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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을 단지 이야기 책을 읽는
것처럼 그렇게 읽을 위험이 있습니다. 제가 창세기를 함께 강의해 나가는데 여러분 특별히 이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참 흥미진진한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참 인간적으로도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을
때 단지 우리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흥미진진한 인생의 어떤 옛날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서 이것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었는데 성경을 읽으면서
나에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때가 언제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제가 성경을 좀 읽어야 되겠다 생각하고 자각하게
된 것은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창세기를 이야기로만 듣다가 제가 어느 날
시간을 정해서 창세기를 한번 쭉 읽는데 제가 요셉의 이야기에 가서 요셉이 자기를 팔아버린 형들을 만나는
장면에 가서 제가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요셉이 형들을 보고 그 마음이 정말 감동해서
방에 뛰어들어가서 우는 장면을 읽으면서 제가 그 요셉의 이야기가 너무 가슴에 절절히 다가와서 저도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또 한 군데는 제가 에스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에스도가 자기 민족의 멸망을 앞에 두고 자기가 죽으면 죽으리라 말하면서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장면에서도 제 마음이 크게 감동했었던 그런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읽으면서 이렇게 성경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우리의 마음이 감동하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우리가 그렇게 극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감정이 북받치고 감동되는 그런 것을 목적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럼 성경은 왜 기록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지금쯤 한번
자신의 성경을 읽는 삶을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성경을 어떻게
읽습니까? 성경을 단지 어떤 내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얻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한 그런 방편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여러분 성경을 읽는 것은 좋지만 그것도 성경을 올바로 읽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을 때 내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이 말씀을 읽어야 내 영혼이 강근해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성경을 의무적으로 읽을 때에 여러분, 그것이 우리의 경근의 훈련의 한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정도 수준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면 그것이 또 우리 자신의 또 다른 의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는다면 여러분, 그것이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면에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그런 균형 잡힌 우리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성경의 기자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긴 족장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까? 이것은 단지 우리가 신앙생활하는데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감동적인 어떤 이야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성경의 기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 위하여 매우 세심하게
이 성경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우리가 야고백 이야기를 읽으면서
야고백이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렇게 인식하고 끝나버린다면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너무 무성의하게 읽는 것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이 성경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성경의 위대함은 이 이야기 자체뿐만 아니라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여기에 담고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메시지, 하나님의 뜻을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이고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려고 하는지 그 중심적인 메시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을 깨닫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하면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가 읽어 나가면서 이 야곱의
이야기의 중심적인 내용 전개를 우리가 살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야곱이 자기 형에게 미용을 받아서 자기 집을 떠나서
자기 외삼촌의 집에 가서 거기에서 자기 아내를 만났다 이게 핵심적인 이야기입니까? 여러분 우리들은 이 야곱의
여행의 목적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장세기 28장, 29장에서 나오는 이 야곱의
여행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이 이야기의 핵심이 무엇인가면 바로 하나님의 은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상에게 주신 은약이 어떻게 야곱에게까지
전달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이 야곱의 여행 그가 라반의 집에서 자기의 아내를
만나서 어떻게 그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야곱의
여행이 형을 속인 일이 계기가 되지만 실상은 그 문제의 핵심의 결론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삭의 가정이 평안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삭과
리버가의 부부관계나 야곱과 에서와의 형제와의 관계나 또 이삭과 에서 리부가와 야곱 사이에 있었던 편애 부모
자식 간의 편애의 문제들을 생각할 때에 짐작할 수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삭이 자신의 실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영적인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애써가 아닌 둘째
야곱을 선택하고 그가 장자로서의 권리를 이어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지만 그러나 이삭은 애써 그
일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게시로 말씀해 주셨지만 이삭은 자기의 자녀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그 뜻이 우리 가정에서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그가 세심하게 살피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육신의 성향을 따라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그래도 장자인 예수를
축복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그런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 가운데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이삭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애설을 축복하기를
원했지만 야곱을 축복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해서 그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계획을
막으실 때에 그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결코 자신의 뜻대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그의 마음 가운데의
삶에 충격적으로 다시금 인식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야곱을 축복한 일을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았다는 것을 느끼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이삭의 가정에서는 형제간에
에스가 이제는 야곰을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는 그런 상황으로까지 나아갔지만 이삭과
리브간은 이 에스의 증오 때문이 아니라 이런 곤란한 가정상황 속에서 이삭과 리브간은 이제 자신들의 삶을
다시 돌이켜보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 육신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더 큰 약속
그것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돌이켜 생각해 보는 그런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삭과 리부가의 삶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그리고 또 이것이 야곱의 삶의 여정을 바꾸게 되는 계기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의 말씀 중간중간에 이 창세기의 기자가 응급하는 말씀들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면서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오늘 우리가 분명히 생각해봐야 되는 것은 창세기 기자는
창세기 26장 말씀에 가서 보면 그의 가장 이야기를 하면서 26장 34절과 35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한마디 언급합니다. 에스가 40세의 헷족 속 부에리의
딸 유딧과 헷족 속 엘론의 딸 바스마스를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그들이 이삭과 리브라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라고
이미 언급을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야구배의 삶에 이삭의 삶에 그가 매우
승승장구하면서 그의 삶이 평안한 그때에 이미 그의 가정의 어둠의 그림자가 덮히고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면 에서의
결혼이었습니다 에서가 나이 40세에 결혼을 했는데 이 결혼의 모습을 보면 이삭과 리부가가 그의 아들, 맏아들 에서의
교론에 대해서 거의 간섭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해 쪽 속 여인 유딧과
바스맛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했고 이삿과 리부가는 자기의 아들의 그 결혼에 대해서 그것을 반대하거나 제지하지
못하고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자신들이 자기의 아들의 결혼을 인도하지 못하고 자기의 아들의 결혼을 방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삭과 리부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27장의 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27장 46절 말씀의 가사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리부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사람의 딸돌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구의 마누리 땅의 딸들 곧 그들과 같은 헷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까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보면 이
애서의 결혼이 리부가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고 있습니다 리부가는 헷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다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이삭의 가정에 믿지 않는 며느리들이 들어와서 그들이
우상 승매적인 삶을 살고 가난한 사람의 풍속을 따라서 살아갈 때 그것이 리부가의 마음에 그의 영적인 삶에
큰 고통이 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28장 6절 말씀은 이제 에스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이스마엘의 딸들 중에서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했다 라는 그런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장세계
기자는 계속해서 이 이삭의 과정에서의 교론 문제를 거듭거듭해서 응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부부의 문제도 있고 그리고 형제 간의
문제도 있고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사이에 계속 흐르고 있는 이 창세기 기자의 마음
가운데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이렇게 계속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면 결혼의 문제였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기자에게 있어서 이 결혼의 문제가 왜
중요합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있어서 이 교론의 문제는
단지 그들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개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그들의 자손에게 약속 그들에게 하신 자손에 대한 약속 그들이 하나님의 복의 근원이
되겠다고 하신 약속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뜻을 그들의 마음에 품고 그들의 삶이 온통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만한 그런 믿음을 담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그들의 삶에서 이룰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가장 기본은 이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을 함께 경유하면서 믿음의 자손들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어야만 그 일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2사기 그런 교론의 문제에 대해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가 야곱을 축복하는 계기로 인하여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그 뜻을 막으시고 야곱을 축복하게 하셨는가? 그는 자신의 삶에 일어난 그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이삭은 자기가 축복하려고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애서가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것을 막으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깊이 생각해 볼 때에 자기는 애서를 좋아하지만
애서가 지금까지 보여왔던 모든 삶의 모습들을 다시 평가해 보고, 다시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약속 아래서 자기의
아들 이삭을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애서를 다시 생각해 보니까 이 애서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서는 자기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신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장작끈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가기에는 너무 불성실한 그런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 보여왔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에 이제 이삭은 애서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에는 너무 부족한 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보면 자기 자신도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메에게는 장자가 이스마일이 있었습니다. 이삭보다 열다섯 살이 더 많은 이스마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이스마일을 그 집에서 쫓아내고 이삭이 장자로서의 특권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고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가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삭은 에스가 아닌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후사로서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버지와 자신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어가야 할 약속의 유업을 이어갈
후사로서 그가 이제 하나님 옆에서 살아야겠는데 이 야곱을 보니 이 야곱에게도 결정이 많습니다. 자신의 아들 야곱도 하나님을 경유하는 그와 같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이삭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결단이 무엇입니까? 77세나 된 이 야곱이 그의 삶에 가장 먼저 있어야
될 것은 이제 결혼하는 일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웰세바에서는 믿는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그리고 또 그 형 애서가
너무 야국을 미워하고 그를 죽이려고 하니 이 두 부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은 무엇이었나면 야국을 하란으로
보내서 자기 오빠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게 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그들이 생각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은 이제 야국을 하란으로 보내서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도록 떠나보내야 되겠다 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그는 야곱을 불러서 이제 당부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읽은 28장 3절 말씀에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면서 그를 받던 아람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입니다. 28장 3재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와 함께 내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곳 내가 거류하는 땅을 내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하면서 그를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아들을 의탁하는 그와 같은 믿음에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야곱은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여행은 단순한 도피성 여행이 아니라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아우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의 여행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이 여정의
결과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우리가 보게 됩니다. 그는 이제 길을 떠나서 동방사람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이르렀고 그가 우물이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거기에서 그가 자기의 외삼촌 라반과 그의 딸 라헬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보면
야곱이 여행을 통해서 라엘을 만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러분, 야곱이
라엘을 만나는 장면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을 위하여 신부를 구하는 장면과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여러분, 비슷한 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다 배우자를 우물가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우물가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여러분 그러나 리부가는 자신이 이삭의 좋은 걸 위하여
우물을 제공했지만 여기에서 야곱은 자신이 라해를 위하여서 물을 제공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읽은
기사에 보면 야곱이 우물가에서 여러 먹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은 장정 두세 사람이 힘을 합쳐야 그
뚜껑을 옮길 수 있는 그런 형태의 우물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대의 우물은 이 광야의수 우물은 귀한 것이었고 거기에
짐성의 사체나 다른 오염될만한 것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은 우물을 파고 난 다음에 거기에 큰 돌로
뚜껑을 덮어서 우물을 보호했고 이 목자들이 양을 치다가 이제 저녁이 되면은 자신의 양떼들을 몰고 그곳에 오는데
오는 순서대로 뗄 무리를 이루어서 그곳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목자들이 두세 사람이 모이게 되면 힘을 합쳐서 그 뚜껑을
열고 온 순서대로 양들에게 물을 먹이고 그리고 난 다음에 힘을 합쳐서 뚜껑을 닫고 난 다음에 각자의 초소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삶에 있었던 일과였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에 때가 두세대에 모여있었다라고 한 것은 이 목자들이
이미 두세명이 모여있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여기에 보면 이 목자들이 두세 명이 모였으면 이 우물을
옮겨야 하는데 뚜껑을 옮겨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목자들이 다 오면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때
라헬이 왔습니다 라헬이 왔을 때 이 야곱이 어떻게 합니까? 그는 이 목자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외삼촌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그리고 그의 양때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라헬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정말 수원이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미 자신의 외삼촌의 모든 형편을 목자들을 통해서 다 듣고 난 다음에
라헬이 왔을 때에 놀랍게도 이 야곱이 이 우물의 뚜껑을 옮기고 라헬과 그의 양떼가 제일 먼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호의를 비풉니다 여러분 그런데 흔히 이 당시의 우물의 뚜껑은 두 세명이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는
것인데 어떻게 야곱이 혼자서 이 뚜껑을 옮겼는가 여러분, 학자들은 여기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그것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성,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야곱이 혼자서 이 뚜껑을 옮겼다는 것을 통해서 야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머니의 품속에서 자란 호리호리한, 견할픈 그런 남자가 아니라 야곱이 매우 힘센 거구의
남자였다고 그렇게 유대인들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라엘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엘은
이 야곱이 자기를 위하여 우물 뚜껑을 옮기고 가장 먼저 물을 마시도록 한 것을 보고 이 야곱이 심센 일꾼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 뚜껑을 옮기고 물을 먹이고 난 다음에 라엘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서
울며 자기가 누구인지 그의 아버지의 생질 리부가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말할 때 라엘이 자기 아버지에게 뛰어가서 야곱의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리고 라반도 자기의 조카를 만나게 된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자기의 신부될
사람을 오물가에서 만나게 되었다 하는 것은 이작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브라함의 종이 리부가라를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종은 자신의 주인의
아들의 그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우물가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주인의 아들의 그 신부를 만나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증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거기에서 목자들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라반의 가정의 형편과 라엘에 대한 이야기와 그
모든 것을 다 듣지만 그러나 그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천 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한 달 정도의
시간을 갖고 거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가 왜 하란으로 보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그 많은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길을 인도해 주셔서 순적하게 만나게 해달라고 또 그 모든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기도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모든 것을 살피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런 신앙적인 모습이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모습이 야곱에게 나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엘의 호의를 얻기 위하여 그는 무거운 데를
혼자 옮깁니다. 먼저 라엘과 라엘의 양떼가 물을 먹을 수 있도록 그런
편의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그는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야곱의 모습을 보면 야곱은 정말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얻기 위하여서 머리가 아주 비상하게 돌아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야곱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야곱이 비록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그와 같은 그의 삶의 영적인 전환점이 있기는
있었지만 그러나 그의 삶이 신앙적인 모습으로 훈련되지 않았고 신앙적인 모습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 할지라도 그의 모든 삶이 다 그렇게
신앙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거듭났을 때에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심겨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영적인 어린아이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훈련되어야 하고 가르침받아야 하고 그리고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영적인 교훈을 받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침받아야 할 필요가 있고 그리고 우리의 삶의 많은 것에서 성령 하나님의
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보면 그런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지위, 자신의 연륜을 의지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깨닫고 하나님의 인도와
힘을 받는지 알지 못하고 교만한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런 경우들도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강구하고 인간적인 재치를 발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셔서
천 킬로미터의 먼 거리를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그곳까지 인도해 주시고 라반과 라엘을 만나게 해 주셨지만 그러나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하지도 않고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와 심을 겸손하게 구하는 영적인 모습도
없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야곱의 모습을 보면 그의 인생의 길이 아주 험난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경험하면서 그의 삶이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그 간섭하심과
하나님이 그의 삶을 다루셔야 하는지 여러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여러분 우리는 많은 어려움을 통하여서 우리의 교만한 자가 부서지고 감손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그런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야곱이 라엘과 라반을 만나는 과정과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라반이 야곱을 맞이했을 때 그는 야곱을 맞이
못해 인정하지만 야곱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조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매우 실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여러분, 14절 말씀을 보면 야곱이 자신에게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했을 때 라반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참으로 내 현룡이로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은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너는 참으로 내 현룡이로다 라고 한 이 말의
의미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그가 야곱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너는 내 조카라는 것이 맞기는 하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환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라바는천에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을
위한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서 왔을 때 그 아브라함의 종은 약대 열 마리의 신부를 위한 지참금을 많이 싣고
왔습니다. 그래서 라마는 급히 뛰어나가서 이 아브라함의 종을 환대하면서
그를 자신의 집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한 백년이 지나서 자기를 찾아온 자기의
동생의 아들 야곰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도망자처럼 자기를 찾아왔습니다 그것을 볼 때 라반의 마음가운데는
네가 내 조카가 맞기는 한데 그런데 내가 너를 그렇게 환영할 수는 없다 라는 그런 의미로 그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라반의 이 태도는 앞으로 야곱의 삶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인지를 예고하는 그와 같은
말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야곱의 삶에 많은 어려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야곱의 삶에 나타난
변화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삶에 나타난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 처음에 야곱은 라헬의 아름다움에 그렇게 반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처음부터 야곱이 라헬의 아름다움에 반했다고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제 라반이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15절 말씀 보면 내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내 품삭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그렇게 말할 때에 야곱은 라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곱이 라해를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해를 위하여 외삼촌에게 7년을 섬기리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대뜸 라해를 자신의 안으로 달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야곱의 마음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0절 말씀을 보시면 야곱이 라엘을 위하여 7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가달게 7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라고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의 내면의 성품에 있는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한 여자를 위하여 그녀를 사랑해서 7년을 종같은 삶을 사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고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야곱이 라엘을 위하여 7년을 일했다고 하는데 여러분 일반적으로
그 당시에 결혼지참금을 약 53개 정도로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노동자의 한 달 임금이 반세갤에서
한세갤 정도입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하면 4년 정도면 자신의 결혼지참금을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는 그런 금액입니다
한세계로 정한다고 할지라도 4년을 봉사하면 48세계리 나오는데 여러분 4년 정도 일하면 충분히 신부를 데려오기
위한 결혼지천금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7년을 일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7년을 일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라반도 계산해 보니까 7년을 일한다면 얼마든지 자기의 딸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다라고 계산한 것이지요 여러분 야곱이 왜 이렇게 한 것입니까? 야곱이 바보입니까? 아닙니다. 야곱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약삭 빠르고
계산이 빠른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라해를 위하여 7년을 일하겠다고 한 것은 그가 얼마나 라해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는지를 보여주는 그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7년을 일하되 7년을 조금 더 지겹거나
너무 많다고 불평하지 않고 7년을 수일처럼, 며칠처럼 여겼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될 것이 있는데 17절에 보면 레와 라엘에 대한 응급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레아와
라엘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엘은 곱고 아름답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개역 한글판에서는 레아는 알력이 부족하고 라엘은 곱고 아름답다 라고 말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야곱이 라엘이 너무 예뻐서 그녀를 사랑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예쁜 여자 좋아한다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에서 레아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레아가 알력이 부족하다, 시력이 약하다 이 단어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사람들은 매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녀가 눈이 나빴다 그런 의미도
아닙니다 그런 말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그녀는 눈이 부드럽게 보였다 우아하고 부드러운 여자였다라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여러분 간단하게 말하면 라헬은 눈에 총기가 있고 생기 발랄하여서 야곱의
마음 가운데 라헬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녀가 야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눈에는 레아보다 라헬이 더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고 그녀를 향한 열정이
있었고 그 마음 때문에 고생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야곱의 삶에 나타난
놀라운 변화이고 새로운 모습입니다 여러분 야곱이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라엘이 예뻤기 때문에 이런 열정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야곱을 너무 속물로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야곱의 삶에 나타난 변화는 무엇입니까? 그는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소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가정을
주시고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 이삭을 통하여 약속하신 그 축복을 자신의 삶에서 이루게 해주실 것을 그는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 라반의 집에 일어났을 때에 이 야곱의
마음 가운데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이곳에 보내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갈 배우자를 구하게 하셨는데 그
배우자가 누구인가 라헬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라헬을 지극히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녀를
위해서는 그렇게 종처럼 부려먹는 자기의 장인 라반의 그 혹독한 그 수화에서도 그는 그것을 결코 지겹고 어렵게
여기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칠년을 수일처럼 여기는 그와 같은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야곱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본성을 통해서
본다면 그는 절대 그런 어려운 일을 손해 보면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술을 써든지 다른 어떤
방법을 강구할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야국을 보십시오 야국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하여서 모든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어려움을 불평하지 않고 7년을 하루같이 한결같이 일하는 그와 같은 신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러분 이것은 분명히 야곱의 마음 가운데 변화가 일어났고
그의 성품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욕망이나 야망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체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확신 또 그 안에서 그가 이 라해를 사랑하게 된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주신 변화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열정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 변화된 마음에서 나오는 열정으로 말미야마 그는 온갖
고생과 수고와 속임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사람으로 그를 성숙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양업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었고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이제까지는 믿음의 훈련이 부족해서
많은 면에서 허점이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는 진실하고 성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세기 기자는 비록 지금 야곱이 라해를 만나는 과정이지만 29장 20절은
이 야곱의 20년의 삶을 돌아보면서 그가 7년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7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지는 앞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신의 아내 라해를 위한 이 7년을 며칠처럼
여기면서 그렇게 그가 봉사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야곱의 변화된 삶의 모습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변화된 마음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시련과 고생을
이겨내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야곱의 마음 가운데
일어났던 이런 영적인 변화들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인지를 성령을 통하여서
깨닫게 될 때에 그 사람의 마음에도 라이를 사랑하여 7년의 수고를 며칠처럼 그렇게 느꼈던 야곱의 마음에
있는 사랑과 열정을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서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정말 하나님을 만난 그런 경험, 예수
그리토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체험한 이후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쟤는 내가 정말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어서 내가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을 섬겼는데 이제는 다 식어져 버린 그런 마음으로 마지못해 억지로 신앙생활하는 그런 사람으로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정말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야곱의 모습을 보십시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후에 그는 참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7년을 며칠처럼 그렇게 수고하는 열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자신의
만족과 이기심을 가진 그런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의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는 데 있어서 우리는
결코 지치지 않는 열정을 발휘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까? 육신적으로는 얼마나 우리가 많이 낙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을 맞이합니까?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외적인 어려움들을 능히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우리의 안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수고스럽고 힘든 일들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 그런 것들 때문에 낙담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신앙이라면 우리가 낙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하고 그리고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런데 왜 나의 삶은 이런가? 라고 생각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을 다 잃어버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겁니까? 자기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실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의 믿음에 시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삶에 어려운 일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수고한 만큼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낙담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더 하나님의 도심을 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넘어서서 하나님의 도심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마침내 하나님의 도심으로 발매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줄 아는 사람으로 그렇게 우리의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신앙이 아니라 우리 주님의 영광을 위한
신앙만이 끝까지 견디는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야곱의 삶에 나타난 이 긍정적인 변화
그가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뜨나래에서 자신의 배우자인 라헬을 위하여서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 우리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야곱의 삶에 있었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원하고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성도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 29장 1-20절 야곱의 마음에 나타난 변화
Series 창세기 2
| Sermon ID | 52123550111112 |
| Duration | 1:40:54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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