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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약속의 아들에 대하여서 말씀해 주시고 그 약속의 아들을 곧 그들이 품에 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그와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개인적인 믿음의 유익업만을 위하여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그 일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행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면 소동과 고모라의 멸망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고대 그 팔레스타인에 있던 많은 도시들 가운데 소듐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해야 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 두 성업이 악한 도시이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그 두 성업이 악하기 때문에 그들만 악하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사람들의 풍습, 삶이
거의 동일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부라함과 사라를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선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교훈하시기 위하여 이 소동과 고무라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선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그들이 복의 권원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교훈해 주시는 바가 무엇인가
여러분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거기에서부터 구원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을 뿐만 아니라 구워놓는
모든 사람의 개인적인 그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도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고 그리스도를 우리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그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있어야 되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알고 우리
자신이 바로 그와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그 시대의 약한 사상과 풍속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유와 법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는가를 그들의 마음 가운데 끊임없이 생각할 때
그들은 구원이 자신들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발견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일을 행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하나님의 경고를 우리 자신의 마음 가운데도 분명히 새겨야 합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복의
근원이 되어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들에게 분명히 새겨져야 했던 것이 바로
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면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모든 죄인들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 자라야 구원을
갈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희벌이서 9장 27절 말씀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하신 그 말씀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과 마음으로
깨닫고 자신의 영혼으로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위한 발걸음을 한 걸음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교회를 다니고 교회를 오랫동안 다녀서 그가 직분자가 되고 교회에서
여러가지 많은 선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그가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은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모두 다가 참으로 우리의 양심으로든지 하나님의 말씀으로든지 참으로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라야 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깨달아라야 하고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고 갈망하며 자신을 도와주시기를 구원의 은혜를
회풀어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고한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하여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에 그들에게 이 소동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하여서 분명하게 심어주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소돔의 멸망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이 말씀을 듣고 무엇을 행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그 말씀을 듣고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오늘 보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대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23절 말씀하면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로 돼 라고 말하면서 그가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냥 대화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
이 말씀을 읽어보면 이것은 아브라미 하나님을 향하여 드리는 간절한 간구,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심판의 메시지, 말씀을 듣고 나서 아브라함은 그냥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 이 약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라고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자마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기도합니까? 23절 말씀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면서 그가 하나님께 간과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이런 기도를 하였을
때 우리는 아브라함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그는 분명히 그 소돔에 그하고 있는 자신의 조카로서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서 한순간에 멸망하게 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아브라함은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그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
가운데 의인을 함께 멸하려 하시는가?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손상되지 않겠는가? 라고 하는 그런 마음이 이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에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그가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은
중보자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둠과 고모라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서
하나님께 간과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진정한 성도들이 배워야 할 기도의 모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그 성 안에 있는 자기의 조카로스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롯이 단순히 자신의 조카라고 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 로시, 아브라함이 로스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이유는 자기의
조카 로시 하나님을 믿는 의로운 심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향해서 자기의 조카 로스를 구원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라고 그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뭔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이것을 도와주셔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내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라고 생각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를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주문을 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리가 간절히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을 헤아리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겠는가 라고 확신하고 떼를 쓰는 기도는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하는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유행하는 기도가 되게 그런
정신을 넘어서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런 기도의 정신은 우리가 버려야 할 우상승조에 해당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기도하는 데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분명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을 절대로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소듕과 고모라를 멸망하시겠다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이
공의를 행하시는 것은 지극히 적당하다는 것을 그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듕과 고모라를 멸망시켜서는 안됩니다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그 공의를 행하시되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라는 의식 속에서
그가 하나님을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 두 가지가 절대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분명하게 의식하는 사람의 정신의 상태이고 이런 정신의 상태가 올바른 기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23절 말씀에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고 25절에서도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느니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까라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을 들어보면 아브라함의 강구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상태에 있는지 그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깊은지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당장 자기의 생각에
피로에 급한 것을 하나님께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러나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다루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에 거설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가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실 때에 만약에 의인들도
함께 멸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위배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비록 악한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의로운 심령을 가지고 있는 의인을 향해서는 하나님이 자별을 베풀어 주셔야
합니다라고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아브라함의 태도, 아브라함의 지식,
아브라함의 기도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기도의 정신이며 올바른 기도의
자세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함으로써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로시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기도도 이루어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내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의 뜻은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뜻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면 내 자신의 만족,
내 자신의 이익, 내 자신의 정욕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은 없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 해야 할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올바른 기도의 태도는 내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많은 기도의 시간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하나님 꼭 주셔야 됩니다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는데 시간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의 많은 시간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알기 위하여 시간이 사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고 내가 구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서 정당한 것인가? 하나님의 성품에 합당한 것인가? 하나님이 기법 받으시는 뜻인가? 여러분, 이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발미암하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시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지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됩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우리의 마음, 은밀하게 우리의 마음 가운데 내재되어 있는 자기의 만족, 이기심을 드러내시고 기꺼이
나의 그와 같은 정욕을 따라 구하는 마음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진정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내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아르는
것이 우리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하지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에 올바른 태도와 올바른 마음과
올바른 정신이 겨려되어 있고 오로지 자기 생각이 사로잡혀서 하나님께 자기의 뜻을 강변하는 그 태도를 끝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기도를
보면서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과 성품을 그가 잘 알고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거기 대주가 롯이 있는데 롯은 살려주셔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행하셔야 하는데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 하시나이까 그것은 불가한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 아브라함의 태도 그의 마음과 정신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에서 나오는
그런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믿음으로 하는 기도가 무엇인가? 자기 신념에 가득 차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떼를 쓰고 구하면 이루어진다 이런 정신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야고보사도가 의인의 간구든 역사하는 능력이 있다 힘이 있다 이렇게 말했을 때 그 기도는 우리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하는 그런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라야 참된 기도가 되는
것이고 이러한 기도라야 정말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의 중도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여러분 우리들은 이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무라 사이에 서서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에
그는 단순히 소돔과 고무라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라고 하는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런 태도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거스르는 태도인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아브라함은 정말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차별심이 나타나기를 간구하면서 하나님께서 악인을 멸하시면서 의인을 함께 멸하지 말아달라고 그가 겸손하게 간구할
때의 그 기도는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기도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두 천사가 소동과 고모라에 들어갔을 때 이 두 천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브라미 조카인 롯의 가정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였지만 그 성을 능히 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을 그 성에서 구원해 내기까지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거기에 정말 아브라함의 기도가 응답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바로 아브라함의 중부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이 아브라함의 기도의 자세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기도의 태도가 어떠해야 되는지
우리가 배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두번째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끈질긴
기도입니다 그는 소동과 고무라를 위하여 간구할 때에 의인 오십이 있으면 멸하지 않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의인 오십을 왜 아브라함이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 학자들은 말하기를 이 오십이라는 이 숫자는 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기본적인 숫자다라고 그렇게 학자들이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도시에 의인 50명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하나의 의로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로 말하면 하나의 교회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도시가 아무리 타락하고 부패했다 할지라도 그 도시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따르는 의인 50명의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의인 50을 인하여서 그
도시를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의 그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의인 50명 때문에 이 모든 악한 자들을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죠 하나님께서 이 의인 오십을 인하여
이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도시에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의로운 오십을 인하여서 그 도시가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즉 의로운 50명이 이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존재할
때에 그 도시의 부패가 타락이 멈추고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하고 회귀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50명의 의로운 공동체, 거룩한
교회를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돌아와서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생각할 때 그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의인 50명을 그가 아무리 생각해도 50명을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다시 강구합니다 하나님 그 도시의 의인 50에서 5명이 빠진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십 오인을 인하여서도 그 도시를
멸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 나일까? 라고 말할 때 하나님께서 사십 명으로 말미암을 멸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30절 말씀을 보면은 아브라함이 다시
하나님께 말합니다. 내 주여 놓아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없어서 거기서 3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말합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단순합니다. 거기서 30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않아리라 말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다시 말합니다. 감히 내가 죽게 하려나이다
거기서 20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20명으로 말미야마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20명까지 말했지만 그에게는 도무지
이 20명의 숫자도 그의 마음가운데 떠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합니다. 32절 말씀 보시면 주는 놓아지마
없어서 내가 이번만 더 아르리이다 거기서 10명을 찾으시면 어찌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할 때 내가 10명으로 말미야마
멸하지 아니하리라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아브라함의 간고의 태도에서 무엇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거기에서 영혼을 향한 아브라함의 간절한 사랑을
엿볼 수 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마음 가운데는 정말 그 성의 자기의 조카로
외에는 그가 정말 하나님을 경유하는 의로운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면서 어떻게 했던지 이 두 성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고자 노력하고 있는 아우라함의 끈질긴 모습을 우리가 보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숫자를 낮출 때마다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면목이 없고 그리고 참 할 수 없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지극히 낮추면서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부탁의 수준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되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들암의 이런 태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포기하고 믿음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끈질긴 믿음의 기도는 의인의 기도이며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자기의 생각을 강요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그 성이 구원받기를 원하는 그런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베풀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끈질기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도 이런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자기의 뜻을 따라서 기도한다면 우리가 한두 번
기도했다가 하나님이 응답이 없을 때에 우리는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가
확신하고 있다면 그것이 믿음의 기도라면 우리는 결코 그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수요 기도회때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 성도들이 우리가 매번 같은 기도의 제목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정말 교회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라면 우리는 그 기도가
결코 지겨워질 수는 안됩니다 한두 번 기도하고 난 다음에 똑같은 기도를 우리가 계속 기도해야 되나라고 하는 그런
불신앙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생겨난다 할지라도 여러분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는 한두 번 하다가 아 이거는 안되라고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영혼들이 돌이켜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가 나타나기를
위하여 끈질기게 기도하고 그리고 또 다음에 기도할 때는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심령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이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고 있는 성도의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기도의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바로
그와 같은 기도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의 기도에서 배울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에는 경건한 가정의 중요성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10명까지 기도하고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고 물을 때에 이 10명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 10명은 가정과 관계 있습니다. 이 10명은 고대세계의 가정의 최소 단위라고 보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가정이면 1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 가정을 몇 명으로 보죠? 한 4명으로 봅니다. 그렇죠? 그래서 부모와 자녀 2명을
한 가정의 단위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그러다 고대세계는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열명까지 기도하고 거친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약에 한 가정이 온전하게 믿음으로 서 있다면 하나님은
그 가정을 인하여 심판을 돌이키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가정이 그 사회의 하나의 공동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정이 그 도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경근한 가정으로
존재하게 된다면 그 가정은 자신들의 영혼을 지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도시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이웃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선교의 역사를 보시면 18세기의
모라비언들이 선교사를 파송할 때 그들이 많은 곳에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특별히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에 또 아니면
태평양이나 가리브해 연안의 섬들에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할 때 그들의 선교의 원칙이 무엇이냐면 싱글은 파송하지
않는다 였습니다 즉 남자나 여자나 혼자 한 명을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고 한 가정을 파송한다는 것이 그들의 선교의
원칙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왜 그런 원칙을 세웠는가 생각해 본다면 이와 일맥 상통합니다. 한 가정이 이 교도의 땅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거기에서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서로를 세워줄 수 있지만 그러나
한 사람이 떨어져서 거기에 놓여지게 된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위태로운 것입니다. 그 이교도의 삶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거나 또
다른 사람들에게 역량을 주는 것이 매우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로 우리들은 이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를
우리가 인식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도 그 소돔이 한 가정이 하나님
옆에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한 가정을 인하여 그 성을 용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하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가정을 통하여 그 도시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한 가정을 인하여 그
도시가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사정을 알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한 명을 위하여 간과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이 그렇게 경건한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은 비록 롯이 의로운
자였다고 말하지만 그는 불 가운데 구원을 받았으며 그의 아내와 두 딸은 경건하지 못하였고 그의 두 사위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듬과 고무라는 부패한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었던 것입니다. 롯의 가정이 경건했다면 그들은 그 도시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가정은 그 도시에서 어떤 영향력도 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오 소듐은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의 본질을 파괴하는
악이 만년한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성적으로 방종하였고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을 파괴하고 더럽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경고를 삼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시대에 가정이 점점
파괴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정신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척해야 될 정신이 있는데 결혼하지 않은 삶을 멋있는 삶으로 보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혼자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사로 혼자 살 수
있는 그런 상태를 허락하셨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그렇지 않은 한은 우리가 다 가정을 이루고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남자와 여자가 과정을 이루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이 가장 완전으로 나아가는 좋은 방법은 결혼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성숙해지는 삶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결혼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환상은 무엇인가면 자기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성과 멋있는 남자와 결혼해서 살면
내가 행복을 얻었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것은 착각입니다 결혼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면서 서로 다듬어지고
서로 성숙해지고 서로 거룩해지고 서로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행복을 배워가는 것이 결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이 성적으로 방종한 삶을 살면서 그것을 자신의 개인의 자유로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 이것이 바로 소듕과 코모라에서 있었던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며 하나님이 주신 가장 기본적인 계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고 더럽히는 일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의 자기 변명일 뿐이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그
말씀은 가정을 이루어서 자녀를 통하여서 자녀를 낳으므로 그 안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배우고 본받아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경은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들은 자녀만 낳으면 구원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혼자서 살아가면 정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잘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통하여서 그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통하여서 우리들은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실제적으로 실천적으로 경험하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버지가 되고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그 사랑과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의 그 마음을 우리가 배우고 성숙하게 되고 본받아가게 되면서 진정한 구원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그와 같은
영적인 경험이 이 가정의 삶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를 길러가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 안에서 거룩한 가정을 이루면서 비로소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겨루는 이 단순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관섭이나 성적인 필요를 위하여 만들어낸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재정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고 그 뜻을 이루어가는
방법이고 죄인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방식이며 구원의 현장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이 중부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거룩한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악한 독소를 제거하시고
교혼하시기 위하여 소돔과 고무라를 날망하시고자 했는데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하여 그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어 가실 때에 가정을 왜곡하고 파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그는 깊이 깨닫고 그와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거룩한 가정을 이루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이 복음이 온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아브라함으로 배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 보다 더 나은 개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희미한 개시를 우리에게 밝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원의 구주로 모시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을 더 밝히 보여주셨고 구원의 길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 땅을 살아야 하는지를 배워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더 자세하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은 이 땅에서 거룩한 가정을 이루고
거룩한 교회를 이루어서 이 타락하고 세속적인 세상에서 우리가 산 위에 동네가 되어야 하고 등경 위에 등대가
되어야 하고 빛으로 소금으로 우리의 삶을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우리가 금화같은 삶을
우리 자신의 개인의 심령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루어갈 수 있는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드러내고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창 18장 22-33절 아브라함의 중보
Series 창세기1
| Sermon ID | 61922611564361 |
| Duration | 1:37:58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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