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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일로 대세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석으로 갔나이다. 왕이여 때가 정원화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며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우라 사우라 내가 어찌하여 나를 빗발하느냐 가시체를 뒷발질하기가 네에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내가 빅박하는 예수라. 일어나 내 발로 서라. 내가 네에게 나타난 것은 곧 내가 나를 본일과 장차, 내가 네에게 나타날 일에 노루 사황과 증인을 사무려하미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의 사함과 나를 밀어 거룩해된 물이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아그리파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슬리지 아니하고, 먼저 탐의 세계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해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다. 하니라. 아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열고 이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가 열을 수도에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이 이 말씀을 깨닫고 이 말씀의 은혜를 저희가 할 수 없겠기에 이 시간 주의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하심을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허락하여 주시며 말씀을 듣는 저희 모두의 마음 가운데 주의의 귀한 영의 음성을 들려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베드로 후서 3장에서 우리가 지난번에 생각한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온다고 하는 그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베드로스 3장 4절에 주에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세상은 항상 똑같이 해가 떴다가 지고 또 우리가 세월이 지나가다 보면 나이가 많아서 약해지고 또 죽고 하는 이러한 것들이 나하고 죽고 하는 것들이 계속 반백되고 있는 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때 다시금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신다고 하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냐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생각하면서 그러나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성경에 분명하게 여러 번 주어진 약속이라고 하는 것을 그 사도들이 전한 그 약속 가운데에서 파울 사도가 대사도니까 전서 4장 16절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오시는 때가 반드시 있다고 하는 약속을 우리가 생각하였고 또한 예수님 스스로 마화복음 13장 26절에서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반드시 볼 것이라고 하신 거짓말하실 수 없는 예수님의 약속을 우리가 생각하였고 또한 유다서 14절에서 아람의 칠세손 에노기 한 예언의 말씀을 우리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많은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실 것을 예언한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선지자들이 그리고 사도들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다시 오신다고 그 주님의 다시 오시는 것은 세상에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한 약속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2천여 년 전에 한번 오시라고 하신 그 약속이 한번 있었다면 그것의 여덟 배 이상의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이 있다고 하는 약속을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인가? 성경은 그것을 네 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첫 번째로 일어날 사건은 죽은 자들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의인과 악인,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이 되는 모든 생명을 가졌던 사람들은 다시금 살아나는 날이 있는데 그때가 언젠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그날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때 의인과 악인이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 다음 계속해서 베드로 후서에 있는 말씀을 내려가다 보면 그때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것이 있다고 성경은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함께 세상 마지막 때 모든 사람이 의인이나 악인이나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 날이 반드시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또한 이 세상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은 끝이 있고 이 세상이 마지막을 맞게 되는 때가 있다고 성경은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끝난 그 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때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되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충만하게 임하는 그날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이 베드로우서 3장 아래 내려가서 7절 말씀을 보면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그 사람들을 보존하여 투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심판하는 그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또 10절을 보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는데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솔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불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상은 끝나는 그 때가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의 약속한 바 새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13절에서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셨을 때 심판이 있고 세상 끝날이 있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새하늘과 새 땅의 그 날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지만 그러나 이 가운데 또한 한가지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은 조성들이 잔 그 상태로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타식음 일어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야 앞으로 계속해서 몇 주일동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일어날 그 네 가지 사건에 대해 가지고 우리가 생각하며 오늘은 먼저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다시금 살아나는 것에 대하여 성경이 증거하는 증거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제 땅속에 묻히게 될 때에 그들이 다시금 그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매주일마다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우리가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우리 생활 가운데 영향을 주고 있는 내가 참으로 다시 살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또한 우리 각자가 살펴볼 문제가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하여 이 당시나 오늘날에 와서나 그것을 믿지를 않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도 믿질 않지만 우리가 다시금 살아난다고 하는 것, 우리가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여서 우리가 한 번은 죽음 가운데 우리의 몸이 땅 속에 묻혀지게 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다시금 살아난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서 우리가 그것을 그저 신조로서는 얘기하기가 쉽지만 그러나 우리 생활 가운데서 그것을 의식하면서 그것에 따라서 그 진리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기에 오늘 우리가 다시금, 의인과 악인이 부활한다, 우리가 다시금 살아난다 하는 그 사실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다시금 살펴보고, 우리 생활 가운데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이 믿지 못할 일이 아닌 우리의 삶 가운데 꼭 붙잡고 이것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약속이며 이것을 의지하고 우리가 살아갈 소망으로서 우리가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사도행전 26장의 사건은 이러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그리파 왕 앞에서 바울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 바울이 자신을 변호하면서 설명하는 것은 내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잡아 죽이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다 거짓말장애로 생각하였다. 어떻게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십사가에 죽었는데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 이야기하느냐. 이러한 거짓말장애들 내가 다 잡아 죽이기를 원하여서 내가 그것을 허락을 받고 그리하여 담의 색으로 내가 올라가면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증거하는 사람들 내가 잡아 죽이려고 올라가고 있었다고 그때의 경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가 죽은 가운데 살아났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가는 그 길에서 다시 살아나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그 경험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운성을 들었습니다.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가 그에게 시키시는 너는 이러한 일을 하고 살아야 된다고 하는 그러한 명령을 그가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것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던 이 사람이 변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서 자기의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냐고 순종하였다고 계속해서 자신의 삶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내가 한 가지로 증거하는 것은 그것은 나의 혼자의 그저 어떠한 환상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이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선지자들과 모세는 그 이야기에 있는 성경을 전체를 뜻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서 반드시 되리라고 한 그것을 내가 말하는 밖에 없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실 이 사건을 내가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을 우리가 읽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만 살아나신 것이 아니고 그는 먼저 다시 살아나셨다. 다른 사람들도 다시금 다 살아날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살아나셨다는 이것을 내가 증거하는 것은 나의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사실이기에 내가 이것을 전할 수밖에 없고 내가 이것을 전하기에 내가 이러한 빗박을 받고 내가 지금 죽임을 당하려고 하는 이러한 자리에 있다고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파울사도가 안타까웠게 아그리파 왕을 향하여서 호소하는 것은 사도행정 26장 8절에서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긴하일까? 하나님께서,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지 못할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까? 안타까워서 질문하던 그 질문을 우리가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바울사도가 우리를 향하여 성령님을 통하여서 알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다시금 살리시는 날이 반드시 있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기에 우리가 이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확실하게 우리의 마음 가운데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그 정확, 무호한 거짓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증거하고 계시는가? 우리가 다시 살 것에 대한 약속들을 한 번 성경 몇 곳에서 같이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경을 열어서 구약의 다니엘서 12장 말씀을 한 번 펴보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 말씀, 여러분 구약 성경 1255쪽이 되겠습니다. 그곳에 보면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여 주시고 계십니다. 땅에서 자는 자들이 깨어날 때가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다음 한번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요한복음 5장 말씀을 사자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5장 신약성경으로 돌아와서 28절부터 보겠습니다. 151쪽이 되겠습니다. 이를 기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죽어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그의 일어나라고 하는 그 음성을 들을 때가 한거할 수 없는 그러한 부름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그리하여 다 의인과 악인이 다 살아나는 그날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읽었을 때, 그러면 우리가 행한 대로 구원을 받고 못 받고 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인가? 그것은 차후에 우리가 다시금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다 일어난다 하는 그 사건입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다 같이 무덤에 계속 남아있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는 때가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을 또 한번 찾아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말씀을 보면 여러분 신약성경 마태복음 25장 31절에 인자가 여기에서 인자는 사람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주의 강림하심에 대하여 다시 오심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모든 사람이, 의인과 악인 모두가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할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심판함을 받는데, 무덤의 잔자들을 포함해서 다 같이 심판을 받기 위하여 다시금 살아나는 때가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하여 파울사도가 페릭스 앞에서 벨릭스 앞에서 고백한 그 고백은 4경전 24장 15절에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하는 그 약속을, 그가 침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이 한 가지로, 어떠한 사도도 빠짐없이 다 같이 가지고 있었던 그 소망은 곧 의인과 악인이 모두가 다시금 살아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그 예언의 말씀, 게시록 20장 12절 말씀을 또한 우리가 찾아가 보면, 성경 맨 끝머리가 되겠습니다. 421쪽에 보면,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이 물온 대소하고 어떠한 사람이든지 그 보좌 앞에 섰는데 다시금 살아나서 그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들이 펴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을 때 그때 어떠한 일이 있는가?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물고기에 잡혀가지고 그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았는데 물에 빠져가지고 그 시신이 다 부패되어서 다 흩어진 것 같았는데 바다가 그 죽은 자들을 다시금 내어주고 또 사망과 운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며 각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사도 요한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거듭 거듭 거듭 모든 사람, 의인과 악인이 모두가 다시금 살아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시금 살아났을 때, 우리의 부활한 몸의 상태는 어떠한 상태로 부활하게 되는가? 그것에 대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증거해 주시고 계시는가? 우리가 성경에서 그 타식음 살아난 사람들의 몸의 상태에 대하여 몇 가지로 또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이 세상에 가지고 있던 이 몸과는 다른 몸으로 부활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형질에 있어서 다른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몸은 점점 약해지고, 연약해지고, 병들고, 우리 삶 가운데 원하지 않는 여러 가지 제약을 주는 이러한 몸이지만 그러나 우리가 다시금 가질 부활할 그 몸은 영광스러운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빌리포스 3장 21절 말씀을 우리가 내려가서 읽어보면,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께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하나님의 그 강력으로 우리의 낮은 몸을, 오늘 가지고 있는 연약한 몸, 저희 어머니께서 안경을 안 쓰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는 이러한 몸입니다. 저도 안경을 안 쓰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연약한 몸입니다. 여러분이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시는 분들, 여러 가지로 몸의 불편함을 우리가 각자 각자 호소하는 이러한 낮은 몸을 우리가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몸을 이제 땅속에 놓이고, 그리하여 그곳에서 우리가 기다렸다가 다시금 살아나는 그날에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신 그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그러한 형체로 우리를 변하게 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부활했을 때 그 몸은 어떠한 몸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을 때 가졌었던 그러한 영광스러운 몸으로 우리가 변화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은 경험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약속으로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 1서 3장 2절 말씀을 우리가 내려가서 읽어보면 요한 1서 3장 말씀, 여러분 신약성경 저 뒤쪽에 390쪽에 있습니다. 요한 1서 3장 2절 말씀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그 부활한 몸으로 우리가 변할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새로운 변화된 몸, 영광스러운 몸, 그러나 또한 성경에서 그 몸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은 그러나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육체와 거기에 서로 상관관계가 있고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그러한 그 몸이라고 또한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활한 몸은 그저 전혀 새로운 그러한 몸이어서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그때 우리를 만나도 전혀 새로운 그러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여전히 우리라고 하는 존재를 나타내는 그러한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참으로 다른 그 영광스러운 몸을 가지신 것을 우리가 먼저 볼 수가 있습니다. 안시구 첫날 저녁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문을 잠가 놓고 아무도 못 들어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에게 편강이 있을지하사 문들을 다 닫아놓고 있는 그 상태에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고 그들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이 알아보았다고 또한 성경은 증거해 주시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2절에 보면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에게 나타나시니 그 부활한 영광스러운 몸은 어느 점에서는 좀 달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금방 알아보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 떡을 떼어줄 때, 그들이 눈이 밝아졌을 때, 그가 예수님인 줄 알아볼 수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그 부활하신 그 몸, 영광스러운 그 몸, 그 몸은 부활하시기 전과 부활하신 후에는 다른 그러한 몸이었지만, 영광스러운 몸이었지만, 그러나 제자들이 볼 때의 아이는 예순입니다. 알아볼 만한 그러한 몸이었습니다. 그 몸은 하늘나라에 적합한 몸이었습니다. 저를 가운데에서 올리워 가셔서,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한 그러한 하늘나라를 위하여 준비된 그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몸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부활한 그 몸의 상태가 새로운 영광스러운 몸이라면 그 몸은 전에 가지고 있던 그 시체와 전혀 관계없이 그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인가? 그렇게 성경은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죽으셨던 그 몸이 누웠던 그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그 시체가 있는데 그 시체는 여전히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몸은 다시금 다른 곳에 나타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오늘 관에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그 육신이 써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이 비는 날이 있습니다. 그들이 죽어있는 그 무덤이 비는 그 날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한가지 도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었던 그 여러가지 흔적들을 그가 또한 가지고 계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후활하신 후에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요한복은 2장 27자리에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내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내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무엇을 말씀하시고 계십니까? 그 상처가 보이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전히 그 못 바뀐 그 손 그리고 그 옆구리, 그 완전한 영광스러운 몸이지만 이 세상에서 수고하신 그 흔적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또한 성경은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부활한 그 몸이 이러한 벽도 없는 문도 없는 그곳을 벽을 통하여서인지 문을 통하여서 그냥 들어오실 수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유령같은 존재가 아니냐. 우리가 그렇게 또한 추측해 볼 수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만져볼 수 있는 그러한 몸이라고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누가 보면 24장 39절에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그 유령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이 살과 뼈가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신비한 몸입니다. 제약을 받지 않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실 수 있지만 또한 만져볼 수 있는 그러한 몸이며 또한 같이 식사하실 수 있는 그러한 몸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였을 때 그때 성경이 증가하는 것은 다시는 배고픔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배고픔이 없으면 그때는 같이 둘러 앉아서 식사하는 그런 재미가 없겠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성경은 잔치에 대하여 항상 말씀해 줍니다. 우리가 부활했을 때, 예수 그리스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수시던 것은 우리가 압니다. 그 고기를 같이 나누어 잡수시던 것은 그들과 함께 즐기는 그리고 함께 같이 그 음식을 나누며 같이 교제하는 그러한 의미에서 그 즐거움으로 그러한 것을 가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생명나무에 열과들이 있어서 그들이 언제든지 다 먹을 수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을 먹지 않으면 죽을까 봐서 배고파서 그리하여 그것을 찾아 먹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먹고 즐기며 그리하여 기쁨 가운데 생활하도록 풍성한 것으로 각가지 그 실과 나무가 열리고 있다고 그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들을 우리가 기억을 합니다. 영광스러운 모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부활하신 그 몸을 바라본 사람마다 참으로 놀라운 그 영광의 광채를 그들이 고백을 합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한 것처럼 단일에서 12장 3절에서 많은 사람을 오른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칠 것이며 지에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다. 의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활한 그 사람들은 의인들 가운데 그들에게 영광스러운 몸이 있을 것을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것이냐? 다 썩어서 먼지로 돌아간 그 몸 가운데에서 거기에서 어떻게 영광스러운 몸이 다시금 생겨날 수가 있을 것인가? 또는 물속에 빠져가지고 모든 것이 다 녹아버렸다면 또는 불의 퇴물을 받아가지고 그가 죄가 되어서 다 흩어졌다면 거기에서 어떻게 다시금 영광스러운 몸이 날 수가 있다는 것인가. 그러하기에 부활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우리가 이야기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사건을 가늠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요즘에도 우리가 한국에서 황우석 교수님과 그분이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한 것들을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줄기세포가 뭔가 그랬더니 요 근래에 TV에서 어린아이가 어떻게 생겨가지고 처음 세포가 하나였다가 그것이 둘로 갈라지고 그 다음에 세포들이 점점 여러 개가 되다가 한 상태에 왔을 때 그 세포가 어떠한 세포든지 어느 장기든지 갈 수 있는 그 세포를 줄기세포로 한다. 뭐 이러한 설명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세포가 어떤 것은 심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두뇌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발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이 세포가 한 가지 줄기세포지만 이것은 어떠한 장기로도 만들 가능성이 있다. 뭐 이렇게 설명하는 설명을 들어보았을 줄기세포가 그런 것이구나 하는 그러한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요즘 과학자들이 그런 것을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들이 영화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주라식 팍이라고 하는 그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마 그런 것들을 공상으로 얘기하는 것들을 보았을 것입니다. 옛날에 공룡의 알을 어디서 찾아가지고 거기에서 그 조그만 세포를 하나 띄워가지고 그것으로 어떻게 클로닝을 해가지고 복제를 해가지고 그래서 거기에 주라식 세대에 있던 여러가지 공룡들이 같이 살게 하는 그러한 동물원을 만들어가지고 거기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한 것을 영화로 만든 것들을 우리가 요즘에 볼 수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그러한 어떠한 세포 하나로 어떠한 동물을 또는 사람을 복제할 수 있다고 할 때는 그것은 가능성이 있겠구나. 앞으로 연구를 하고 하면 앞으로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서 생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똑같은 사람의 생명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인간의 몸이 만들어지는가 하는 과정을 보여줄 때 참으로 기묘하고 놀라운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웁게 신묘 막측하게 우리의 지금 가지고 있는 이 연약한 육체를 만드시는 것만 해도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기가 막힌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가지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서 우리로 하여금 오늘 이러한 몸을 가지고 살게 하실 수가 있다면 하물며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죽은 몸을 다시금 영화롭게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나님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에 너희가 오해하였다고 예수님께서 설명하신 그 설명을 우리가 기억을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우리로 알고 말게 하시기 위하여 오늘날 계속해서 이러한 것들을 우리 주위에서 보여주십니다. 여러분들이 봄의 씨를 심습니다. 씨를 심은 후에 여러분들이 그걸 흩어서 보면, 그 씨는 썩어서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놔두면 거기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씨와 나무의 모양은 전혀 다릅니다. 형체나 여러가지 본질 면에서 씨와 나무의 그것은 전혀 달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씨가 영광스러운 나무가 되고 거기에서 수없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연약한 몸이 죽음에 심기게 되면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다시금 더 영광스러운 몸을 만드셔서 부활케 하시는 그것이 왜 어려운 일로 보이냐고 그 사도 바울은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하여 하나님이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고 사람의 육체도 있고 짐승의 육체도 있는 것처럼 새의 육체도 있고 물고기의 육체도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 연약한 육체로 심어서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거둘 날이 반드시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날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다시금 살리는 날이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이것을 기억을 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가 이 사람은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가 이 사람은 전형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사람은 불그자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사람들, 그리하여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에 그저 가볍게 대해도 생각한다고 하는 이러한 사람들, 그 육체가 변할 날이 있습니다. 완전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들의 정신이 완전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들의 감기 눈이 뜨는 날이 있습니다. 그들의 저는 발이 완전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들의 연약한 몸으로 심어서 그들이 완전한 몸으로 다시금 살아나는 그날이 있고, 그날 여러분들이 그들과 만났을 때 오늘 여러분들이 한 그 일을 또한 기억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죽은 사람들이 무엇이딴 일을 기억할 것인가? 누가 보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해 주실 때 그 부자가 고난 가운데서 고통 가운데서 얘기할 때 너는 기억하라고 하는 것을 여러 번 말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너는 땅에 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 또 그 사람이 그 부자가 땅에 있는 자기 형제들을 염려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또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죽은 후에 다시금 우리가 살아나는 그날에도 우리가 이 땅에서 한 일들을 기억함이 있을 것을 성경은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지금 눈에 보이는 대로 그들의 연약한 대로 그들을 우리가 가볍게 생각하고 한 번 죽으면 끝날 것으로 혹시 생각하면서 우리가 대하고 생활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은 연약한 몸으로 있습니다. 각자 연약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어서 우리의 죽은 시신이 땅으로 들어가는 그날이 있지만 또는 불에 태워 재가 되는 그날이 있지만 또는 우리가 바닷속에 빠져서 그 시체가 찾을 수 없는 그러한 곳으로 들어갈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바다가 우리를 내어주는 날이 있고 땅이 우리를 내어주는 날이 있고 우리가 다시 사는 날인데 그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광스러운 그 몸으로 다시 살아남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바울 사독에서서는 타협할 수 없는 이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그러한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라 한 이 복음.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분명한 그리고 그 삶의 변함없는 진리로서 붙잡고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 따라서 우리가 생활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삶은 이 땅에 잠시 연약한 몸을 먹이기 위하여서, 입히기 위하여서, 그로하여금 즐겁게 하기 위하여서 그것만이 우리의 삶이라면 우리는 지혜롭지 못하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의인과 악인이 다시금 살아난 날이 있고 영광스러운 가운데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가 같이 옷 입는 날이 있다고 한다면은 그날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날을 준비하며 또한 그러한 영광스러운 곳에 다른 이들을 인도하며 살아가는 삶 이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잠시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곁을 떠나가고 있고 그때마다 우리가 슬픔 가운데서 또는 절망 가운데서 외로움 가운데서 저희가 지내기 쉽지만은 그러나 이는 잠시 헤어짐이며 그들과 함께 영광스러운 날들이 반드시 있으며 우리가 연약한 것으로 심었지만은 하나님께서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금 거두게 하시는 그날이 있다고 말씀하시기에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주의하게 하여 주시면 영원을 생각하며 저들을 대하게 하여 주시면 또한 이러한 영원한 생명을 영생의 길로 영광스러운 것으로 인도할 수 있는 복음의 전도자로서 저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의인의 부활에 참석할 그러한 자리가 준비되지 않은 영혼들이 이곳에 있거든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여 주시며 그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니바. 다시금 영혼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지혜를 저희 모두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ising from the Dead (Korean)
Identifiant du sermon | 61405191430 |
Durée | 41:15 |
Date | |
Catégorie | Dimanche - matin |
Texte biblique | Actes 26:12-23 |
Langue | coré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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