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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창세기로 돌아와서 창세기 27장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창세기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과 아울러서 그들 사이에 있는 매우 특별한 사건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보람의 생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보람의 생일에 얼마나 많은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가 돈토 친척 아베의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여행하였던 그의 삶도 과연 우리의 일생 가운데서는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그런 삶의 도전이었습니다. 그가 여러분 가난한 땅에 살면서 어떤 어려움들을 겪었습니까? 기근 때에 그는 애국에 내려가서 자기의 아내를 빼앗길
뻔하기도 하였고 소듕과 고무라를 위하여 전쟁을 하기도 하였고 그리고 또 그는 자기의 동생, 조카로서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지 못하여서 자기의 아들이 없기 때문에 종을 후사로 세우기로 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이 아브라함의 삶에 수많은 사건들이 나오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의 관심이 어떤 그런 이야기에 집중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에 나오는 우리 믿음의 손저들의 그 삶은
굉장한 이야기거리가 됩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이 이야기들 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에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대체로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계단공과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성경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도덕적인 교훈으로 삼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저의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성경 이야기가 어떤 도덕적인 교훈으로 들려질 때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이 가지고 있는 함축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을 교회가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 창세계를 살펴볼 때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고 이삭의 생애를
살펴볼 때에 거기에 많은 사건들이 나오지만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그 사건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르치고 말씀하시려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분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삭이 이제 나이가 많아서 늙어서 자신의 죽을
때가 가까워왔습니다. 그는 그것을 인식하고 이제 자기의 아들들을 위하여 축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이야기를 보면 이 이야기가,
이 사건이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누구나 나이가 들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됩니까?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때가
되었구나.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부모들은 당연히 자기의 자식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집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자기의 분깃을 탁 차지해서 인생을 그래도 안정감 있게 살아가는 그런 아이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말씀해 보니까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였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그는 유산도 분배하고 자기 자식들이 자리를
잡아서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죽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런 이삭의 바람이 오늘 말씀해 보니까
그렇게 잘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사건을 통하여서 이 일을 통하여서 이삭의 집안에 큰 분란이 일어납니다
동생이 형을 속이고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고 그것을 알게 된 형이 분노해서 이제는 아버지가 나이가 늙었으니까
죽기만 하면 이제 동생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공공연하게 위협하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보고 리부가는 안절부절하지 못해서 자기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야곱을 멀리로 떠나보내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그리고 난 다음에 이 애서와 야곱의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을 살펴보면 결코 순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은 결코 이삭이 기대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이삭의 가정의 이야기를 보면 믿음의 조상 이삭인데 이 믿음의 조상 이삭의 가정에도 오늘날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 집안에 있는 다툼과 어려움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버지의 바람과 다르게 아버지의 축복이 두 아들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하고 이 가정이 큰 위기에 처하게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왜 일어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삭의 축복의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음에 살펴볼 것이지만 여러분 이렇게 믿는 자의 가정에 나타나는
이 분란과 어려움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먼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삭의 가정의 어려움은 아버지 이삭의 영적인 어두움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우리가 27장 1절 말씀을 보시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 이삭의 나이는 137세쯤
되었다고 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나중에 야곱이 130세에
바로 앞에서 자기가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하는데 그때 이 요섭의 나이로부터 거꾸로 역추적하면 우리가
어느 정도 이 이삭의 나이를 알 수 있는데 여러분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나이를 통해서 본다면 이삭은 40세에
결혼을 했고요. 그리고 60세에 자기의 두 아들 에스와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제는 늙어서 그가 눈이 어두워서 이제는
자기가 죽을 때가 가까웠다 생각하면서 이제 자기의 아들들을 축복하려고 하는데 이때의 나이는
한 137세쯤 되었다고 봅니다 여러분 그럼 이때 예수와 야곱의 나이는 몇 살이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청소년이
아니고 77세입니다 그들이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고 장성에서 아주 원숙한 시기에 있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에소도 야곱도 둘 다 쌍둥이니까 77세겠죠? 여러분 77세 나이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지식과
성품과 인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이때 이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 사건 이때로부터 일찍 죽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들의 이 분란이 있고 난
다음에 43년을 더 삽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43년 동안의 나머지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는 철저히 성경은
함구하고 있습니다 왜 이삭이 그렇게 43년의 시간을 더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느냐 여러분 학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말할 때에 여러분 우리가 이 사건에서 봐야 알 수 있듯이
이삭은 나이가 늙은 다음에는 그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믿음의 일들이 전혀 없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노년이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이삭의 영적인 쇠퇴를 어떻게 할
수 있느냐 창세기 27장 1절 말씀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웠다 라고 말하는 것을 통해서 이 창세기의
기자는 이삭의 영적인 상태를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눈이 어둡다는 것은 단지
육신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그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졌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모엘 상을 보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엘리가 눈이 어두웠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몸이 비대하고 눈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전에 올라와서 기도하는 여자 한나가 하나님
옆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옆에 입술을 달싹 그리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엘리는 어떻게
말합니까? 네가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겠느냐 이제 그만 술을 끊어라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광경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 사모엘 상의 기자가 엘리의 눈이
어두웠다는 그 말이 단순히 육신적인 눈이 어두운 것이 아니라 엘리의 영적인 눈도 어두워졌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과 술 취한 사람을 구별하지 못하는 그 같은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삭의 눈이
어두워짐과 아울러서 그의 영적인 판단력과 분별력도 얻어졌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로 우리는 그가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하려고
할 때에 그는 자신이 아들에게 축복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를 축복했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그는 어려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25절 이후
말씀부터 보면 그가 이 야곱에게 축복하는 축복의 내용을 보면 그 축복의 내용은 그가 분명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질지를 그는 분명히 이해하고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뜻을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삶의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거기에 대한 영적인 분별력은 그가 상실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찍 그의 두 아들이 엄마의 태중에서
심하게 다툴 때에 하나님께서 리부가에게 개시로 알려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 아들 중에 나중에 나온 자가
더 위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이 택한 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 25장 23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내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내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히 두 아들의 장례에 대한 어떤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말씀해 주시는 게시였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냥 리부가에게 그의 태중의
아들이 하도 싸우니까 그 마음을 그냥 단순히 위로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주실리는 만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건을 통하여서 이삭과 리부가에게 그의 두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개시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것을 그들이 받았다면 그 이후로 이 두 아들이 태어나서 자랄 때에도 끊임없이 싸웠는데 부모가 되어서
하나님의 이 개시를 알고 있다면 어떻게 두 아들을 길러야 하겠습니까? 여러분 그것은 그들의 삶이 실제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도전 아니겠습니까? 에스바 형이고 야구비 동생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동생을
택하셨다는 것을 부모가 알면 이것은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지금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당시에 일반적인 인간의 도리는 뭡니까? 장자 개성의 원칙입니다. 장자에게 아버지의 장자권이
가고 장자에게 더 많은 몫을 주고 그리고 이 장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이상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고민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떤 고민이
됩니까? 인간적인 도리로 봐서는 이 애서가 장자권의 축복을 가져가야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이미 개시를 통하여서 나중에 나온 자 야곱이 하나님의 택한 자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면
여기에 부모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오늘 말씀을 보시면 이후의 이삭의 삶은 자기의 큰아들 엘세에게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아들이 장자이기도 했지만 그가 자기의 아들 에스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냥 이 이삭이
에스가 장자이니까 그리고 정말 남자답고 듬직하니까 그래도 얘가 장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했다면 우리가
어느 정도 더 이삭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삭이 애설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을 사양해와서 그것을 만들어줄 때 그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 애설을 더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단순히 그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그의 영적인 분별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의 육신의 입맛에 따라서
아들을 사랑하는 편으로 기울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따른 것이 아니라 믿음의 원리를 따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약해지고 인간적 생각에 더 강하게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믿음의 원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게시를
따른 것도 아니라 세상의 원리를 따라서 자기의 육신이 좋아하는 것을 따라서 애설을 축복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삭의 불행한 노후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노인을 존경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인생의 연륜이 쌓이면서 많은 경험과 배움
속에서 그의 인격이 인간의 허망한 생각을 따라서 교만한 사람이 아니라 인생을 많이 살다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
참 우리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알고 인간의 마음 가운데 있는 그 교만한 속성을 이제는 극복하고 감성하게
하나님을 섬길 줄 알고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나가야 하는지를 알아쳐 줄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과
지혜가 있기 때문에 노인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노인은 그가 나이가 들은 것 때문에 존경받아야
될 이유도 있지만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이 노인들은 자기 일생을 통하여서 하나님 앞에서 연단되어서
이제는 육신을 따라서 뭐가 좋고 뭐가 나쁘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자기의 자녀들과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해 줄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년이 되었어도 영적인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지지 않고 도리어 육신적인 생각이 점점 더 강해져서 완고하게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여러분 어느 면에서 우리는 이삭이 바로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삭의 생일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은 어릴 때는
정말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는 10대 젊은 나이에 자기의 아버지가 자기에게 장작을
치우고 모리야 산에 가서 자기를 죽여서 제불로 삼으려고 할 때도 그는 아버지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삭의 이순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나타내는 모형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는 나이가 40이 되어서 결혼할 때에도 리부가
가올 때에 덜해서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참 견근에 힘 썼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야 아내와 함께 기근의 때를
지낼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인간적인 방편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하여서 다른
사람들과 다투지 아니하고 양보하면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던 대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지평을 넓혀갈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노년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의 노년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육신적인 입맛에 지배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정력이 그의 삶에 더 강력하게 작용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2상의 가정의 모습을 보면 리부가는
상대적으로 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자녀들 사이에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를 더 고민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나타나지만 2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자기의 아들, 큰아들에게 축복하려고 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젊을 때 우리에게 주신 그
영적인 교훈을 그것이 정말 참된 진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붙들고 끝까지 일생을 나의 삶에서 그 진리를 붙들고
살아가면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고 내가 이제는 점점 세상의 즐거움과 세상의 물질의 유혹으로부터는 내 마음과 생각이
멀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마음 가운데 더 가깝고 그리고 육신의 정력을 따라 살려고 하는 우리의 육신적인
혈기는 점점 약해지고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사람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내면은 하나님
안에서 영적으로 더 풍성하고 겸손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신뢰한 그런 마음과 생각들이 우리 마음
가운데서 더 자라나고 강해지고 있는지 그럼 우리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느냐고 한때는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인생을 살다 보니까 참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우리 인생을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내 삶에도 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런 것들이 좀 더 있어야 되겠다 이 마음이 더 강해져서
영적인 생각은 희미해지고 육신적인 생각은 더 강해지는 그런 사람으로 우리가 우리의 노년을 맞이하고 있다면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이삭이 걸어갔던 그런 영적인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불행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인생이 그 마지막이 행복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이삭의 노년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는 젊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노년은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그렇다고 해서 이삭이 불신앙의 사람이 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의 노년이 인생의 시기를 지나면서 영적인 마음은 약해지고
육신적인 그 정욕에 점점 그가 더 매달려 있는 결과는 무엇인가면 그의 가정의 분란인 것입니다. 바람잘날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이 이삭의 명적인 분별력이 어두워지는
그와 같은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이제 이삭의 노인의 큰 실수를 보게 됩니다. 그는 엘사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주려고 하다가 도리어 자기의 둘째 아들 야곱에게 속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두 아들 사이에 불행한 다툼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의 연수가 더할수록 우리가 더 성숙하고
경건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지혜를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삭과 같은 불행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원리를 따라 살지 않고 모든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진정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우리가 늙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들은 늙었어도 그 영적인 기운이 지나지 않는다고 성경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입니까? 모세입니다 10년기 34장 7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가
죽을 때 나이가 120세였으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라고 있습니다 모세가 120세에
죽은 것은 힘이 없어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모세는 그의 영적인
눈은 흐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가난한 땅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세는 그의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과 자신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그가 기대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더 원숙해지고 하나님과는 더 가까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렇게 나이가 들면서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이삭의 가정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교훈을 우리의 일생을 통하여서 우리
마음 가운데 간직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두 번째로 이 이삭의 가정의 위기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방법을 찾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이런 위기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리부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점점 영적인 분별력이 떨어지고 있을 때에 리부가는
어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리부가는 이삭보다 훨씬 영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삭이 큰아들 에스에게 사냥해온 고기를 먹고 축복하려고
할 때 그 말을 들은 리부가의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면 이삭이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에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주려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리부가가 야국을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좀 더 살펴보면 리부가는 야곱에게 인간적인 애정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눈이 어두운 남편보다 더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눈먼 아버지를 속여서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27장 12절 말씀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지인데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배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리부가는 어떻게 야곱을 설득합니까?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르니 내 말만 쫓고 가서 가져오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리부가의 이 말을
보면 리부가는 아버지가 맺은 야곱이 아들을 저주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저주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이미 너에게 장작권의 축복을
주신다고 그렇게 게시해 주셨는데 너의 아버지가 지금 네가 그것을 속인다고 해서 너를 저주한다고 해서 그
저주가 저주가 되겠느냐? 자기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고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네 아버지가 고집을 이렇게 피우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있는데 그렇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물론 리브가에게는 자기의 아들 야곱을 향한 애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애정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리브가의 용기와 담대함은 단지 자신이 애정하는 아들에게 복을 주려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아는 믿음의 태도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아는 리부가가 어떻게 남편을 속이고 그 축복을 둘째
아들에게 넘겨 주르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렇게 속여서 아버지의
축복을 받는다면 그 축복이 정말 합당한 축복인가? 이런 생각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리부가에도 믿음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그녀도 남편과 같이 자녀를 편애하는
어머니였습니다. 결국 이 두 부부의 편애는 이 가정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편애는 결국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가정을 이루어가는 데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들들도 온전한 믿음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자연적인 성풍을 따라가는 지극히 인감적인 회심하지 않은 그런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두려워 할 것은 부모의 불완전한
순종의 결과가 자녀들의 불신앙의 열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우리가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힘써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자세, 그런 태도를 자녀들에게 보여주어야지
여러분 우리가 인간적인 애정을 따라서 자녀들을 대하고 양육하게 된다면 거기에 따르는 결과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겸손한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그것이 우리가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거나 우리가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쓰면서 우리가 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강력한 믿음의 가르침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들은 잘 사는지 자녀들이 잘되기보다는
비록 부모가 가난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정말 기도하면서 노력하는 수고하는 그런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이 훨씬 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을 우리가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자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우리는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참 우리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에 숙령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애쓰고 쓰고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복종시키는
그런 겸손한 모습이 우리 삶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을 때 가진 그런 영적인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러나 삶에서는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우리를 위선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리부가는 이 삶보다 훨씬 더 하나님의 개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섭리를 고대하는 마음이 컸지만 그러나 그녀의 방법은 결코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결코 죄악된
방법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리부가가 보기에는 이삭이 애설을 축복하면 하나님의 뜻이 어그러지는 것 같이 보여서 자기가
어떻게 해서든지 둘째 아들이 축복받게 하려고 이런 잘못된 거짓된 방법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도 아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애세계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사과 리부가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어떻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를 하나님 앞에 구해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가정을 축복해 주셔서 그 모든 일들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부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방법을 사용함으로 말미야마 이 가정에 큰 분란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소중히 여길 뿐만 아니라
그 방법까지도 정당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안 될 것 같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잘못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 나오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 그것이 얼마나 그렇던 방법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30년 50년이 지나면서 한국교회의 그런 노력, 수고의 결과가 얼마나 불행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우리는 이제
곧 보게 될 것이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대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인간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인간적인
방법을 가지고 들어와서 하나님의 교회의 거룩함을 손상시켜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리부가의 모습을 보면서 이삭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 우리는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알고 있다면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해서 그것을 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역사심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겸손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해주시기를 하나님이 역사하시기를 구해야 되는
것이지 우리가 초급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기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겠다고 하는 그런 교만하고 이기적이고 잘못된
일들을 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그 뜻을 우리 가운데 이루어 주시기를 겸손하게 구애하고 그 뜻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온전한 헌신의 삶을 살 때에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못한 리부가의 잘못 그것이 이삭의 가정의
영적인 위기를 가져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 이삭과 리부가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위하여 까니없이 영적인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 이삭이 노년에 이렇게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리는 불행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심 가운데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자기 자녀들을 편애하고
인간적인 정력을 따라서 살아가고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웠던 그런 결과가 이삭의 가정에 불행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삭의 가정의
위기는 아들들의 불신앙의 결과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느 면에서 참으로 당연한 결과이지만
이삭과 리부가의 인간적인 편애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주의와 그들의 잘못된 순정, 불순정은 자녀들의 불신앙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삭이 아들들을 축복하려고 할 때 그의 나이가 137세였고
아들들은 77세 정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분 이 일은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니고 작은 일도 아닙니다. 그들이 어렸다면 아직도 미숙하기 때문에 이럴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나이는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원숙한 나이입니다 성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들의 모습을 보면 신앙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둘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이 아들들이 이렇게 다투는 모습을 본다면 참 이삭과 리부가는 하나님 앞에서 정말 근심하면서 기도해야 되지
않았겠습니까? 두 아들이 태중에서부터 그렇게 싸웠습니다. 그들이 20대 초반의 나이에서는 장작권을 두고 야곱이 애설을 속이는 그와 같은 일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두 아들 사이에 이렇게 참 신앙 제기지 못한
그런 다툼이 일어난다면 여러분, 부모는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그들은 이것을 위하여서 정말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가운데서 교훈하고 그리고 애정 어린 권면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삿발 이부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참으로 영적으로 게을렀습니다 부모가 자신들의 해야 할 의무들을 성실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두 아들은 회심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회심하지 않은 이 두 아들의 모습을 보면 끝까지 계속 속이고 속이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애서는 자신의 정력을 따라서 사냥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고 있고 이반 여인들을 자기의 아내로 삼아서 자기의 어머니 리부가의 마음을 찢어지게 아프도록 만드는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야곱은 장막에 있었다고 했는데 여러분 장막에 있었다는
것은 집안을 관리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럴 때 자기의 형이 사냥해서 돌아와서 피곤하면
자기의 형에게 호의로 그에게 얼마든지 음식을 줄 수 있는 문제인데 이 팥죽 한 그릇도 그냥 호의로 주지 않고
그걸 가지고 형과 거래를 하고 장작권을 빼앗으려고 합니다 이 야곱도 정말 못됐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야박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두 아들의 모습에서 부모의 잘못된 편애가 그들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이삭의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경건하고 살아있는 경건의 능력이 있는 그런 가정이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그 아들들의 모습에서도 경건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 믿는 자의 가정이 이렇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들을 이대로 둔다면 그대로 둔다면 하나님이
아부라메에게 주신 약속이 계속 그들의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삿과 리부가는 정말 책망을 받아야 하는
그런 신앙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삭과 리부가가 실패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 이삭과 리부가는 자신들의 자녀들의 삶을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이 언약의 말씀을 끝까지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후로
이 가정의 모습을 보면 부모의 간섭은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섬리적인 간섭이 이
두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야곱을 약속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하여 그를 하란으로 보내서 라반의 밑에서 참으로 고단하고 힘든 전에는 자기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자였지만 이제는
라반에게서 속고 그리고 피해를 보고 거기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약옵을 연단하시지 않습니까? 택한 자의 삶에 하나님의 간섭이 나타나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들은 이 이삭의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 우리는 다시금
각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우리 가정에 어떻게 나타나야 되는지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가정 안에서 능력있게 나타나서 우리의 자녀들이
정말 자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가지 않느냐고 자신의 죄악댐을 알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
맘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인생의 생각들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우리가 끝까지 고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은 자신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예수와 야곱보다 더 나은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 예수와 이 야곱이 부모의 교훈을 받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불신앙의 사람이 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우리 부모님이 나한테 교훈과 모금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를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야곱과 애서처럼 그렇게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시간들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에 정말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 주의해서 그 말씀을 들었습니까?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가 졸지 않고 딴 생각을 하지
않고 그 말씀이 정말 참된 진리인지 아닌지 주의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그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영적인
깨달음을 얻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에 가르침 앞에서 우리가 진실로 자신의 영혼을
비춰보고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그런 시간을
가졌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많은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를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런 은혜의 시간을 헛되이
보낼 때에 우리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서처럼 버려져서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었던 이 말씀이 우리를 저주하고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면 야곱처럼
참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부주의하게 지내고
하나님 앞에서 불신앙의 삶을 살았던 그 모든 시간들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간섭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깨우실
때에 여러분 그 일은 결코 평범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야국처럼 수많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불신앙의
죄를 회개해야 될 날이 올 수 있는 계시입니다. 여러분 그런 어리석은 길을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시간, 이 기회를 결코 헛되게 보내지 말고 세상에 허망한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참으로 우리의 죄악댐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구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간적인 연약함과 실패에 간섭하시고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이사계 가정의 문제들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반성해야 될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말씀해 주실 때가 우리가
우리의 주의를 돌이키고 하나님께 겸손하게 순종해야 될 때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용혼 가운데
나타나고 하나님의 뜻이 마지막 때까지 우리 자손들의 영혼 안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그와 같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하나님 옆에 기도해야 되겠고 대를 이어서 믿음의 대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가정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 옆에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창 27장 1-23절 이삭의 가정의 영적인 실패
Series 창세기 2
| Sermon ID | 41623620246816 |
| Duration | 1:34:15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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