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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 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신약상병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서 14절까지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둬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직발부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줄이니, 그들이 굵은 배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남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버릴 것이오.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그들이 즉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적행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턴즈.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원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며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그때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니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 도다. 아멘. 하나님의 안해를 구하며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차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복된 날을 저에게 허락해 주시고 예배의 처소로 저희를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제 내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모여 싸우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저희의 영혼을 먹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진리를 듣게 하시고 그 들은 진리를 깨달게 하옵소서. 깨달은 진리가 우리의 삶을 비추는 등불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신념 가운데 항상 진리의 빛이 존재하게 하시고 또한 이 빛이 또한 세상을 비춰 나아가는 등불이 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이 시간에도 심이 부족한 자가 단에 서서 주님의 말씀을 증거하고자 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말씀의 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고 또 듣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함께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수납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도 악한 사탄이 말씀 선포와 또 말씀을 듣는 것을 해방치 못하도록 성령께서 시종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간절함으로 소원하올 때에 이 모든 말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우리 주님은 아무 때라도 재림하실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어떤 일들이 먼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우리는 예상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생각해 보면서 전자가 아니라 후자라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주님은 아무 때나 오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오시기 전에 어떠한 징조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요,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특별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2주 전에 이 부분을 살펴보면서 마태공 24장 9절에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는 이 말씀을 상고하면서 재림전에 믿음으로 인한 박해가 전세계적인 박해가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소에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많은 반대와 혼란과 박해가 있게 될 것입니다. 국가적인 박해, 전세계적인 박해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제 우리는 정말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징조는 이런 혼란 가운데서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배교한다는 것은 믿음을 저버리고 주님을 떠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을 저버리게 되고 성도들의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세 번째 증전은요. 이런 혼란과 박해 가운데서도 참된 성도는 끝까지 인내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태국 24장 24절을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배도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이 다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된 성도는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할 수만 있으면 이라고 이렇게 조건저를 붙이시는데 이것은 어떠한 시련과 혼란도 택하신 자들을 미혹할 수 없다는 주님의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할 수 있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해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두 번째로 생각해 보려고 하는데요.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온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전히 마태봄 24장 말씀을 설명하는 가운데 오늘 저는 유한계시록 11장 말씀을 읽었는데요. 유한계시록 11장 말씀이 마태복음 24장 14절 말씀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본문으로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4절에 보면요. 두 번째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드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제야 끝이 오리라 우리는 종말과 재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천지의 지변 같은 지진이나 또 많은 재앙 같은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언제 재림이 가까이 왔는가라고 이렇게 생각하기를 좋아하는데요 사실은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니 그제야, 마침내 그제야 끝이 올 것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종말과 재림의 징조는 복음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전파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전파되어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숫자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에 있어서 두 번째 중요한 징조가 될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보면요.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질의있다함을 면하기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도로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수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그 수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큰 수가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보다 더 자비로우시고 금률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보금 전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류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하기 전에 적어도 모든 민족에게 천국 보금이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역사의 과정 가운데서 모든 민족들은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보금을 듣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라는 측면에 있어서 보금 전파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주님이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시면서 지상에 남아있는 교회들에게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 보금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어야 한다. 그제야 세상에 끝이 올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고린도우스 6장 1절과 2절 말씀을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 너희에게 듣고 고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데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오늘 우리에게 복음이 들려진다고 하는 것은 얼마나 축복입니까?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영적인 혜택이 모든 민족들에게도 동일하게 나눠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복음 전파의 사역은 완수된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복음이 완전히 전파되었다고 할 수 없는 곳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성경을 자기인의 언어로 가지고 있지 못한 그런 족속들이 남아있죠. 그래서 우리가 박혜리 성교사님 1년에 한두 번 와서 성교 보고를 듣고 있는데 여전히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말로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한 미전도 종족들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수고들이, 많은 인력들이 얼마나 고급 인력입니까? 미국에서 최고의 공부를 했던 그 사람들이 그들에게 성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또 많은 선교사들이 지금도 아프리카에, 또 아시아에, 또 남아메리카 등지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이 교회에 맡겨진 보금전파의 사역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책이 바로 유한계시록 11장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사역을 해나가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그런 성경이 유한계시록 11장인데요.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와 있는 두 증인이 있는데 이 두 증인과 같이 보금전파의 사명을 끝까지 완수해야 하는 그러한 단체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장 말씀을 조금 설명을 드리면요. 1절에 보면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이렇게 묘사되어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성전과 재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이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은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2절에 보면 그 성전 바깥이 마흔두 달 동안 짓밟힐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흔두 달. 종말과 관련해서, 재림과 관련해서 마흔두 달, 1261, 3년 반. 이제 이런 숫자가 나오게 되는데요. 아마 기회가 있으면 이제 다니엘 부장을 아마 여러분들에게서 좀 설명 드릴 그런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도 42개월, 42달, 1261, 3년 반 다 같은 그런 이야기인데 성전 바깥은 42개월 동안 집필 것이다. 근데 이 기간이 바로 지상의 교회가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42달 동안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보금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영재실 11장에 보면 두 증인이 나오지 않습니까? 두 증인. 3절에 보면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줄이니. 두 증인. 이 두 증인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해석들이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왜 모세와 엘리야인가 하면 6절에 보면 그 두 증인이 이렇게 권능을 베풀게 되는데 그 권능을 보면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비가 오지 않게 하는 권능은 엘리야가 베풀었던 권능이죠. 그리고 다른 권능들을 보면 물을 피로 변하게 하였다. 모세가 행했던 권능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세와 엘리야가 아니냐. 또 어떤 사람들은 율법과 성지자를 말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고약과 신약이다, 말씀과 성령이다. 정말 다양한 해석도 있어요. 근데 여기 두 증인을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특정하기 보다는 저는 두 증인은 교회의 보금사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의 교회가, 이 땅에 있는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그려져야 하는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두 증인의 모습으로 유한계시록 11장은 설명하고 있다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절 말씀해 보시면요.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남나무와 두 촛대니. 이 감남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사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어두움을 비추는 그 촛대, 등대라고 이렇게 말씀하는 것을 보면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은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교회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해석이 결코 무리한 해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환상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지상의 박해 가운데, 환란 가운데 있는 교회로 하여금 적대적인 세상 앞에서도 당당하게,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라고 격려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저는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도 요한이 반모솜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많은 박해와 혼란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죠. 지상의 혼란 가운데 있는,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를 두 증인으로 그려주고 있는 거예요. 많은 혼란과 박해의 직면에 있는 두 증인. 그런데 이 두 증인은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연약한 인간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시고 또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7절에 보면 이 두 증인이 무적행에서 올라온 짐승과 전쟁을 벌이고 또 이 짐승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죠. 7절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적행으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지 이것은 교회가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인가를 잘 암시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두 주 전에 생각해 본 것처럼. 죄림과 종말이 있기 전에 기독교에 대한, 크리스찬들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박해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11절에 보시면요.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며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교회 복음 사역에는 많은 굴곡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환란과 박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많은 회심자들을 얻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랭하고 또 반대의 직면하고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할 그런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교회는 박해를 이겨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1장에서 보여주는 그 그림은 잠시 무조경으로부터, 지옥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이 두 증인을 이겨서 땅에 사는 사람들, 보금 전하는 사람들이 없어진 것으로 인해서 교회가 없어진 것으로 인해서 즐거워하고 심지어는 선물을 보내면서 그렇게 즐거워하지만 그러나 3일 반, 3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올라와서 생기가 들어와서 그들이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승리는 잠깐 동안에 불과하고 교회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영광스러운 교회의 순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듣고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불말과 불병고를 타고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신 것처럼 두 증인이 그렇게 하늘로 올라오라 하는 그 음성을 듣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님께로부터 이 음성을 들을 때까지 교회는 두 증인의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세상을 잠시 이는 것 같지만 그것은 잠깐 동안이고 결국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생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이 그들에게 임하여서 교회는 다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 승리를 얻고 이제 하늘 어린 양의 그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그리로 올라가게 된다고 그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재림과 종말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제 뭐 재앙적인 어떤 기근이라든지 천재지변이라든지 화상이라든지 그래서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그런 쪽으로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지막까지 초점을 맞추고 우리의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우리가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의 그런 메시지를 주십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복음 증거와 관련된 첫 번째 증조이고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기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조는요. 로마서 11장 26절 말씀인데요. 로마서 11장 26절 말씀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두 번째 증조는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도 전파되어서 유대인의 촉만한 수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현재 유대인들은 기독교가 아닌 유대교를 믿고 있습니다. 유대교가 뭡니까? 유대교는 구약 성경만을 믿는 종교입니다. 구약 성경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실을 믿지 않아요. 그래서 여전히 오실 그리스도, 오실 메시아, 오실 고원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고 또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인데요. 로마서 11장에 보면 25절부터 29절까지 보면 유대인들이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충만한 숫자가 돌아오게 될 것이라 그런데 이 부분을 굳이 따로 떼어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고 또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올 것이다 이렇게 따로 떼어서 말씀을 드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요. 로마서 11장 26절 말씀이 재림과 종말과 관련돼서 가장 많은 그런 불일치가 일어나는 가장 논란이 되는 그런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야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서 많은 그런 견해들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미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미국 교회의 크리스찬들은 주님의 재림전에 거대한 이스라엘의 민족적 회심이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도 한번 미국 정치인이 재림과 종말과 관련해서 농담 섞인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팔레스타인의 변화가 없는 것을 보면 재림의 때는 아닌 것 같다라고 그렇게 오수개 소리로 했던 이야기를 제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의 크리스찬들은 로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거대한 민족적인 회심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래서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될 것이고 민족의 대회심이 일어나서 유대민족은 그리스오 복음의 열렬한 전파자들이 될 것이라고 많은 크리찬들이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는 또 제가 연구한 그 부분들을 충분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면서 그것을 믿고 계신 분이 우리 교회도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대한 내가 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이 목사의 설교를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 견해를 취한다 라는 그런 식으로 이 종말과 재림과 관련해서 여러분들의 견해를 정리하시면 안 될 것입니다. 내가 어떤 교회를 다니든 간에 여러분들이 판단하시고 저 목사가 말하는 그 근거가 더 확실한가 아니면 다른 목사가 말하는 그 성경적인 근거가 더 확실한가를 따라서 여러분이 판단을 하셔야지 우리 교회 목사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이 견해 나는 저 교회에서 먼저 배웠기 때문에 난 저 견해 그렇게 성경적인 견해를 갖게 되신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저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지를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을 드리고 또 저는 어떤 견해를 취하고 있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온 이스라엘을 모든 유대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그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9장 28절 같은 말씀을 좋아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루느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집화를 심판하리라. 여기 보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말씀을 따라서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대회심이 있을 것이다. 누가 보면 21장 24절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들이 칼날의 죽임을 당하면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발필이라. 명확한 긍정적인 진술은 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안목적으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발필이라 했으니 이방인의 때가 다 차고 나면 이제는 유대인의 때가 오는 것이 아닌가라고 충분히 해석할 수도 있는 그런 구절입니다. 그래서 마태봉 19장이나 누가 봉 21장의 그런 견해들을 가지고서 온 이스라엘 그래서 민족적인 대회심이 일어나게 되고 이스라엘은 다시 다이코와 솔로몬 시대와 같이 강력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나라가 될 것이고 그리스도 복음의 수호자들이 될 것이다 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현재 있습니다. 저는 온 이스라엘의 고운을 받으리라는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 더 성경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성경의 여러 그런 말씀들을 기반으로 해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을 드리면요 정반대의 그런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 주장은 대부분 장로교 다니는 장로교 목사들이 많이 주장하는 것인데 로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은 민족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신약의 교회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저는 저도 장로교 신학교에서 계속 공부를 해왔고 이제 유일하게 장로교가 아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이제 밥존스 대학인데 밥존스 대학과 뉴욜리언스 백디스 디올로지코 세미너리에서 침례교적인 신학을 공부했는데 훨씬 많은 시간을 저는 장로교에서 보냈고 또 장로교 신학교에서 공부를 더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을 때 이 온 이스라엘을 신학의 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로마서 9장과 10장과 11장을 읽어보면 바울이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아주 자주 사용했는데 이것은 이방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민족적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맥이 이러한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9장과 10장과 11장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바울이 민족적인 유대인을 가리키면서 했는데 11장 26절에 와서 온 이스라엘을 신약의 교회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문맥을 무시하는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성경 해석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는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은 민족적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이 말씀을 해석할 때에 정말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회심이 일어나는 것이냐? 유대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인가? 라고 우리가 반문해 볼 수 있는데요. 유대인들이 구약에서와 같이 주님의 재림 전에도 다시 특별한 주의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암호스 9장 11절 제가 시간 관계상 암호스 9장 11절 한 절만 언급하려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대회심을 주장하는 목서들과 또 많은 크리스찬들이 좋아하는 것이 구약의 많은 예언인데요. 그 중에 하나가 암호스 9장 11절입니다.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운다. 다시 일으킨다. 여러분 이스라엘 국기를 보면 별이 하나 딱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 별이 다윗을 상징한다고 해요. 그래서 다윗 시대에 그 솔로몬 시대에 그 강력했던 이스라엘이 다시 이제 앞으로 올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이 아마 국기를 통해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데 지금 암호수 9장 11절에 보면 다윗에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것을 옛적과 같이 세우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제 민족적 대회심으로 해석하고 모든 유대인들 한사람 한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는 그 해석을 지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도행전 15장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야모스 말씀을 인용하는데요. 사도행전 15장 15절부터 17절까지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하파도다 기록된 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위세에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사도행전 15장에서 분명히 아모스 말씀을 인용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우리가 읽고 해석할 때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예외인가 하면 신약 성경이 구약 성경을 해석해 주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어요. 특히 마태봉에 보면 많은 구약을 인용하죠. 그러면 우리는 어떤 견해를 취해야 하냐면 성령께서 구약 성경을 해석해 주신 거잖아요. 신약의 저자들을 통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최종적이고 완전한 성경 해석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하는 거예요. 분명히 신약이 구약을 해석함에도 불구하고 구약 성경을 독단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호수 9장 11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인 거예요. 왜냐하면 사도행전 15장에서 하나님의 성령께서 야구구의 입을 통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이미 확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마치 대법원에서 어떤 일에 있어서 판례가 있으면 그것은 최종적인 선고인 것이죠. 더 이상 거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논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다윗에 무너진 장막을 세우시는데 민족적 유대인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찾는 남은 사람들, 남은 자들과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을 통해서 세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루마서 11장 26절에 온 이스라엘의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서포트하기 위해서 아모스 말씀들을 인용해서 고약에도 이 말씀을 하고 있으니 우리의 해석이 타당한 해석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사도행전 말씀을 이미로 생략했다면 그 사람은 정직한 성경 해석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위세 장막은 다위세 육신적 후손들을 통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위세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 그리스를 통해서 세워질 것이고 그래서 이방인들과 주를 믿는 이방인들과 또 남은 자들을 통해서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사도행전 15장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 넘어서 11장 26조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마태보금에 너희가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슬의 열두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을 좋아한다고 말씀을 제가 먼저 드렸죠. 그런데 마태봉 8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정반대의 말씀이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어떤 한쪽 견해가 완벽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두 견해들을 다 마음을 열어놓고 다 여러분들이 살펴보고 어느 것이 성경이 지지하는 말씀인지 어떤 견해인가를 부지런히 연구하셔야 되는데요. 8장 11절과 12절에 보면 정반대의 말씀도 있습니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미 있으리라 여기 본 나라의 자손들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죠. 유대인들은 쫓겨날 것이다. 어두운 데서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몇 구절을 기반으로 해서 어떤 견해를 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이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은 치명타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로마서 11장 26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치명적인 그 구절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과 29절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여 약속대로 유옥을 이을 자니라. 바울이 거의 자기의 신학을 정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보고만에는 유대인이 따로 없고 헬라인이 따로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의 구별이 없습니다 종이나 자유인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리스 안에서 다 하나이네라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신학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많은 크리찬들이 뿌리가 아닌 가지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 다시 옛날의 영광과 그런 권능을 회복하게 될 것이고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중요한 것은 가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가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중요한 것은 뿌리다. 그 뿌리가 누굽니까? 오직 다유세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시는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 안에서 고약과 신약의 성도는 하나고 고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는 하나라는 사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유대 민족만의 특별한 주인은 존재할 수 없다라고 하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로마서 11장 26절의 그런 올바른 해석이 무엇인가를 좀 말씀을 드리면요. 바울이 길게 유대인들의 문제를 9장과 10장과 11장, 3장이나 할애해서 로마서 9, 10, 11장 유대인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가 공부할 수도 있고 공부 안 해도 되는 부분이 아니라 성경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부분을 알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데요. 왜 바울이 9장에서 갑자기 유대인의 문제를 거론하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요. 로마서 8장의 결론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은 아마 여러분들이 저도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8장 29절부터 30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기 하려 하십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러분 이 28절부터 30절까지 나와 있는 이 묘사들을 보면 참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 이 묘사들 하나하나는 참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택하심을 잘 나타내고 있는 구절들인데요. 결국 바울이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그 어떠한 존재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미리 아셨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리 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부르셨다면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존재도 또 그 어떠한 것도 그들을 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 바울의 로마서 8장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8장 마지막에 놀라운 절정에 보면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고 마지막 절정에서 선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어떠한 것도 그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여러분 이런 바울의 진술을 듣게 되면 우리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의문이 뭡니까? 하나님이 미리 아셨고 또 그 뜻대로 부르셨고 또 미리 정하셨다면 고향의 이스라엘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지 않았는가? 민족적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고 하는 의미는 우리 가운데 당연히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장과 10장과 11장을 할애해서 유대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의 테카심, 미리야심, 또 그 뜻대로 부르심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러면서 9장 6절과 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패여진 것 같지 않도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되어 있는데 조금 더 이 말씀을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오. 또한 아브라메시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사로부터 난 자라야 내시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통해서 민족적 유대인들을 언급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모든 유대인들 하나하나가 다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진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 난 자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해 보십시오. 가난한 땅에 들어가게 해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됩니까? 모든 민족적인 유대인들이 다 가난한 땅에 들어갑니까? 그렇지 않죠. 광리에서 죽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심지어는 모세조차도 가난한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남은 자들이 들어갔어요.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라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이사야를 통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모든 유대인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경험합니까? 그렇지 않죠. 그 중에 남은 자들이 그것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는 것이죠. 그래서 유독 로마서 11장 26절의 모든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유대인들 하나하나가 다 구원을 받게 되고 다 예수를 믿어서 보금의 전파자들이 될 것이다 라고 해석하는 것은 억지적인 해석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의 고원을 얻으리라는 그런 말씀 우리는 무시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도 보금이 전파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보금이 전파돼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주 예수 그리스로를 믿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처럼 유대인의 충만한 수도 보금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재림 전에 있게 될 일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러분 유대인들이 지금 충분하게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니까 그렇진 않죠. 우리가 국가적인 어떤 그래서 전 세계적인 강력한 나라가 되고 팔레스타인에 모든 유대인들이 다 돌아와서 그런 영향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유대인의 촌만한 수가 나에게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에 많은 숫자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근데 저는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근데 제가 기대하는 숫자보다도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숫자보다도 훨씬 많은 수가 될 것입니다. 그때에 생각해 보십시오. 보금을 반대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인정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서 그리스원에서 이제 유대인들과 이방이 하나가 될 때에 그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약속하시면서 보금을 증거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 그리스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분명히 나타나야 하는 징조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믿음으로 살아난 성도들이 세상에서 바퀴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첫 번째 징조였고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배교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사랑이 식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신 자들은 끝까지 인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오늘 살펴본 두 번째 재림의 징조는 보금이 모든 민족들 가운데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적어도 한 번은 주 예수 그리스의 보금을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지상에 있는 교회에게 보금 선포의 사명을 맡기십니다. 요한계시록 11장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두 증인의 모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퀴를 직면하는 모습으로 또 환란을 직면하는 모습으로 많은 위협 가운데서도 두 증인의 모습으로 보금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고 그 교회는 두 촛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잠시 교회를 이기는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교회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이고 복된 소식이 온 성도들과 교회에게 올려 퍼질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이 있을 것이고 그때에 지상의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근데 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도 여전히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민족적인 거국적인 그러한 회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 미리 정하신 자들,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가운데 유대인들이 예수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도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그것은 지상의 교회의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초점이 또 우리 그린빌 독립장로교회의 초점이 모든 민족에게 복된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그 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또 우리 교회를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통해서 저희가 어떠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 또 저희 교회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유한계시록의 11장에 나와 있는 그 신실한 증인들 참으로 환란과 박해가 있지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복음을 지키며 그 자리를 지켰던 신실했던 그 증인들이 신약의 교회라고 말씀하셨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능력과 또 우리의 신실함과 또 우리의 충성됨으로 어찌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날마다 저희를 도와주시고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케 하시고 권능으로 충만케 하셔서 하나님 그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되지 않게 하시고 두 증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또 두 초대의 모습으로 세상을 밝히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에도 또 복음의 현장에서 선교회 현장에서 많은 환란과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사역을 감당하는 주님의 종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도중인이 무정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 그들이 다시 부활했던 모습들을 하나님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현재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많은 굴곡이 있지만 하나님 그 모든 것들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자리를 잘 지킴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방인에 충만한 그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의 복음을 듣고 돌아와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역사들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 고귀한 일에 저희도 또한 동참할 수 있도록 오늘도 이 메시지를 사용하여 주시길 원하며 이 모든 말씀을
재림과 종말(3): 재림의 징조(2)
Sermon ID | 715231727263802 |
Duration | 53:02 |
Date | |
Category | Sunday Service |
Bible Text | Revelation 11:1-14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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