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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crizi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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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사뭇 달라진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권한과 죽음을 다분히 감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수치와 고통을 당하신 것을 생각할 때 그 마음 가운데 연민이 일어나고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죽으셨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놀라움을 깨닫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고난의 아픔, 슬픔, 고통, 괴로움 그런 것들에 더 많은 마음과 관심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천주교가 그러한데 여러분 예전에 예수님의 그 고난의 장면을 묘사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고 하는 영화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장면이 다분히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책지에 맞으심과 십자가를 쥐고 가는 그 고통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예수님이 얼마나 큰 아픔과 고통을 겪으셨는가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십자가를 결코 감상적인 마음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감사와 그리고 또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그런 마음도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 거기에서만 거쳐서는 안되고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그와 같은 영적인 깨달음이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저 감상적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면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구원의 확실함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자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은 결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피상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되고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영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또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또 능력있는 그리스도로 살게 하는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들은 요한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교혼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깨닫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더 상세하게 주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성경의 예언과 성취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이 오늘도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할 많은 이유가 이 본문의 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영목 19장 30절 말씀해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어떻게 묘사했는가면 예수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러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원히 떠나가시니라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원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묘사할 때에 그 영혼이 떠나가시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 영어선경을 보시면 어떻게 되어 있는가면 주님께서 그 영혼을 handed over 넘겨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헬라 단어는 파라디돔이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넘겨주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글 성경은 그냥 예수님의 죽으심을 한국식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영원히 떠나갔다. 우리는 그걸 그렇게 하면 죽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의 의미는 그냥 단순히 죽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영원을 넘겨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사용한 이 단어 헬라의 단어는 결코 죽음에 사용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후계자에게 무엇인가를 넘겨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그러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요한이 절개사는 사용하는 이중적인 의미를 보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머리를 숙이시니 라고 하는 것이 죽었다는 의미이지만 영원히 떠나가시니라고 하는 그 의미는 다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가 대표되어 있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의 죽음을 결코 빌라도나 유대인들에게 희생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한이 말해주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전체적인 느낌은 예수님은 희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고 계신 분으로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뤘다 하신 이 말씀은 이제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이렇게 철양한 외침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승리의 선언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그 사약을 다 이루시고 우리의 구원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는 그것 같은 승리의 선언인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시고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셨는데 이것은 단순한 죽음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이때부터 제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나누면서 곧 이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지만 예수님의 영혼을 넘겨주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주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보내실 성령을 약속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과 어울려서 요한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우리들은 요한이 말해주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그 나머지 부분들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가운데서 요한이 우리에게 말해 주던 예수님의 죽으심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는 예수님께서 6월절의 어린 양 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죽으심이 6월절과 긴밀히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31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는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림으로 그 안식일의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서 시체를 치워달라 하니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비일이란 말은 안식일의 전날인데 안식일 예비일이죠. 그런데 이날은 6월절과 겹쳐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큰 안식이라고 큰 날이라고 그렇게 이야기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빨리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고 싶어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신명기 21장 22절과 23절 말씀은 나무에 달린 사람을 밤새 거기에 놓아두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함으로 내가 그를 죽여 나무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여 내 하나님 요하께서 내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율법에 대한 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이긴 했지만 그러나 율법을 어기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빨리 예수님의 시체를 치워달라고 그렇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면표를 바꾸어 달라고 빌라도에게 부탁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두 번째로 빌라도를 찾아가서 새의 죄수를 빨리 십자가에서 내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것은 로마인의 관습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받고 난 다음에 그 시체를 오랫동안 그 귀에 방치했습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그 시체를 보고 두려워하고 죄에 대해서 경고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로마인들은 그 시체가 짐승에게 뜯어먹히고 없어질 때까지 그렇게 놓아두는 것이 로마인들의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로마 법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 시체는 이제 로마의 자산이 되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의 법대로 처리해야 했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시체를 빨리 내리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예수님의 시체를 내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을 요한이 우리에게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이 죽어온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가 이 십자가에 오랫동안 달려있는 것은 수치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그가 관대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내릴 수 있도록 그렇게 허락해 주었을 것입니다. 이에 로마의 군병들이 자신들의 관습대로 빨리 죄수들을 십자가에서 내리기 위하여 그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면 그들은 쇠망치로 죄수들의 다리를 꺾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꺾는다는 말은 산산이 부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리를 우리가 이렇게 꺾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그럼 꺾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있는 그 죄수의 다리를 큰 쇠 뭉치로 내리쳐서 그 다리의 뼈를 산산이 부수어 버릴 때에 이 죄수는 더 이상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부서진 뼈가 살을 찢고 나옵니다 많은 피를 흘리게 됩니다 자기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이제 숨을 쉬지 못하고 거기에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먼저 예수님의 양편에 있는 죄수들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에게 이르러서 예수님의 다리를 꺾으려고 할 때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예수님의 죽으심을 확인하기 위하여 한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배에서 많은 양의 물과 피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목격자가 가까이에서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인데 요한이 이것을 이렇게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은 그가 친히 거기에서 군병이 예수님의 그 옆구리에 창을 찌를 때에 순식간에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그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장면에서 성경을 의명합니다 즉 그는 예수님의 주부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이 장면이 그냥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바로 이 일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예언해 주신 그 말씀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그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6절과 3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끊기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리야미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은 성경의 추리굽기와 민수기와 10편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추리굽기 12장 46절 말씀은 6월절 어린 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고기를 조금 더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6월절 어린 양을 먹을 때는 그 뼈를 꺾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교례였는데 왜 그런 규례를 두었는가? 그것은 바로 장차오실 메시아가 그가 죽으실 때의 그 뼈가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형인 이 유월절 어린 양과 희생의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신 우리의 메시아 예수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뼈도 꺾이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말이면 아마 예수님께서 6월절 어린 양이 되신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이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10편 34편 20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시며 그 중에 하나도 끊기지 아니하도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10편 34편에서 말하고 있는 이 의인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요한은 예수님이 창으로 찔리는 장면을 통하여서 그것이 바로 서가리아 12장 10절말씀에 성취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서가리아 12장 10절말씀은 그들이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리라 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그 주님을 사랑하던 그 제자들의 모습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들은 모두 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메시야 하나님의 어린 양 6월절 희생 제물이 되신다는 모든 진리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뼈가 꺾이오지 아니하고 그가 창에 찔리실 것을 통하여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으심이 바로 온 인류를 위한 희생의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어린 양 되신다는 것을 그가 발견하였고 그것을 통하여서 과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는 또 6월절에 대한 암시가 있습니다 6월절에 희생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제사장은 어린 양이 희생 제물로 드려지기 전에 그 양이 흠없고 온전한 양이라는 것을 검사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외관상으로 이렇게 살펴보는 것인데 절지 않고 그리고 얼룩이 없고 그리고 상처가 없는 깨끗한 흠 없는 양이어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바로 빌라도가 예수님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보면서 예수님께서 죄가 없다는 것을 선언하심으로 인정되었는데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서 주님의 죽으심의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6월절 어린 양이 되신다는 것을 또한 증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사장은 6월절 어린 양의 목을 베었을 때 그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야 했습니다. 그 피가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핏줄기를 보고서 이 양이 참으로 살아있는 온전한 희생제물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이미지는 바로 이것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살아있는 희생제물로 드려졌으며 그의 생명이 십자가에서 희생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장면에서 우리에게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한 가린한 사람의 죽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완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6월절 어린 양으로서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심으로 우리는 죄의 사암과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론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바라볼 때 그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사연 53정 5절 6절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하미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하미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남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양 같아서 그렇다 하여 각기 제길러 같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라고 이사회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사회가 선포하고 있는 이 말씀의 위대성을 우리 성도들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바로 이사회가 외친 이 외침을 우리도 함께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아무런 의미 없이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의 용어는 그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가? 그가 찔리면 우리의 허물을 인하며 그가 상하면 우리의 죄악을 인하바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의 마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아또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신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두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의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과 피를 쏟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그의 죽으심으로 발미하마 우리에게 생명과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데 그것을 어떤 이미지를 통해서 이야기해 주는가면 예수님이 쏟으신 물과 피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죄사함을 주는 생명과 또 성령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그가 로마 군병들에 의해서 다리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과 그의 옆부리가 창에 찔렸으며 그때 많은 양의 물과 피가 흘러내렸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사람이 죽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지 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여러분 요한은 그 장면을 그냥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진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의사들도 이것을 잘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심장이 이미 파열되었고 그로 인하여서 복막에 물과 피가 고여있었다 쏟아졌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군병이 예수님의 심장을 찔렀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창이 심장의 피와 심낭의 물을 동시에 방출시켰다 이렇게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많은 심한 채찍질로 나여서 그의 체액이 폐를 둘러싸고 있는 막에 쌓여 있었고 창으로 찔렀을 때 물이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육체적으로 죽으심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성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석육신 하셨고 그리고 우리와 같은 몸으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이 사건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사건의 표면적인 의미를 넘어서 어떤 상징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데 여러분, 요한 복음을 우리가 공부해 봤지만 요한이 이야기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이 물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우리는 초막질에서 물을 길러다 붓는 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요한 1서 5장 6질에서 8질 말씀에서 요한은 그것을 우리에게 또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요한 1서 5장 6질에서 8질 말씀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물과 피로 이 마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오 물과 피로 이 마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니라 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요하는 이 물의 이미지와 성령을 자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고 또한 거기에는 물과 피와 성령이 각각의 의미가 있고 그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요원은 그의 서신에서 이것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에서 본 것은 단순히 물과 피가 아니라 물과 성령의 이미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것은 생명과 관계있는 것입니다 스가리아 선지자가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스가리아 13자 1승을 말씀해 보면 그날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셈이 다위세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일이라 이렇게 말하였는데 여러분 스가리아가 예언하고 있는 그날의 죄와 더러움을 씻는 셈이 예루살렘 검인을 위하여 열리리라 한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요하는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하여 이루어졌고 그리고 죄와 더러움을 씻는 셈이 열린다 하는 이 이미지는 바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온 그 사건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예서갈의 예언이 성취되었으며 그의 죽으심으로 죄를 용서해주는 정결케하는 셈이 열렸고 그의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피가 되었으며 우리의 죄를 정결케하는 피가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피가 흐르는 주님의 옆구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모든 죄를 위한 셈이 열렸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와 물이 구약에서 어떤 상징으로 사용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피는 속죄를 상징하고 물은 씻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여하게 되는 두 가지 연택, 의리롭게 됨과 거룩하게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피는 용서와 속죄를 상징하고 물은 중생과 성결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는 항상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얻게 되는 생명, 거룩하게 되는 것 그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 안에서 죄영우삼을 받게 되고 거룩함에 참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렀다는 것은 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34절의 말씀은 30절의 말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30절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말할 때 이 영혼이 떠나가셨다 하는 이 말은 자신의 영혼을 넘겨주셨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 넘겨주셨다 하는 것은 바로 성령에게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토의 죽으심으로부터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자주자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영국음 16장 7절 말씀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오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자기의 주고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16장 1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유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례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말씀하셨는데 바로 이 진리의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주님의 죽으심이 단순히 그의 생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약속하신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작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약속하신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의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더라라고 요한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요한은 주님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믿는 자에 받을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이 놀랍고 신비한 일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저 몇 가지의 지식을 비상적으로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중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약속과 성취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없이 그것에 대한 확신이 없이 우리는 거듭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그의 죽으심과 아울러 믿을 때에 우리 마음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주실 때에 우리는 모든 진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밝히게 될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진실로 우리 마음 안의 역사신 그 성령의 역사를 따라서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 죽으심에서 일어난 이 사건이 우리 성도들의 마음과 심령 가운데서도 체험되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말씀 가운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왕으로 인정되셨다는 것입니다 왕의 무덤에 들어가신 그리스도를 요한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에서 보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죄인처럼 죽었지만 그러나 그의 묘실은 부자와 왕의 장례처럼 치워져 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평소에 주님을 고백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마음 가운데 큰 용기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 주님의 죽으심을 예비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먼저는 아리마데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38절은 이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을 두려워해 그것을 숨기고 있었는데 주님이 죽으셨을 때 그가 이제는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 가져가기를 구할 때 빌라도가 허락해 주었고 그리고 그는 용감하게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서 그것을 자신을 위하여 준비한 무덤에 안치하였습니다. 이 무덤은 41절말씀에 보면 십자가의 못박히신 곳 가까운 동산에 있고 이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무덤을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새 무덤에 두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만을 위하여 예비된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러 가지 시체가 그 무덤에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은 예수님의 부활이 많은 시체들이 있는 가운데서 치워진 것이 아니라 진실로 묘듬이 완전히 비어있으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마데 요셉은 우리 예수님의 무덤을 예비하고 또 그는 은밀하게 자신을 숨기는 자였지만 그러나 이제는 공개적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고 증거하는 그런 믿음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므로 말 미야마 아리마데 요셉은 예수님께서 과연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의 주님이 되신다는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니고 데모였습니다. 요한 보험 3장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도 공회원이었습니다. 그러하였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을 드러낸다면 그는 많은 불리익을 따르고 핍박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도 자신을 숨기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크나크도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에 대단한 용기를 발휘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향품과 흥급을 가져왔는데 그 향품의 양이 100리트라쯤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환산하면 오늘날 우리의 기준으로 약 34kg쯤 되는 향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향품의 양은 보통 사람이 사용할 수 없는 대단히 많은 양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유대 가장 유명한 라삐가 죽었을 때에 그에게 사용된 향품이 40kg 정도 되는 양이었다고 하는데 여러분 이 34kg쯤 되는 이 향품의 양은 왕의 시체를 처리할 때 쓰는 그 정도의 향품의 양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반적인 장례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죄수의 몸으로 죽었지만 예수님의 그 몸은 왕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주님의 시체가 다루어지고 새로운 무덤에 안취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이 이것을 구체적으로 그 양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볼 때에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단순히 보통 사람이나 죄인의 죽으심이 아니라 바로 그 예수님의 죽으심이 왕의 죽으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만 하면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은 바로 이렇게 왕의 죽으심처럼 그렇게 치료해졌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은 대단히 의욕부단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며 숨어있던 이 공예원이었던 두 사람 아리마데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를 모든 유대인들의 눈총과 비난을 감수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이며 예수 그리스께서 과연 우리의 메시아이며 주님이시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그와 같은 기회가 되기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들도 요원이 증거하는 이 두 사람처럼 우리의 삶도 그와 같은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고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을 나의 마음가운데 주셨고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가운데 말씀해 주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구주이시고 나의 왕이시며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의 삶에서 고백하고 증가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아리마 대사람 요셉과 니고 데모를 통해서 바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에서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며 구세주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그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진정으로 그렇게 예수님을 경비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 십자가에서 바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혼이 그렇게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무엇을 봅니까? 단순히 불쌍하게 죽은 한 사람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모든 사람을 구속하시고 믿는 자들의 주님이 되시고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심판주가 되신다는 것을 리듬으로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삶의 모든 면에서 연약하고 부끄러운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므로 그의 죽으심을 생각할 때마다 성냥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것에 확신을 주시고 용기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증거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리마데의 사람 요셉과 니고 데모처럼 우리 주님을 경배할 수 있는 그런 성도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요 19장 31-42절 성경대로 죽으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Serie 요한복음
ID del sermone | 122188317242 |
Durata | 39:55 |
Data | |
Categoria | Servizio domenicale |
Lingua | corea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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