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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창세기 26장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 창세기 26장은
이삭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장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의 조상을 이야기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구약성경은 이상하게도 이 2삭의 이야기는
거의 생략되다시피 했습니다. 2삭의 이야기는 이 야곱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중간에
26장 한 장으로만 삽입이 되어 있고 27장부터는 바로 2삭의 노년의 눈이 어두워서 자기의 아들들에게 속아서
축복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들은 이 이삭의 중요성에 대하여서
우리가 간과하는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이 창세기 26장을 읽어보면 창세기
26장은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내용입니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들은 이 창세기 20장과 21장이
가면 아브라함이 가난에 살았을 때에 그가 행했던 이야기가 이삭의 삶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기근의 때에 그라레 갔었고 거기에서 자기가
죽을까봐 두려워서 자기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또 거기에서 이삭이 우물을 파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실
때에 그라울 왕과 더불어 은약을 맺는 이와 같은 사건들이 이 창세기 26장에 와서 이삭의 삶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이 너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와 너무 닮은 이삭의 생애 왜 모세는
아브라함의 생애는 길게 기록하면서 이삭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 장세기 26장에서 이렇게 짧은 부분만 기록하는데
그것도 아브라함의 생애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을 똑같이 이렇게 기록하면서 이삭의 생애를 정리했을까? 여러분들은 이것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먼저 모세가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삭은 하나님이 세운 약속의 후계자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삶이 특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삶의 가치가 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러분 이런 이삭의 삶이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삭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뜯어내서 살아가는 삶이었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의 삶은 자기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삶과 동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살았던 그의 생에도 아브라함은 그의 삶에서 많은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거기에서 전쟁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소동과 고문화가
멸망당하는 그런 사건을 보기도 하고 애국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오기도 하고 여러분, 아브라함의 삶에는 극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그 모든 상황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믿음의
순종을 보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비록 우리는 이삭의 삶에서는 그런 극적인 사건들이
없다 할지라도 여전히 이삭도 그의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느 면에서 이삭의 삶에 이런 극적인 사건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특별한 믿음이 없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도 쉽지만 여러분, 이 창세기의 기자는 아브라함의
삶과 이삭의 삶을 거의 동일하게 기록함으로써 일생을 살았던 이삭의 삶의 그 일생도 아브라함의 삶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순정하면서 믿음으로 살았던 삶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이삭의 노년의 삶을 보면 그의 노년의 삶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모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전한 이런 이삭의 삶에서도 그가 분명하게
하나님의 축복을 물려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의 기자가 야곱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중에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의 삶을 아브라함의 삶과 동일한 사건, 동일한 순서대로 기록함으로써 그의
삶이 아브라함의 삶과 다르지 않으며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방식인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동일한 실습을 하였고 동일한 성공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유일한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은약의
축복을 받는 믿음의 자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모세는 이삭의 삶에서 그의 아버지 아구란과
같은 실수와 어리석음을 반복해서 기록하는 것일까요? 좀 더 성공적이고 그의 삶에서 칭찬받을 만한 사건들을
기록하면 이삭이 좀 더 두드러져 보이고 그의 믿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방식이 아니겠습니까? 이삭의 삶에 정말 아무런 사건이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았을까요? 여러분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일생을 살면서
우리가 평범한 범인이지만 우리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 같은 사람도 여러 가지 인생의 굴곡을 겪습니다. 그런 어려움들 가운데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서
뭔가 할 수 있는 말들, 뭔가 좋은 그런 믿음의 모범으로 제시할 만한 것이 한두 가지는 다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런 것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브라함의 삶의 복사판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몇 가지의 사건들을 기록해주고 있는데 여기에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기록된 이삭의 삶에 있던 사건들이 시사하는
경우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그들은 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연약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는 연약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의 아내를
누위라고 거짓말하고 기근의 때 어려움을 피하기 위하여 약속의 땅을 떠나서 애굽에 내려가거나 여차하면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어디에서도 그들의 힘으로 성공하거나 이길 수 있는 그와
같은 일들은 없습니다. 그들이 한 무리의 부족을 이룰 만한 그와 같은 상황
그런 일들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그러나 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주변의 나라들, 민족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들은 단지 가난한 땅에서 나그네로서 이리저리 오고
가는 삶을 살았지 이미 그곳에는 한 성 한 지역을 차지하고 세력을 이룬 왕들과 나라들 애국과 같은 큰 나라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과 비교해 보면 아브라함의 삶은 그냥 뜨돌이 유랑자의 삶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정말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라서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드러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땅에서 종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약을 받았고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해주심으로 말미야마 그 지역에서 그들이 유력한 큰 민족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왕처럼 대우받는 그와 같은 존귀함을 얻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약을 받았다고 해서 특별히 위대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은 그들은 삶의 현실에서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과 이삭을 연약한 가운데서도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차근차근 하나씩
그들의 삶의 실제에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이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힘으로 그 땅에서 존귀하게 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일상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을 주셨지만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하나씩 배워가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갈대야 우르를 떠나서 가난한 땅으로
가면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면 내가 너에게 축복해주겠다 말씀하셨는데 그런데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도록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노년의 백세의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주셔서 하나님께서 결코 그에게
주신 은약을 잊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주신 은약을 하나님 자신이 그의 삶에서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 이삭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과 동일한 약속을 받았지만 결코 그 자신의
자연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그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들을 위하여 20년을
기도했고 하나님이 그에게 자손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의사가 뭘 배웁니까? 삶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야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란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것이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녀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도 해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때 우리의
삶에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며 권한받는 위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지경을 넓혀주시고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소금으로 우리를 존귀하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통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우리 성도의 삶을 생각할 때에 우리도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인간적으로 노력해서
성공과 명예가 뒤떨어온다고 하더라도 여러분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이루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잃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과정을 경험할 때에 우리는 비로소 교만해지거나
자기를 드러내거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삶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용공을 돌리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삶을 그렇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삭의 삶에서도 아브라함과 같은 실수와 부족과
연약함을 말해주고 있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구원을 말함으로써 이삭이 하나님의 은약의 후사였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이삭의 삶을 보면 성경의 기자가 이렇게 좀 단순하게 기록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의 삶은 굉장히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 일생을 살았다고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더 이상을 이야기해 주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이사계의 삶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무언가 극적인 하나님의
간섭과 우리의 외적인 큰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런 신앙이 위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뭔가 우리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 내 삶의 극적인 것을 기대하는 것은 그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조상들처럼 일본에 침략을 받는 그런
어려움을 겪거나 유교와 같은 전쟁을 겪으면서 그런 가운데 나를 도와주시고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것은 우리에게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평안한 일상적인 삶을 살지만 그러다 그
평안한 일상적인 삶이 지겹고 그리고 그런 삶이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그런 삶 가운데서 정말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나의 영혼과 삶을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면서 거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런 일생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더 크고 복된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삶의 삶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삶에서 뭔가 극적인 하나님의 간섭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우리의 삶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기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내 삶
가운데서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고 뭔가 내 삶에 큰 변화가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얼마나 허망한 생각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지 못한 육신적이고
이기적인 삶 가운데서 나태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인지를 깨달아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간절히 바라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절대 지겹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무슨 외적인 큰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 아니라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일상 가운데서도 우리의 영혼과 마음이 깨어있고 날마다
하나님 안에서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눔으로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우리가 자기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영적인 공감과 다른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보면서 그것에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내려가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실천을 하는 그런 거룩한 성노예의 삶의 모습을
우리가 살고 있다면 여러분 우리는 절대 우리의 삶을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대해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평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삭의 삶이 어땠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런 평안한 일상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삶이었다 이렇게 정의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창세기 26장에 기록된 이 사건이 뭘 말해주느냐 이삭의 삶이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삶을 살았다. 자기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실 약속을 바라보면서 일생을 살았다. 이렇게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함께 하신 우리의 삶에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삭의 삶에 특별한 것이 없는 일상적인 삶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 안에 그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삭의 삶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의 삶에서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이삭의 삶은 자기 아버지의 삶보다 결코 못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외적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기적적인 방법으로 나를 도와주시는 것 그런 것에서 기대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안에서 나의 영혼이 성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외적인 것에서 잘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리석은 일입니다. 여러분 골로스에서 3장 16절 말씀에서 사도범은 우리
골로스의 교회를 향하여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이 그하여 모든 은혜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의 영혼 안에 있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이 그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구원 얻을 때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의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얼마나 많이 경험합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질투심, 이기심,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뭔가 내 삶에 있어야 할 어떤 특별한 것들을 기대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것 같은 우리 자신의
모습 여러분 그런 것들은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은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진정한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풍성하게 경험되어지는 것을 통하여 일상의
지루함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일상이 지루해서 우리가 자꾸 특별한 것을
찾는 이유는 뭔가 하면 우리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은혜가 점점 희소해지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말씀 가운데서, 기도 가운데서,
우리의 삶의 진한 어려움 가운데서, 참으로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우리가 눈을 들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고, 참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고자 하는 우리의 내면의 열망이
점점 더 커지게 될 때에 여러분 우리의 삶은 절대 지겹지 않습니다. 지루하지 않습니다. 순간순간이 기쁘고 즐겁고 그리고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의 삶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이 그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하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깨닫게 해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가르침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우리의 주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는 남편이 지겹지 않은 것입니다. 매일 보는 아내가 더 소중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매일매일 행하고 있는 그 일을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내가 어떻게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 이런 관심, 이런 마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지겨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일상의 삶이 우리를 지치도록 만드는
그런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정하는 삶이고 하나님의 용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느냐?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은 없고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서
그 불만 가운데서 뭔가 나에게 내 마음을 시원해 줄 수 있는 특별한 것을 찾는 그런 허망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그분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어떻게 구원의 주님이 되시는지 풍성하게 깨닫게 해주셨소. 그것이 우리의 영혼의 기쁨과 소망이
되는 삶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우리의 죄와 연약함과 싸우고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리스도를 붙들 때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강렬해지는지를 매일매일 증언할 수 있는
삶 여러분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어디에서
체험합니까?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죄를 이기는 데서 체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 지겨워질 것 같은 그 삶을 내
인간의 인간적인 성품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명을 가지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일상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우리의 삶은 결코 지겨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들지만 이 공부해가지고
내가 성공하겠다는 그런 일념으로만 공부하면 그 공부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우리
학생들이 정말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정말 이 공부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소망이 있으면 공부도 지겨운 것이 아니라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부들이 집에서 자녀를 돌보고 가족들을 돌보는
것이 정말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 안에서 소명이 되고 사명이
되는 삶이 되면 그것도 우리에게 지겨운 일이 아니라 내가 참 인생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런 사명의식
가운데서 하게 된다면 그것도 보람있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직장생활이 얼마나 힘듭니까? 때때로 화가 나고 그만두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이 들지만
그러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에 나를 부르시고 이것을 통해서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고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장소라는 그런 마음이 있으면 그런
지난한 어려움들도 이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삶이 결코 지루하거나 지겹거나 따분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삭의 삶이 그런 삶이었는데 이삭은 그런 삶
가운데서 정말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모든 것은 우리 성도들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을 받는 그런 삶을 살 때에 일어나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두 번째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삭의 삶은 누구의 삶보다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도 아버지처럼 기근의 때를 지내야 했고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운물을 여러 차례 빼앗겨야 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기건의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주셨고 그가 가서 파는 곳마다 우물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가 계속 다투고 싸우면서
밀려나면서 양보하면서 옮겨가면서 우물을 파야 했지만 그가 그것을 양보하고 떠날 때는 이 광야에서 기근의
땅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참 걱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그가 살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가 파는 곳마다 우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를 만나 주셨습니다. 자기의 아버지에게 주신 그 약속을
다시 그에게도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 이삭은 진정으로 그가 하나님의
이 은약의 후사로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암울함과 같이 믿음의 순종에 대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와의 약속은 아직 그의 삶에서 다 성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먼 훗날에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알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그것이 성취된 것과 같은 확실한 약속으로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사람들이
받았던 보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상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보상으로 자기의 아내와
자기에 대한 안전 그리고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는 오물물도 얻었지만 그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약속은 아직 그의
삶에 성취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장세기 26장에서 이삭이 과연 야국과 애설을
출생한 때였는지 아니면 아직 이 자녀를 가지지 않고 있는 때였는지 우리는 확증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날 왕이 이삭의 아내를 취하려고 했던 그런
광경을 본다면 아직 그의 자녀들을 낳지 않은 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삭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굉장히 멀리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별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간적으로 먼 훗날 이루어질 일들이 자신의
삶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나의 아버지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약속해 주셨는데 나의 삶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가 그렇게 불평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근근히 가난한 땅에서
자기 식솔도와 짐승도를 먹여 살릴 양식과 물을 얻는 것에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삭은 눈앞에 있는 그것만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실 먼 훗날의 그 약속을 그가 믿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을 오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에게도 아직 자녀가 없었고 하나님은 그에게 24절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게 복을 주어
내 자손이 번승하게 하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그가 20년 동안 그도 아직 자녀를 낳지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삭은 하나님이 주실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조그만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장차 이루실 그 큰 것들을 확신 가운데서 바라보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런 우리의 삶의 여건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갈 때에 사실
하나님의 그 약속이 우리의 삶에서 참 더디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는 나타나지 않고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기는 하지만 내
삶에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증거는 너무 조금밖에 나타나지 않을 때
여러분 우리는 그 조금밖에 나타나지 않는 그 증거를 무시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무시할 때 우리 자신들은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삭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여러분
그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작은 보상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정말 이런 은혜를 주시고 이런 축복을 주시고 이런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라는 것을 그가 보게 되었을 때에 그 작은 증거를 가지고 그가 의심에 빠지지 않고 낙심에 휩싸이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했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적더라도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구원의 언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서로 그 약속의 말씀들을 우리가 믿고 있다면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에서 그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그렇게 우리를 다루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세번째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삭이 하나님과 함께 그 할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세상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이 바로 그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아비 멜레기 그 친구 아웃사크와 군대 장관 비우골과
터부로 그랄러부터 이삭에게로 와서 이삭에게 우리가 너와 은약을 맺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우리를 헤앗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어마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내게 행하여 내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그랄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과 더불어 이 이상에게
와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라고 말하면서 이삭과 은양을 맺자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됩니까? 이삭이 한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나라를
쳐서 이긴 것도 아니고 아브라함처럼 무슨 큰 일을 해완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기근의 땅에서 생존한
것 뿐이었습니다. 자기의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계속 양보하면서 쫓겨나는 그런 삶을 산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이렇게 된다면 이삭은 진짜 기건 가운데서 망해야 되는데
쟤는 절대 망하지 않는구나. 도리어 가장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의 삶의 의미였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이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을 때 한때는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인정하는
때가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삭에게도 바로 이웃의 왕들이
그들을 찾아와서 우리가 너와 함께 은약하자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로 같은 맹세의 은약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이웃의 왕들에게 그가 비록 나라를
이루지도 못하였고 한 성업을 이루지도 못하고 떠돌이 나그네로 살고 있었지만 이 왕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을
자신들과 동일한 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 맹세의 은약을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가난한 그냥
떠돌이 부족해 불과한 이 이상을 찾아와서 영화께서 너와 함께 계시면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와 맹세하자. 너는 영화께 복을 받은 차라라고 하는 놀라운 고백이
이방의 왕에게서 나오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송도에 살면은 믿지
않는 자들의 인정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인정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보다 더 힘이 강하고
더 큰 교회를 이루고 우리의 권력이 더 커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날 언론에서 참 한국 사회에서는
교회를 향하여 얼마나 적대적인 그런 세력들이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 교회가 많고 큰 교회도 많은데 그런데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들은 큰 교회에서 일어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해 줍니까? 현재 기독교가 얼마나
하나님과 동떨어진 신앙과 삶을 살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믿는 자의 삶은 결코
믿지 않는 자들의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하고 비판합니까? 자신들의 삶보다 더 타락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성도의 삶은 결코 세상을
닮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과는 확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더 거룩해야 되고 성결해야 하고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하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돈이 없고 참 소수이라 할지라도
저 교회는 정말 세상과는 다르구나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 개개인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 좋은 것을 먹으면서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사는 그런 풍족한 삶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우리에게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삶의 모든 행시를 보면 저 사람은 속되지 않다. 저 사람은 이기적이지 않다. 저 사람은 뭔가 중심에
다른 것이 있다. 저 사람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다운 그런 삶의 모습이
보인다라는 그런 인정을 받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그러한지 살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정말 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그런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지 진지하게 우리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앙이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삶을 살고자 애쓰고 있는지 여러분 우리는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상과 같이 되고 세상보다 더 성공적인 그런
교회가 되기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을 닮으려다가 멸망의 길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닮아야 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증거가 외적인 번영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 우리의 개인의 삶에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함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브리스 12장 12절에서 14절 말씀은 그러므로 기브리스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을 다 이야기해주고 난 다음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이렇게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굳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하라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쫓아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줄을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히브리스 기자가 볼 때에 그 당시에 있는 많은
성조들이 참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너무 피곤하고 너무나 연약한 무릎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너무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이렇게 세우라고 저는 너희의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고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우리 자신을 드러낼 때에 세상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줄을 보지 못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이렇게
보여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세상과 싸우지 말고 세상과 화평하되 세상과 같이 되지 말고 세상에서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마음 가운데 큰 울림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목표가 되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성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 26장 26-35절 믿음의 후사 이삭
Series 창세기 2
| Sermon ID | 32623541244584 |
| Duration | 1:37:10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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