지는 그들의 마음의 고통 이미 10대가 되기 전에 그들은 삶에 있는 마음의 근심에 익숙하여 있습니다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였을 때 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을 때 직장을 구하고 그 직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에 우리는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직장을 구하였지만 그 직장을 우리가 며칠이나 다닐 수가 있을 것인가 내가 다니는 이 직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내가 몸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상사들에게 만족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근심은 끝나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가정생활 가운데 서로 서로의 관계 우리의 자녀들과 부모들과의 관계 가운데 우리가 근심될 일들을 많이 경험하며 지나가곤 합니다 또 우리가 건강하다고 오늘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건강은 쉽게 지나가고 우리에게 언제 두려운 병이 찾아올지 모르기에 또는 우리의 마음에 근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대로 작년 이맘때 저는 완전 건강 판단을 받았습니다. 11월 달에 의사는 당신은 완전히 건강하지 이제 염려 마시오 삶을 즐기십시오 이야기했지만 12월 말에는 당신은 치료할 수 없는 암 사기입니다. 그렇게 판정을 받고 지난 8, 9개월 동안 지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강 언제 우리에게서 떠날지 장담할 수가 없기에 우리가 우리의 삶에 근심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숨쉬고 살고 있지만 그러나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근심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 떠날지 모르기에 우리는 그를 위하여 근심하게 됩니다 또한 내 자신이 언제 생명이 끊어질지 모르기에 우리는 근심하게 됩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삶에는 쉼 없는 근심, 고통, 걱정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쌓일 때에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차여질 때에 주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어떻게? 너무도 염려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은데 우리 자녀들을 생각할 때에 염려할 수밖에 없고 우리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생각할 때에 염려할 수밖에 없고 이 나라에 하나님을 향하여 배교하는 것을 바라볼 때에 염려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곳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 주님의 말씀을 같이 잠시 생각하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중요한 교훈들을 같이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이 말씀을 생각할 때에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근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는 것을 먼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근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이 되는 그러한 것으로 들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우리가 근심하지 않기 위하여 너희는 이렇게 살아가라 하는 여러 가지 지혜의 교운들을 주시고 계십니다 너희가 이렇게 살면 반드시 마음의 근심이 찾아온다 그러니까 이러한 길은 피하여라 이러한 가르침들을 우리는 성경에서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디모대 전서 6장 10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하게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서 자기를 찔렀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돈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 돈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하나다 많은 근심으로 자신을 찔르게 될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라 이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문서 13장 15절을 보면 괴사한 자의 길은 험하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죄를 품고 마귀와 친구가 되어서 살아가는 삶, 잠시는 즐거운 삶 같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그 삶은 근심에 쌓인 삶이 될 것이라고 경고해 주시고 계십니다 또한 4함원 17장 25절에서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하여금 근심하게 하지 말라고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조심스럽게 살아가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된다 그러하게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삶을 살아갈 때에 부모를 근심시켜 드리지 않기 위하여 우리의 삶을 조심스럽게 살아가라 하는 그러한 말씀을 우리가 읽어봅니다. 또한 자문 23장 29절을 보면 재앙이 누계 있느냐 근심이 누계 있느냐 분쟁이 누계 있느냐 원망이 누계 있느냐 까닥 없는 창상이 누계 있느냐 붉은 눈이 누계 있느냐 근심이 누계 있느냐 술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따른다. 술을 가까이 하지 말아라. 술을 좋아하게 되면 반드시 근심이 따르게 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그 외에도 많은 성경의 가르침들은 우리의 삶에 근심을 피할 수 있는 길들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근심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는 성경에서 결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근심하여야 될 때가 있음을 성경은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3장 21절 우리가 읽은 14장 바로 앞에 보면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읽어봅니다. 요한복음 13장 21절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로 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달리라 여기에 심령에 민망하여 이렇게 번역된 그 말씀은 마음에 근심하여 하는 그 말씀과 똑같은 원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에 근심하셨다 예수님이 마음에 근심하셨다 자기가 사랑하여서 부른 제자 중에 하나인 가론 유다가 자신을 팔고 그리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것을 생각하실 때 예수님은 그를 보시며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뿐만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사기 10장 16절에 자기 가운데서 이방신들을 제아해버리고 여와를 섬김에 여와께서 이스라엘의 권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고난받을 때에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는 마음에 근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근심하셨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셨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근심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는 아니다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믿음의 관계 없이 죄와 관계 없이 우리의 마음에는 근심으로 쌓일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며 근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고 나를 배반할 것이라고 할 때에 그게 나인가 근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울 사도는 그 마음에 큰 근심이 있었다고 로마서 9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 1절을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를 더불어 증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면은 자기의 주에 있는 자들을 사랑한다면은 그 마음에는 마땅히 큰 근심이 있고 마음의 고통이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바울 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가 하나님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멸망의 길을 걸어가지만은 그러나 나는 그것이 조금도 근심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충대한 마음의 문등병일 것입니다 근심을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깨닫지 못하는 이러한 잘못된 병든 마음일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악된 길에서 죄와 더불어 살아가며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그러한 삶을 살아갈 때에 자녀들이 위험한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도 그 마음에 근심이 없다면 그리고 그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부모로서의 사랑에 중대한 결함을 우리가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이 있는 그곳에는 근심이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자기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끊임없이 근심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어머니 날에 노래하곤 합니다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때 밤낮으로 걱정하며 근심하며 고통하며 돌보아 주시는 것이 어머니다. 우리는 그렇게 노래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들의 그 자녀를 향한 사랑이 있기에 그들이 혹시나 잘못될까 혹시나 위험한 일에 상처는 받지는 않을까 그들이 그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야 될 일들을 이루지 못할까 자녀를 위한 근심 그리고 마음에 있는 고통 떠나지 않는 것 당연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이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식이나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 나는 전혀 근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 그곳에는 근심함이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위하여 근심을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하여 근심을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을 애국하는 사람들은 우리는 우국지사다. 나라를 염려하는 사람들이다. 나라를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근심하는 것이 따르게 됩니다. 이 삶에 있는 근심, 삶에 있는 고통 이것은 많은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모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하여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고통에 대하여서 자기 나름대로 어떠한 해답을 제공하여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두 번째로 생각하고 싶은 것은 많은 이 마음의 근심에 대한 치유법들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이 마음에 있는 근심에 대한 치유법들에 대하여 우리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 근심하며 걱정하는 것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 멀어져야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참으로 가장 선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기쁨을 추구해야 된다 우리 삶의 연락을 찾아야 된다 재물이 있다면 그 재물을 사용하여서 나의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시고 즐겨야 된다 그리고 나의 삶에 건강이 있다면 그 건강을 가지고 나의 원하는 것들을 하며 살아가야 된다 내가 즐기는 이것은 나의 삶의 최선의 것들이다 이것이 나의 삶에서 고통과 근심에서 나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고 생각하고 가르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러한 인물들을 우리가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그러한 삶을 살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 삶에 있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그를 만족하게 해보려고 하였습니다 그금심, 걱정이 없는 삶을 살아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탕자, 그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곳에 가서 아버지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자기의 육신에 원하는 대로 하며 자기의 삶의 행복을 추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의 가진 것으로 자기의 가진 제물로 자기의 가진 지식으로 자기의 가진 건강으로 자기의 가진 어떠한 힘으로 자기의 삶에 있는 근심과 걱정을 이겨보고자 했던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되지 않는다 헛된 일이었다 고백하는 고백들을 우리가 또한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오늘 혹시 우리 가운데 여전히 이러한 자기의 육신의 만족을 채움으로써 내가 세상에 근심 걱정에서 노연할 수 있겠다고 기대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 길은 이미 헛된 길이라고 하는 것이 증명된 그 길을 따라갔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이 길은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길입니다. 또한 그와 정반대로 우리가 근심하게 되는 것은 우리 육신이 너무 방종하게 되어서 우리 육신의 뜻대로 끌려가게 되기에 우리가 마음에 근심하게 된다. 우리의 육신을 쳐서 복종하게 되면 우리의 육신을 따라가지 않고 우리의 육신을 쳐서 그저 우리의 뜻대로 순종하게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입에 필요한 음식을 넣어주지 않고 자기의 몸을 따뜻하게 할 옷을 입혀주지 않고 자기의 보호해야 될 등을 쇠줄로 치면서 가시로 치면서 피를 철절 흘리면서 이 몸으로 하여금 꼼짝 못하도록 이 육신을 내가 정복하겠다고 극한 고통 가운데 모든 육신의 요구를 멀리하며 이를 통해서 근심과 걱정을 극복해 보겠다고 한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또한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 또한 고백하는 것은 여기에 해답이 없다고 그들은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틴 루터가 그 과정을 지나갑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로마 천주교회에서 그에게 가르친 것은 내 자신의 행함을 통하여서 내가 완전함을 이루어가라고 하는 그 교훈을 따라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을 학대하였습니다 먹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세면바닥에 앉아서 꿇어 엎드려 수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잠자지 않았습니다. 입히지 않았습니다 남이 일하지 않는 그 시간에 나가서 자기는 애써 노동하며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와 평강보다는 자신의 노력을 통하여서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함을 통하여서 자신이 어떠한 그 근심과 걱정에서 노연하기를 노력해 보았습니다. 그가 그 모든 과정을 남보다 더 힘쓰고 마지막에 고백한 것은 이것은 질이 아니라고 그는 그 잘못됨을 고백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의 그 생애를 읽어봐도 그가 왕자의 몸으로 태어나서 부기와 영화를 누려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먹으며 즐기며 입으며 그 삶에 원하는 것들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있는 근심을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근심과 걱정을 해결하기 위하여서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먹이지 않고, 입히지 않고, 쉬지 않고 그 몸을 최대한으로 고통스럽게 하여서 자신이 그 고난에서 자유롭게 되어보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되질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찾은 길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 앉아 가지고 이제 이 고통의 문제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가 근심하는 가운데 이 고통의 원인에 대하여 스스로 깨닫게 되고 그가 그 고통의 원인을 깨달았을 때 온 세상이 꽃밭으로 변하고 향기로 진동하였다 하는 그 경험을 그가 그 나무 아래에서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것이다 이것이 길이다 이것이 우리가 근심 걱정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 불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석가모니도 마지막에 죽음을 그 앞에 두었을 때에 그는 죽음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가장 큰 근심과 가장 큰 걱정인 이 죽음이 그를 찾아왔을 때 그는 그 죽음에 굴복하고 무덤에 누이였고 그의 썩어진 육신은 여전히 그 무덤 가운데 누여져 있습니다. 자기 자신 가운데에서 나의 가진 무엇으로서 나의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 보겠다고 하던 모든 노력들은 다 하나같이 실패하였습니다 그러한 근심을 벗어날 수 없는 아무리 인간이 애를 쏘도 모든 자기에 있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 보려고 하여도 자기 자신의 육신을 복종시켜 보려고 하여도 잠시 어떠한 깨달음을 향하여서 즐거워지는 이러한 감각을 통하여서 근심을 이겨보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그것을 가지고서는 누구도 근심에서 고단에서 자신을 벗어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여기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그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근심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근심, 나의 미래에 대한 근심 이러한 모든 근심, 죄악된 근심들을 떠나서라도 나의 삶에 당연히 살아있기에, 사랑하기에 따라오는 이러한 근심들을 나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결의 방법에 대하여서 주님께서는 말씀해 주십니다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주님께서는 이곳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나를 믿는다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근심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고 먼저 묻고 계십니다 너는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느냐 그것이 없이는 우리의 마음에 근심을 우리의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아까 잘못된 그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 모든 사람의 공통된 잘못은 하나님 없이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근심의 문제를 자신의 삶에 있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 데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한 하나님은 멀리 있어서 우리의 삶과 관계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삶은 내 힘으로 살아가야 된다 나를 도울 수 있는 그러한 살아있는 참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는 나에게서 너무 멀다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또는 그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는 충분히 나에게 있는 고통에서 나를 놓아주기에 능하지 못하다 그는 그의 크심에 있어 나의 문제의 큼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그는 너무도 작다고 생각하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적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고 또한 하나님이 행여 크시어서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신이었더라면 그는 나에게 이러한 고난을 주는 신이라면 그는 선할 수가 없다 그는 악한 신이다 하나님은 선한 분이 못된다 이것이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였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없다고 또는 계셔도 멀리 우리와 삶과 관계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거나 그 하나님은 그리 크지 아니한 분이라고 크게 일할 수 없는 분이라고 나의 삶과 관계할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거나 그가 큰 힘을 가졌지만은 그러나 나의 삶에 가장 좋은 것으로 제공해 주지 않는 선하지 못한 분이라고 하나님을 생각하였을 때 그들은 자신에게서 해답을 찾으려 하였고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습니다 유일한 우리의 근심과 걱정에 대한 해답은 삼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크심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뜻하시는 것은 세상의 어떠한 세력도 막을 수 없는 것을 믿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삶에 가진 어떠한 걱정과 고남보다도 크신 분이라고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하나님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고백하는 것은 이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셨고 나를 위하여서 그 아들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로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시기까지 나의 선함을 위하여 나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라고 믿고 계십니까? 이 믿음이 있다면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근심, 걱정, 고난에서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파울 사도의 고백을 우리가 읽어볼 때 그의 삶에는 끊임없는 고난이 따랐습니다 예수 그리스로를 사랑하였기에 그는 매일에 쉼 없이 맞았습니다 몇 번 죽은 줄 알고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버린다고 그를 성 밖에 버린 적이 있습니다 배가 파산하여서 그가 몇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굶기를 쉼없이 그가 하였고 병에 들어 그가 고통 가운데 많은 날들을 신음하였습니다 감옥에 들어가고 나가고 언제라도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죽음이 그에게 항상 따르는 괴로운 날들을 그가 지나갔습니다 그의 삶의 고통을 우리가 읽어볼 때 우리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그가 경험하였구나 우리는 이렇게 그의 삶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삶에 있는 모든 고통을 그가 바라보았지만은 그러나 그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을 그가 바라보았을 때에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그 영원한 그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에 내가 잠시 당하는 이 고난, 환란, 고통의 가벼운 것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과 함께 할 그 영광과 그 참으로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그 기쁨과 그 영광과 그 행복에 좋게 비교가 안 된다 이것이 마울사도의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통과 우리의 근심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까? 크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저의 삶 가운데 안병을 지나가는 거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지나가 보시면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 주일도 의사를 한두 번 보지 않고 지나가는 주일이었고 의사들이 여러분들을 쉼 없이 여러분 잠재우고 수술을 이곳저곳 해야 되고 찔러대고 또 어려운 약물로 또는 무슨 방사선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 시술을 하는 거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은 저의 마음 가운데 평강이 있습니다 그것은 크신 하나님 하나님 손이 나를 다스리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서 나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나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스리신 하나님께서 이것이 나에게 필요하여서 나에게 유익하여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이 길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선택하신 길이라면 이 길은 나에게 가장 유익한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선함을 위하여서 가장 크신 하나님께서 가장 좋으신 뜻으로 허락하신 길로 나의 삶에 있는 고통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삶에 있는 어떠한 고통도 어떠한 근심도 그것이 우리를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크고 좋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참대고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고 크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수 있는 길은 결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14장 6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는이라 나를 믿지 않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온 그리하여 죄인들의 죄를 상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그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받기 위하여 온 그리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고 그리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하늘에 올려오셔서 하늘 보좌우편에 계시며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시고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그 하나님으로 믿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러분들에게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헛된 공상입니다 여러분들이 믿는 그 예수 그리스도 없이 따라간 그 신은 사탄일 것입니다 거짓된 영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멸망으로 이끄는 아버지께로 이끌지 않는 다른 영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그 믿음 있느냐 이것이 주님께서 묻는 질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크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나를 믿기에 나를 통하여 너희는 아버지께 갈 수 있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로를 믿는다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 하였을 때 우리는 구원함을 받습니다 영생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우리가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동일한 은혜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작든지 크든지 바울과 같은 믿음을 가졌든지 처음 믿은 초신자의 믿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고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구원함을 받습니다 마음의 근심에서 우리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부분에는 믿음의 정도가 중요합니다 얼마나 잘 믿느냐 믿음의 크기는 우리의 근심에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롭게 되느냐 하는 것을 결정지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는 믿지만은 그러나 아직 그의 믿음이 심이 연약할 때 또한 우리의 마음에 있는 근심 또한 쉽게 정복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삶에서 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따라서 주님께서 어떻게 살아가셨는가를 바라보면 근심에 쌓인 주님은 어떻게 살아가셨는가 근심에 쌓인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갔는가 근심에 쌓인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갔는가 그들의 삶을 살펴보고 믿음에 따라 그들을 따라 살아가는 것 우리의 삶에 필요할 것입니다. 사무열상 15장 11절을 보면 사무열에게 큰 마음에 근심이 있었습니다. 사울이라고 하는 사람을 그가 기름을 부어 왕을 세웠지만 그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걸 보았을 때에 사무엘이 근심하였습니다. 마음에 근심이 가득한 사무엘은 온 밤을 여와께 불을 지지며 기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근심에 쌓여있을 그때에 그들은 그때마다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에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간 것들을 우리는 읽어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마음에 근심으로 죽게 되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그 세상의 죄를 감당하실 그 어려움을 그 마음에 가지고 계실 때에 그는 하나님 앞에 통곡과 깊은 신음으로 자기의 마음에 있는 그 소원을 알려 드렸다고 그 근심을 하나님께 가져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필립버스 4장 6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래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편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 그 할 곳이 많다 그 집, 그 집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곳 그 곳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스러운 그 곳이 약속되어 있다면 우리가 오늘날 당하는 어떠한 근심도 그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아뢰고 그가 주시는 평강으로 그 근심과 고통과 걱정에서 우리가 이길 수가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오늘 여러분들의 마음에 근심이 있으니까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시면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통한 믿음의 행사를 통한 하나님께 매달림을 통한 그 승리의 길을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마음이 채워짐을 우리 모두가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시 기도하시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찬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께 갈 길을 내가 열어놓았다 아버지께 나가 불을 지자라 그리고 나의 평강으로 너의 가슴에 채우라고 말씀해 주시게 과연 우리의 근심을 바꾸어 예수 그리스도와 있는 평강과 희락으로 채우게 하여 주시사 주님 주시는 기쁨 가운데 주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면 남은 삶을 잘 달려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The Troubled Heart (Korean)
Sermon ID | 82013173680 |
Duration | 49:34 |
Date | |
Category | Current Events |
Bible Text | John 14:1-6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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