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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 아마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위세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신이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께 하나니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쫓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 잠시 이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도하시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를 위하여 기록하신 말씀이지만 이 시간 새롭게 성령님께서 이 말씀을 저에게 존명하여 주시지 않으신다면 이 말씀에 대한 모든 은혜를 저희가 할 수 없겠지 이 시간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하심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듣는 저희 모두에게 성령의 음성의 귀에 기울일 수 있는 들을 귀를 허락하여 주시사 이 시간 죄를 향하여 하시고자 하시는 주의 음성이 이곳에 들려지고 그 가운데 영원한 많은 열매들을 주께서 거두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그동안 읽어나온 이 로마서는 파울사도가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쓴 편지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사도가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에는 이 로마에 바울사도는 방문한 적이 없었습니다。 로마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이 바울사도에 대하여 이야기는 듣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를 직접 보지도 못하였고 그에 대한 여러가지 또한 그를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이야기도 그들에게 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어떠한 그 사도직에 대한 도전과 그의 사역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점들을 그들이 듣고 있었기에 이들을 향하여서 바울사도가 편지를 기록할 때에는 어떠한 그들과 바울사도에 있는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이곳에서 한 10여 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그 신앙생활을 하여 왔기에 여러분들이 저를 직접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을 보아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부탁할 수 있고 여러분들이 저에게 또한 부탁할 수 있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향하여서 이제 사도 파울이 편지를 쓸 때에 그들에게 내가 어떠한 자격으로 편지를 쓰는지 그들과 바울사도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성립하고 있는지 어떠한 권위로 바울사도가 그들에게 권고할 수 있는지 그들을 왜 찾아갈 필요가 있는지 이러한 것들을 먼저 그 관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맨 처음 1장 1절에 내가 누군가를 설명하는 것을 우리가 이미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복음을 위하여서 너희에게 전하기 귀한 예수 그리스도에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모든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도록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그들에게 이야기하여 줍니다。
바울사도와의 관계에 어떠한 공통점이 있는가? 6절에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불의심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그 이방인 가운데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불의심을 입지 않았느냐? 너희도 하나님의 불의심을 입은 자들이고 나도 또한 하나님의 불의심을 받은 자라면 우리가 하나라고 하는 것을 이곳에서 이야기하고 있고 이곳에 길지 않은 몇 가지의 문장을 통해서 그들과 파울사도 사이에 있는 그 친밀한 관계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6절 말씀을 다시 우리말을 읽어보면,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잔이라。 우리말에 그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어로 가서 헬라말로 그것을 읽어보면 반드시 그렇게만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닙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에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원어는 그러한 말들로 이어져 있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자들인데 예수 그리스도에 불의심을 입은 자들 이러한 번역이 가능합니다。 제가 헬라말 공부할 때 문법책에 보니까 문법책의 소유격에 대해서 설명할 때 그 예로 든 것이 이 로마서 1장 6절 말씀하면서 이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가 있다。 너희도 너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사라고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게 설명한 것을 문법책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다。 내가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내가 부르러 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서도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하나님의 아들은 이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에 대하여서 여러 번 생각하였습니다。 죽은 자들이 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부르시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한 의미로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도 별로 잘못되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6절에 있어서만은 우리말 성경이 더 정확하게 그 말씀을 번역하였습니다。 너희도 그늘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그 똑같은 말씀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에 더욱 부합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부른다 하였을 때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로 성경은 주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부름은 하나님 아버지의 일로서 성경은 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고림도전서의 1장 9절 말씀을 보면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적해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적해 하시기 위하여서 우리를 부르신 그 하나님 아버지는 신실하신 분이시다고 이 고린도전서 1장 9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로마서에서도 그 부르심에 대하여 그 아래에서 말씀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을 주로 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너희도 그 이방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그 로마에 있는 믿는 자들을 부르면서 그러하기에 내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너희또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를 섬기고 있다면 너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소유된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값으로 사신 자들로서 나와 하나 된 자들이라고 하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로마에 있는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금 줄여서 얘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름을 받았다, 또 하는 것은 교회를 뜻하고 있습니다。
교회라고 하는 그 말을 그 헬라말을 찾아가서 보면은 여기에서 사용한 그 뜻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 불러냄을 받아서 함께 모여진 그 모임을 교회라고 이야기합니다。 불러내었다。 그래하여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불러서 근로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고 그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파울사도는 교회라는 말을 이곳에서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그들은 향하여서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믿고 성도로 불의심을 입은 사람들을 향하여 로마에 있는 그 교회를 향하여 이제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곳에 그린빌 독립 장로 교회라는 이름으로 오늘 우리가 예배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 일주일에 한 서너 번씩 같이 모여서 예배하는 그저 사람들의 모임인가? 그곳에 가고 싶은 사람들은 그곳에 가는 것이고 가기 싫은 사람들은 안 가도 되는 그리고 가고 싶을 때는 가고 안 가고 싶을 때는 안 가고 할 수 있는 그러한 내 마음대로 갔다 안 갔다 할 수 있는 그러한 곳인가。
성경에서 가르치는 그 교회의 모형에 대하여서 우리가 생각하면서 또 교회는 어떠한 사람들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이러한 것은 제가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것이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자주 들었습니다。
교회가 보통 때는 별로 몇 사람 모이지 않고 그저 한 3, 40명, 4, 50명 이렇게 모이는 그러한 교회인데 그 교회에 갑자기 이제 어떠한 집분을 꼽는다。 뭐 이렇게 그래서 장로를 투표를 한다든지 집사를 투표를 한다。 그러면 친척들, 가족들, 또 친구들, 그동안 교회 전연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잔뜩 모여가지고 이제 그 서로 간에 그 어떠한 투표하는 일에 참여를 하고 하는 그러한 경우들이 있다 하는 그러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마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아마 그러한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지어낸 이야기로 그 교회를 아마 모함하는 사람들이 한 이야기로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교회의 모습은 아닙니다。 교회는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교회에 같이 생활하지도 않던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으로서의 그 자격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들이 그저 그 필요에 따라서 그 교회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것은 삼다운 교회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6절 말씀, 너희도 그늘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고 하는 이 로마에 있는 믿는 자들의 그 모임을 향한 이 명칭이 뜻하는 가르침에 따라서 교회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하는 간단한,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그 진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어떠한 것인가?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교회에서 첫 번째로 교회에 가진 사명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여러 가지 사명을 주님께서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신학을 공부할 때, 목사로서 훈련받을 때 여러 해 동안 공부하면서 특별히 교회에 대하여 또한 여러 학기를 공부하게 됩니다。 이 시간에 교회에 대하여 우리가 다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또 교회의 여러 가지 사명에 대하여서 그 부분 부분은 우리가 다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명들 중에 하나를 들어서 이 아침에 같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사명 가운데 두드러진 사명들 여러 가지 있지만 우리가 예배하는 것도 있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이웃을 돌아보는 것도 있고 여러 가지 선한 일을 하고 한국에 처음에 교회가 들어왔을 때 성교사들이 왔을 때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그 고아원을 세우고 그 나라가 어려움 가운데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나라의 정치를 돕고 하는 여러가지 일들을 그들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가지 사명들 보다도 아마 가장 뛰어난 사명이 있다면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서 이 보금을 전하는 그것이 교회의 가장 큰 사명들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말씀 우리가 들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그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주신 가장 큰 사명이 있다면 너희는 이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족속으로 유대인만 아니라 로마 사람들 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온 세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에게 분보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에 이 세상에 남기신 말씀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상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명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교회의 사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인가? 세상을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복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가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신 그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전하는 그것이 이 교회의 중요한 책임이 되겠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에게 잃어버린 세상을 우리가 성경 가운데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어떠한 사람들은 우리 모두는 다 세상 사람은 다 형제라고 하는 것을 강조를 합니다。 믿지 아니한 사람도 형제고 마음의 대로 믿는 사람도 형제고 무슨 불교를 믿는 사람도 형제고 다 형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별한 의미에서는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함을 받은 점에 있어서는 같은 창조주로 하나님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나왔기에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은, 이 인류는 타락한 인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부패한 인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다 죄악 가운데서 잃어버린 인류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서 하나님 앞에 잃어버린 자들 되고 하나님을 알기 원치 않냐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로 이 세상은 채워져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하기에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이러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채워진 이 세상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복음의 소식을 전하여서 그들 가운데 하나하나 그곳으로부터 불러내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그들이 불러내어서 모여진 그 모임, 세상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을 때 부름을 받고 모여진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가 되겠습니다。
그러하게 이 교회가 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모든 족속에게 전하는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 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것을 성경은 처음부터 말씀해 주십니다。 상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생활해야 될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원치 않냐고 두려워서 피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치 않는다。 그를 예외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와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다。 이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끊어졌고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고 그는 나의 삶에 관계가 없다고 그들이 숨어 있을 때 3장 9절에 보면 여우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며 그에게 이르시래 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디 있느냐 내가 지금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부르신 것을 우리가 장세기 맨 처음부터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아담을 부르시던 하나님께서는 아담만을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 잃어버린 자들을 쉬지 않고 부르시면 그들도 하여금 돌아와서 구원을 얻으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십니다。
어떻게 부르시는가? 교회를 통하여 부르십니다。 말씀을 통하여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의 하늘에서 천둥, 번개를 통하여 부르시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것을 복음으로 몰아가신 데 사용하시기는 하시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밝히 드러날 수 있는 곳은 하나님의 교회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이 읽혀지고 전파되고 설명되고 공부되고 암기되고 하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금은 죽음 가운데 있는 자들을,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는 그 일에 소용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면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이것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과연 우리가 예배하는 데는 열심히 하고 있었고, 교육하는 데는 열심히 하고 있었고, 중요한 일입니다。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하나의 말씀을 가르치는 가운데 그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있기 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이 교회에서 예배를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고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카라는 말씀에 우리가 못 미치고 있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북미주 독립장로 교단이 깐강아이로 이제 1년 된 어린아이의 교단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고 기회를 허락하십니다。 리베리아에 갑자기 그 선교회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동안 닫혀있던 문입니다。 선교사들이 그 전에 가 있었지만 내란을 통하여서 대부분 다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다시 잠시 문이 열려있습니다。 이것이 얼마 열려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시 내란이 시작되면 다시 닫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저항순이라고 하는 대통령이 뽑히면서 이제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시금 가지기를 원하고 다시금 그동안 14년 동안 없던 전기시설을 복구할 그러한 계획들을 세우고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제 그곳을 통하여서 가서 전화해주는 보금이 그 아프리카 서부지역에 전파될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이 교단에 허락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기회 가라고 할 때에 우리가 적극 같이 참여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멀리 아프리카뿐만이 아니고 우리 주위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명향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어떠한 우리 교회가 더 사람이 많아지기 위한 그러한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 교회에 오지 않아도 관계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도록 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의 이 땅에서 가장 큰 책임인 것을 우리가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가 믿지 아니한 일을 어찌 부를 수가 있겠습니까? 듣지도 못한 일을 어찌 믿겠습니까?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저들이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가 어떠한 것인가? 부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하여 부르는 것입니다。 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있는 생명의 길로 오라고 부르는 그것이 교회의 사명들 가운데 가장 큰 사명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그러면 교회의 구성원은 어떠한 사람들이 될 것인가? 교회에 우리가 부지런히 잘 참석을 하고 그리하여 쉬지 않고 모든 예배에 참석을 하면, 그리고 내가 세례를 받고, 내가 어떠한 교회 직군을 전에 맡아 있었고, 그러면 내가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가 있는가。 여기에서 보여주는 교회의 구성원의 모양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불의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이곳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불의심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지명하였고 상세전에 하나님께서 괴획하시고 기뻐하신 뜻에 따라서 너를 내가 지명하여 불렀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제 이러한 이야기를 읽어보았습니다。 아이언사이드라고 하는 그 목사님께서 자기의 믿음의 경험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읽어보았습니다。 이분은 시카고의 무리 처치에서 목해하시는 그러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 그리스를 알지 못할 때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하는 문이 앞에 있습니다。 그 문 위에 누구든지 원하면 이곳에 들어오라고 하는 초청의 글이 써있습니다。 이것은 보금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전에 어떠한 죄를 지었던지 내 삶이 아무리 악한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손가락질할 만한 그러한 죄가 나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누구든지 원하면 이리로 들어오라고 하는 문이 있습니다。 이것이 고금의 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오기만 하면 그는 결코 그들을 내엿듣지 않고 그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받아들여주고 그들을 문 안으로 이끌어 주겠다고 하는 것이 그 복음의 약속입니다。
모든 죄인을 향하여 이 복음은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이 문으로 들어오라고 그리고 들어올 수 있다고 이 복음의 문은 우리에게 초청을 하십니다。 그나마 우리가 믿고 나서 이제 그 문을 뒤돌아 보니까 그 위에 또한 이러한 글이 쓰여있는 것을 읽어볼 수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그 말씀을 우리가 믿고 났을 때 그때 깨닫게 됩니다。
네, 여러분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까? 이것은 여러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여러분들이 그저 원하여서 그래야 믿고 싶은 때는 믿었다가 그래야 믿기 싫어지면 믿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창세전에 여러분을 위하여 허락하신 큰 은혜를 통하여서 우리에게 허락한 것임을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였습니다。
이것을 위하여서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영원하신 그 성사미의 제2위 되시는 성자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드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택하신 자들을 부르기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를 통하여서 우리가 믿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쳤게 답게 해주십니다。
전에는 이것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주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이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마음에 나의 것으로 붙잡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역사해 주실 때에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후주이심이라 그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년, 사하 및 하나님의 역사심을 따라서 우리가 부름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그리하여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그를 고백하는 자들이 교회의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의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를 지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한 외부적인 내 부모가 믿었기에 내가 세례를 받았기에 내가 어떠한 목사의 훈련을 받아서 목사로 임명을 받았기에 그러하기에 우리가 그 어떠한 교회의 구성원에 차격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셨기에 우리가 그의 소유된 자로서 교회인이 되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이 교회는 또한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특권을 그러하기에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 라이베리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거기에 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방문을 두드리고 대통령이 너를 좀 보자 그런다。 대통령이 너를 부른다。 그래서 끌려 나가면 그 사람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를 못하고 아마 어디서 죽임을 당하고 없어진다고 합니다。 리베리아의 대통령의 부름, 지금 대통령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전에, 초스테일러나 그 전 사람들의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부름은 참으로 두려운 부름입니다。 마귀의 부름, 그것을 받아서 끌려가는 삶, 참으로 불행한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우리를 불렀을 때에 그것은 우리에게 기쁨이 됩니다。 우리에게 축복입니다。 우리의 피로를 채워주기 위하여, 야, 와서 밥 먹어라。 야, 와서 몸 씻고 옷 갈아입어라。 우리로 하여금 더 안정하고 더 평안하게 하여 주기 위하여 부르는 부름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어머니의 부름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부름보다도 더 큰 놀라운 부름이 있다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부르셨다고 그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어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우리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사람들, 하나님께서 사랑하여서 부르는 사람들, 그들이 모인 그 모임이 교회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하여 가볍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어떠한 목사의 교회로서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의 교회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목사의 것도 아니고 어떠한 특별한 가정의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하나님께서 부름을 받은 사람들, 그들의 모임, 그들은 이곳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늘에서 크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나라의 축복을 약속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것은 그저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움직여질 수 없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보금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움직여야 될 만들 그러한 사람들의 모임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들 중에 있어 이방인 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고화를 우리가 오늘 즐기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진리 가운데 이 영광을 나의 것이라고 나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고 나를 부르셨다고 감사하며 찬송을 우리가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또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을 받으면서도 오라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오라고 하는 부름을 받으면서도 아직 나는 그를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순종하시며 그 부르심을 약속하신 은혜를, 풍성한 삶을, 영원한 생명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는 지혜를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교회로 저희를 불러 모아주시며,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른받은 많은 부리들을 이곳에 허락하여 주셨음을 감사하옵나이다。 저희 홀로 하나님을 섬기기에 모자라기에, 모이기에 힘쓰라고 하시며, 그리하여 또한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날까지 힘써 행하라고 저희를 모아주셨기에, 과연 그러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며, 주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는 귀한 일을 하는 그러한 교회로 저희를 불러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Church of the Called (Korean)
| Sermon ID | 7606114225 |
| Duration | 33:00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Bible Text | Romans 1:6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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