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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골로스에서 말씀을 통해서 사도가올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는 마지막 세 번째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마지막 세 번째 교훈은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실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사실 사도가올은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고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구체적인 예로서 부부간의 관계 그리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와 아울러서 이 종과 주인과의 관계를 이 평행선상에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구전은 우리에게
뭘 말해준가면 동일한 성경의 원리가 우리의 삶의 각각 다른 면, 차원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때로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약간 잘못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이 깨끗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하면 나의 신앙은 좋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한 번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과 행위가 같아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진정성은 그 사람의 삶에 나타나는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은 아니다 라는 것을 성경이 계속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착각에 빠집니다 영적인
것은 훨씬 더 선하고 중요한 것이고 우리의 육체적인 것은 죄악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하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에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마음 가운데 있게 되면 그것은 어느 면에서는 맞는 말인데 어느 한쪽 면에서는
우리의 신앙에 굉장히 중요한 우리의 삶의 실제를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러분 이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그런 실수를 하게 되고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원리를 잘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진정한 믿음과 구원의 관계는 내가 그리스도를 알고 십자가를 믿고 내가 그분을 나의 구원의 구주로
고백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은 우리의 심령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우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우리
마음 가운데 숨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내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새로운 피조물로 달라졌다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마땅히 그 달라진 실체의 삶이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실제 삶에 있어서는 예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내 신앙이 참된 것이라고 내가 정말 변화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을 그냥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하고 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던 성도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면서 여기에 부모와의 관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그리고 종들과 상전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되는지를 말해줄 때에 여러분 이것이 하나하나가
다 구체적인 우리의 신앙에 대한 교훈이라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믿음과 생활이 분리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위선자, 형식적인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고 그리고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말씀
중심의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편협한 종교적 편견에 빠져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 진리를 가르쳐 주지만 이 진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
풍성히 거하고 그것이 성령으로 말미암한 우리 마음 가운데 가르침받을 때에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의 지식, 우리의
지혜는 원만한 이해에 이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원만한 이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고 이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나의 삶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고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원만한 이해를 가지고 우리가 말하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구원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경에 대한 그런 충만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경에 대한 이해가 아주 미천하고 부족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의 삶에 많은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따라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대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때에 여러분 우리는
믿음이 있지만 우리는 부족함을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들은 부지런히 말씀을 읽어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깨달음과 그리고 이해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말과 행동과 내 삶의 모든 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고 하나님이 받으실만하고 또 우리의
양심에 그립김이 없고 하나님 앞에서 정말 정직한 삶인가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았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양심에 그립김이 없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어디에
나타나야 됩니까? 그것이 우리가 부부간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되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되고 우리가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우리의 일터에서도 그것이 그대로 나타나야 된다
하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남편과 아내와의
관계에서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부모와 자녀가 순정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끼는데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교회를 떠나서 가정을 떠나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일터에 갔을
때에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되는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많이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영입적인 진리인 이 교리와 우리의 삶이 분리되지 않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토인이라고 하는 그런 온전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나타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지만 그러나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토인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직장에서의 일들, 세상 살아가는 삶의 일들을 말하는데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입술에는 그저 자기의
마음에서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말들에 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꼭 예수님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이 말을 계속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아도 우리 성도들의
말에는 하나님의 진리를 담기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기고 영혼을 향한 극률함이 담기고 그래서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서 제 사람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구나 저 사람에게서는 정말 내 영혼을, 내 삶을
새롭게 해줄 만한, 인도할 만한 그런 진리가 저 사람에게는 있구나라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성도의 삶을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 우리가 발견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풍성히 거하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원만한 이해에 이를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그런 면에 있어서 다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는 게 뭔가 하면 다 세상적인 생각,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들이 그대로 드러나서 우리는
좀처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하는 큰 부족함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진리가 너무나 적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골로세스를 통해서 사도가 오른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리는 사회생활을 할 때도 우리의 영적인 이
원리, 성경의 가르침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성도의 생활의 원리가 무엇인지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부른받은 자리에서 살아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일꾼들아,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들아, 모든 일의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장
1절 말씀은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도가 우리 왜 이
종들아 이렇게 말했는지 왜 이런 이 사람들에게 이 교훈을 주고 있는지 여러분, 우리는 이 본문의 말씀을 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본문의 말씀이 우리와 다른 사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려면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서 간단히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분명 종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종들은 그냥 하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월격을 받고
일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노예들을 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가오리 종들아 이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은 좀 어려움을 느낍니다 사도가오리 1세기에 이 노예 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것인가 노예
제도가 성경적이라고 말하고 있나 이런 궁금증과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아는 것처럼 18세기에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날 때에 노예 제도가 쟁점이지 않았습니까? 그때 남부에 있는 그리스토인들 그리고 신학자들,
목사들은 이 노예 제도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이다라는 논리로 노예 제도를 그들이 찬성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는
복잡한 사회적 배경이 있지만 그러면 아무튼 사람들이 이 노예 제도를 성경이 인정하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주장함으로써 미국에서 남북이 아주 치열하게 싸우고 그의 나라가 파멸에 이를 지경에까지 이렇게 되었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서 희생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도바울이 여기에서
종들아라고 말했을 때 사도바울은 성도들은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그 시대의 사회 제도와 권위들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노예 제도는 비인간적인 것이고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해야 되고 너희들은 사회를 개혁해야 된다 그것을 위해서 나서야 된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노예지도가 성경적이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이 교훈을 우리에게 바로바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성경이 비록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부조리하고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분명히
성경적이지 않은 그런 제도가 상당 부분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적인 배경 가운데 있는 사회제도와 권력자들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역사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성경적이지 못한 사회제도가 일정 기간 존재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편만해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오늘 말씀을 말하는 것처럼 복음의 진리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 이런 부조리한 사회제도들이
다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겪고 왔다는 것을 우리가 주목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용하신 제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일부 다처제를 시행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아브라함이 일부 다처제 여러 명의 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오늘날 우리도 일부 다처제를 허용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은 성경직이지 않은 것이고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럼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까? 그 시대에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그런 것들을 허용한 것이고 여러분은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일부 다처를 했을 때에 자기가 원아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아브라함의 삶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살았느냐 묻는다면 또 우리는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의 삶에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그 삶의
갈등의 대부분은 여러 명의 아내가 싸우는 일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것을 보더라도 아브라함이
그 시대의 사람으로서 그런 제도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지만 그 제도가 결코 성경적이거나 올바른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제도를 일부 그 시대 가운데 허용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그 시대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허용했을 때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유익이 있기 때문에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그 제도가 가지고 있는 유익한 면보다 부정적인 것을 쫓는 결량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에는
많은 전쟁과 기근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안정적인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남자들이 일찍
죽습니다 전쟁으로 죽고 질병으로 죽고 여러 가지 이유로 남자들이 일찍 죽습니다 그러면 남겨진 것은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와 아이들은 보호자가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뭐가 필요합니까? 우리가 룩과 보아스에서 보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 여자와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줘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와 아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일부다처제라고 하는 제도를 통하여서 여자와 아이들을 보호하는 방편으로 주신 것이 일부다처제이다라고
생각해야 그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은 그것을 그렇게 이용합니까? 그렇게 이용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자기의 정욕을 따라서 많은 여자들을 두고 거느리고
그리고 자기의 불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그것을 이용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의
범위를 넘어서서 죄를 짓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면들을 이해해야 됩니다. 노예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용했지만
그것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악용해왔고 그리고 우리들은 이제 그것이 다 사라진 서기 2000년에 우리가 보면
그 제도들은 극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인권을 억압하고 무시하고 죽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이 그럼 어떻게 없어졌습니까? 이 제도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런 사회의 부조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점점 편만해질 때에 믿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제도가 우리 사회에 악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바꿔야 한다는 많은 투쟁의 역사가 거기에 있었는데 그 투쟁을 누가 했습니까? 그덤난 그리스도인들이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 안에서
이와 같은 제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결코 편안하고 그리고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것을 19세기에 영국의 윌리엄 윌버포스가 영국 경제의 3분의
1의 생산성을 가져다 주었던 수익을 가져다 주었던 이 노예 무역을 철폐하는 그와 같은 일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윌리엄 윌버포스 개인의 운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은 악행이 하나님을 섬기는 영국에서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그와 같은 인식의 확대를 통하여서 영국이 막대한 수익을 가져다주는 이 노예 제도를 법으로 폐지하는 그와 같은
데까지 나아갔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요. 여러분, 1부 1차가 언제 폐지되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보금의 진리를 밝혀주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이 우리에게 더 이상 유익을 가져다 주는 제도가 아니라 사회의 악이며 여자들의 인권을 짓밟는
그와 같은 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 제도가 세상에서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와
같은 보금의 역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이전까지 우리는 일시적으로 이 사회의 부조리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하나님의 보금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가정에서 부부 간에 남편과 아내로 부모와
자녀 간에 직장에서 상관과 고용인으로서 위치를 가집니다 때때로 그것이 우리 마음 가운데 불편하게 느껴지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의 위치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도가울은 먼저
복종해야 될 사람들에게 먼저 교훈을 줍니다 그래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모든 일의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종들아 모든 일의 육신의 상점들에게 순종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사도 바올이 이 사람들을 먼저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왜 남편에게 복종해야 돼요? 이렇게 우리가 불평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부모에게 순종해야 되는 거죠? 이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제도와
질서와 원의가 있는 그 환경 가운데서는 우리가 그렇게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뭔가 우리의 삶의 처지를
바꾸려고 우리가 더럽난 노력을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그 장소, 우리를 보내신 그곳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남편에게 종처럼 부르라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와 질서를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한다는 것이 여러분들이 부모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진리와 그 말씀의 권위에 따라서 살아갈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종들에게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라고 말했을 때에 여러분, 나는 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데 거기에서
우리가 처한 그곳에서의 질서와 권위를 우리가 부정하지 말고 거기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듯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그 일들을 행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깨닫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작정 그렇게 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그분의 삶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온 세상이 주관자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나와서 가희사에게 세를 받치는
것이 가합니까? 아닙니까? 라고 말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받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세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베드로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세금을 바치느냐?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향하기 위해서
왔다 라고 말하면서 물고기를 낚아서 그 입에서 동전 한 입을 얻어서 성전세를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종교적 관계를 인정하시고 그 안에서 권위에 복종하며 살라고 말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승 2장
13장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는 것처럼 다리엘은 포로의
신분으로 자신을 사로잡아간 바벨론의 왕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야 되는 것은
이것이 세상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낙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함께 고낭받는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그리스도가 충돌할 때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편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부당한 권력으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도전하고 우리의 신앙을 해치려고 할 때는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다해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 다네엘과 그 세 친구들이 바벨론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풀묻벌에 던져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처럼
우리는 때때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핍박이 없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은 여전히 동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도 부모님도 이 세상의 권력자들도 우리 마음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빼앗아갈 수 없고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시대에 두셨든지 어떤 사회에 두셨든지
우리는 그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땅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네나 고용주나 고용인이나 어떤
지위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수의 원리를 따라 살리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대한 원만한
이해에 도달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현재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적인
조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부정적인 것조차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성경적인
원리를 실천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기독교가 거듭난
사람들을 더 많이 가질 때에 우리는 이 사회의 모든 제도를 다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류의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연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인 큰 도전 앞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 없이 인간을 최고의 위치에 두려고
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사상에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이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대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기업체에까지 이르렀고 이제는 우리의 가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동성애라든가
아니면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하는 이런 진화론의 여러 가지 사고 방식을 따라서 우리에게 가해오는 사회제도적인
위협이 가시화되는 그런 시점에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 대부분도 동성애를 합법으로 차별검지법을 합법적인 것으로
그렇게 판결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면 우리가 믿는 성경의
가치관을 우리가 더 이상 규정할 수 없고 그것을 말할 때 우리는 사회에서 법적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는 단계까지
우리가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입니까? 여러분, 이런 것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이 온 세상 가운데 우리의 위협이 된 데는 기독교가 영적인 힘을 상실해 가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보금의
능력이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불신앙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을 따라서 그들의 교만하고 이기적인
우패한 성량을 따라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온 세상의 법으로 압제하는 그와 같은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네부간네사리 자기의 신상을 만들어놓고 그게 다 저라라고
했던 그와 같은 일들이 오늘날 현대에서는 이와 같은 법적인 압력으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직시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래서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정치력 성향보다 복음의 진리가 더 앞서야
됩니다 그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명백하게 나타내지 않으면 우리는 아주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당장은 이게 작은 파도처럼 우리에게 몰려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나중에는 아주 큰 돌덩이가 되어서
우리의 머리를 짓누를 날이 더 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영국에서는 공개적으로 길거리에서 우리가 인간이 죄인이고
예수님을 믿어야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잡혀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종교적인 압력은 공산주의 사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는데 여러분, 그리스토인들이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번째로 인도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 사회 속에서 그럼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떤 위치로 부름받았든지 그 위치에서 자신의 본분을 가하되 절대로 눈가림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이 복음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온다면 성경이 진리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성경을 믿어야
됩니다라고 말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자기
신념이 있고 자기의 확신이 있어서 성령의 원리를 진리라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까?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우리 말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마음과 우리의 삶과 우리의 입술에 있을 때에 우리는 믿지 않는
원악한 사람들의 말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본론세서 3장 21절과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종도라 모든 일의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부정적인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종들아!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라고 했을 때 이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것은 분명히 1세기에 종들이
흔히 행했던 그런 불성실한 모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종들은 자기 의사결정권이 없지 않습니까? 또 자기가 일한다고 해서 거기에 대한 어떤 보수를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종들이 어떻게 일을 합니까? 주인이 와서 볼 때는 그럴듯하게 주인에게 매맞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주인이 떠나가고 나면 이 일이 어떻게 되든지 관심 없습니다 그냥 자기
몸만 편하면 되고 자기의 신세 한탄이나 하고 그렇게 하면 사람들과 게으르게 일합니다 이것이 1세기의 종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들은 이 종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가혹한 관리자들이 채찍을 들고 그들을 감독하게 할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 조성됩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갑니다. 군대에 가면 우리는 군대를 간다고 하지 않고 군대를
끌려간다고 하죠, 그렇죠? 자기 의지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군대 가서 항상 우리 남자들이 듣는 말이 뭡니까?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 중단만 해라. 그런 말을 맨날 듣습니다. 열심히 해봤자 나한테 좋은
게 없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서 다치면 나만 손해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그렇게 일하는
태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는 열심히 하는 것처럼 하고 주인이 볼 때는 열심히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가장 게으르고 적당히를 실천하는 마음의 태도와 모습은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눈 가림만 하는 성김은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절대로 그런 식으로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맞는 보수를 자기가 계산하고 내가 이 정도 받으니까 나는 이 정도만 할 거야 라고 말하면서 적당히 일하는
그와 같은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죽게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굉장히
무거운 의문을 주고 있는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칼빈이 항상 그리스토이는 코람데오 하나님의 면전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면전 앞에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죄를 두려워하고
죄를 피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이 우리를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눈가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톤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을
섬길 때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강건함으로 송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말은 우리가 종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채찍을 맞는
사람처럼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이 성김은 정말 자원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지 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참 두려운 일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의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사도고론 고르대전서 2장 3절에서
그가 복음을 전할 때 내가 너희 가운데 그 할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뚜렷다 이렇게 말합니다. 베리포스 2장 12절 말씀에서는 너희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이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우리가 복음 전하는 사역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모든 처지, 형편, 위치에서 우리의 마음의 태도가 그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우리의 주님을 섬길 때 항상 그렇게 주님을 섬겼던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동일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의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댁대로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면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가 손해보는 것 같고 내가 너무 지나치게 일하는 것
같고 또 이렇게 하면 금방 지쳐버릴 것 같고 그런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이해되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게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는 사람이 그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두렵고 떨림으로 너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할 때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인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은 진정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을
교묘하는 마음이 있는 그리스토이는 자신이 받은 세상적인 일에서도 동일한 마음으로 일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만약에 우리가 주님을 경유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리가 이렇게 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채찍을 맞아야지만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경유하는
마음이 있으면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이게 막 힘들고 어렵게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고 기쁨으로 하게 되고 가장 적당하게 알맞게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두렵고 떨림으로 일하는 것은 결코 노예적인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금적인
성실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나오는 성실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에 표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 그런 성실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진심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표지입니다 죽게 하듯 육신의
상존들에게 복중하고 속이지 않고 성실하고 마음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에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칼비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이 다 거룩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에서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공장에서, 가정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런 일을 할 때에 우리는 자신이 나전자처럼 느낄 수
있지만 우리가 주님을 의식하므로 그리스토인으로서 그 일을 마음을 다하여 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삼기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사라지고 오직 주님과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을 다하고 성실함과 사랑으로 일하는 사람은 주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 우리 개인이 이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윌리엄 밀고퍼스는 영국의 노예 제도를 폐지를 위하여 그가 일생동안 이 일을 위해서
헌신했고 그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들은 다 각자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여러분,
그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위치에서 주님을 섬길 때에 그들의 힘이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영국 국회의원들의
마음을 변화시켰고 실제로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일을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우리에게 아주 또 우리가
기억해야 될 만한 사건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여러분, 1차 대전 중에 스탈린은 러시아를 공산하고 난 다음에 이 기독교인을 없애야 된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에게 가혹한 그런 학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차 대전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스탈린은 자신이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들이 전쟁을 위해서 많은 물자를 생산해야
했습니다 공장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발견한 것이 무엇인가면 자신의 공장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사람들은 다름 아닌 그리스토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토인들을 숙청하려고 했을 때
그 공장의 지도자들, 책임자들은 만약에 이 사람들이 사라지면 우리 공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보고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스탈린은 자신의 나라에서 가장 유능하고 가장 성실한 이 그리스토인들이 사라지게
된다면 자신들의 나라도 지탱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토인들을 향한 박해를
완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삶의 위치에서 송실하게 일하는
것 그것은 매우 작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거기에서 주님을 섬기듯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송실한 사람이 될 때에 거기서부터 세상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부조리와
악습들이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을 통해서 개선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 여러분이 생활하고 있는 그 장소가 어디든지 여러분이 정말 우리가 주님을
섬기듯이 우리의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사람이 된다면 거기에서부터 세상이 변화되는 일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생각할 것은 상전들도 자신의 머리 위에 또 다른 의자가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단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기억할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사도는 일방적으로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식들에게 복종을 명령하거나 종들에게 불종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 사도의 경우에는 이 두 위치가 아주 완벽하게 균형이 잡혀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내가
남편을 죽게 하듯 순종할 때에 남편은 그녀를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해야 된다는 그 같은 의무가 주어집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남편에게 더 큰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아요 부모가 자녀에게 복종을 명령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그들을 가르칠 때에 자녀에게 복종의 의무가 주어지지만 부모에게는 주의 교양과 훈계를 따라 가르쳐야 한다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종들에게는 성실하게 일할 것을 명령하지만 상점들에게는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누가 누구를 압지하고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고통을 당한다는 개념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서로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이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부모들과 남편들과 상전들이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내들과 자녀들과 종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주님을 온전히 섬길 때 그 가운데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 제도나 질서와 권위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환경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
질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스스로 근유와 차별을 해소할 힘이 없습니다. 죄악된 인간들에게선 그것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더 힘을 가지고 자기 중심적인 해결책을
강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회에서 보는 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평등을 지극히 강조하는 그와 같은 사람들이 도리어 역차별을
만들어냅니다. 인간은 균형을 이뤄낼 힘이 없습니다. 자기가 보는 이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하여서 힘을 집중하는
순간에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차별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 그것은 제도를 바꾼다고 완벽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죽게 하듯이 우리의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하여서 이 세상에 참된 평화와 안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성도들이 일시적으로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감내하면서 주님 앞에서 이
세상의 빛이 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는 그와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부모의 관계에 있어든지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든지 사회에서 어떤 지위에 있든지 이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도 우리 가운데 더 높은 자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위에 계신 최종적인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에게 자신의 위치에서 겸손히 복종하므로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갈 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삶에서도 사람들 앞에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겸손하게 행하는 성도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각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의 이해가 부족해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가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과 은혜를 알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수고해야 합니다. 영적인 풍성한 은혜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해가 넓어져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복음의 말씀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우리의 삶의 목표는 생각하지 않고
영적으로는 게어르기 짝이 없는데 우리의 삶에 대해서는 계속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이해하고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모든
삶에서 균형 잡힌 그런 성도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겸손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골 3장22-4장1절 그리스도인은 삶에서도 주님을 섬깁니다
| Sermon ID | 1132462344544 |
| Duration | 52:30 |
| Date | |
| Category | Sunday Service |
| Language | Kore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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