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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 공동관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 성경 11기상 20장 20절부터 22절까지를, 21절까지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11기상 20장 1절에서 21절까지를 읽도록 하겠습니다. 구역 성경 550조 11기 상 20장 1절에서 21절까지를 제가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아람에 베나단 왕이 그의 군대를 다 모으니 왕 32명이 그와 함께 있고 말과 병거들이 있더라. 이에 올라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그곳을 치며 사자들을 성 안에 있는 이스라엘의 앞 왕에게 보내 이르기를, 베나다시 그에게 이르되, 내 은금은 내 것이오,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며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매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이니라 하였더니 사신들이 다시 와서 이르되, 베나다시 이르노라, 내가 이미 내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너는 내 은금과 아내들과 자녀들을 내게 넘기라 하였거니와. 내일 이맘때에 내가 내 신하들을 내게 보내리니 그들이 내 집과 내 신하들의 집을 수색하여 내 집이 기뻐하는 것을 그들의 손으로 잡아 가져가리라 한지라. 이에 이스랄왕이 나라의 장로를 다 불러 이르되 너희는 이 사람이 약을 동무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라. 그가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과 내 음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내게 보냈으나 내가 거절하지 못했노라. 모든 장로와 백성들이 다 왕께 아뢰되 왕은 듣지도 말고 허락하지도 마옵소서 한지라. 그러므로 왕이 베나닷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주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나이다 하라 하니 사자들이 돌아가서 보고하니라. 그때 베나다시 다시 그에게 사람을 보내요 이르데 사마리아에 부스러진 것이 나를 따르는 백성의 무리에 손에 치우기에 촉할 것 같으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하며 이슬 왕이 대답하요 이르데 갑옷 입는 자가 갑옷 벗는 자 같이 자랑하지 못할 것이라 하라, 하니라. 그때 베나다시 왕들과 장막에서 마시다가 이 말을 듣고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진영을 치라 하며 곧 성읍을 향하여 진영을 치니라.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요하의 말씀이 내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내 손에 넘기리라. 너는 내가 여화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비이르데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시리까? 대답하되 여화의 말씀이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로 하리라 하셨나이다. 아비이르데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까? 대답하되 왕인이다. 아비이에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개수하니 232명이오. 그 외의 모든 백성 곧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을 개수하니 7,000명이더라. 그들이 정오에 나가서 베나닷은 장막에서 돕는 왕 32명과 더불어 마시고 취한 중이라. 각 지방에 고간의 청년들이 먼저 나갔더라. 베나닷이 정탐군을 보냈더니 그들이 보고하여 이르데 사마리아에서 사람들이 나오더이다 하며 그가 이르데 화치나로 나올지라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올지라도 사로잡으라 하니라. 각 지방 고간의 청년들과 그들을 따르는 군대가 성읍에 들어가서 각각 적군을 쳐죽임에 아람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이스라엘이 쫓으니 아람왕 베나다시 말을 타고 마병과 덕으로 도망하여 피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나가서 말과 경고를 치고 또 아람사람을 쳐서 크게 이겼더라. 먼저 잠시 하나님 앞에 말씀의 은혜를 구하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을 여전히 다스려주시고 주님의 은혜로 저희를 채워주셔서 하나님을 향한 감사하는 마음과 또 찬성하는 마음으로 저희가 이 주일날에도 예배의 자리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성하고 또 하나님 앞에 경배하며 영광을 돌릴 때에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흐명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이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주의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실 때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깨달게 하옵소서. 성경을 기록해 하심은 저희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사오니 오늘도 기록된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시고 저희 영혼의 양식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사랑하는 성도들 가운데 함께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어느 곳에 있든지 주께서 돌아와 주시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질병으로 인해서 함께하지 못한 성도들이 있사오니 하나님 잘 회복되도록 주께서 강관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또한 혹여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하나님 기억하여 주시사 생명의 길로, 영생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도 부족한 종이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단에 섰사오니 급률히 여겨 주시고, 말씀에 은혜와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은 11기상 20장 말씀을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열한기서가 어떤 책인가를 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넥체인 성경 읽기표를 따라서 여러분 성경을 읽어나가시면 열한기상을 읽고 계실 텐데 열한기상은 도대체 어떤 책인가? 열한기서는 이스라엘 유다의 모든 왕들에 대해서 기록한 역사 책입니다. 공교롭게도 남한국에도 20명의 왕이 있었고 북한국에도 20명의 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합 40명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열한기서입니다. 열한기서는 바위세 통치 마렴인 주전 10세기 초부터 남유다가 멸망을 당하는 주전 6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400년의 역사 동안에 40명의 왕들이 통치를 했는데 그 왕들에 대한 기록이 바로 열한기상, 열한기하입니다. 그렇다면 열한기서는 왜 쓰여졌는가? 궁극적으로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쓰여졌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요. 왜 이스라엘은 하나의 나라였는데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첫 번째 열한기서의 목적이고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난한 땅에 들어왔는데 왜 북이스라엘은 아수르에 의해서 멸망을 당해야 했는가? 또 남유다는 왜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 바로 열한기서입니다. 열한기서가 이 질문들의 답을 할 때는 기준이 있는데요. 모세오경이라고 하죠.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 창세기, 출애국기, 래위기, 민숙이, 신명기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부릅니다. 모세가 썼다고 해서 모세오경이라고 부르는데 이 모세오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에 얼마나 신실했는가 국왕국은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이 얼마나 신실했는가. 또 남왕국은 얼마나 신실했는가. 또 각 왕들을 평가할 때도 모세오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이 항상 기준이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이 열한기 상화를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가 기록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데요. 충분한 근거는 없습니다만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해서 만일 예레미야가 이 열한기 상화를 기록했다면 바벨론 포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방 땅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왜 우리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론 이 먼 이방 땅까지 와서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해야 했을까를 이 열한기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죠. 어떻게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를 열한기상과 하는 그들에게 답을 주었던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열한기상 1장부터 11장까지는요. 왜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통일왕국이 분열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인데요. 여기에 보면 다위세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하고 통치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부암 때의 남한국과 북완국으로 이스라엘이 분열되지 않습니까? 이 분열의 표면적인 이유는 솔로몬의 폭정이라고 그렇게 기록하고 있는데요. 솔로몬의 폭정과 또 솔로몬의 아들 르호부암의 무능력함입니다. 그러나 11기상 1장부터 11장까지 잘 읽어보시면 솔로몬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주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그려지죠. 더없이 인재하고 의롭고 지혜로운 왕으로 솔로몬이 그려지는데 그러나 그의 통치 후반에 가면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은 우상, 승부의 죄에 빠지게 되는데 바로 그것이 남한국과 북왕국으로 이스라엘이 분열되는 원인임을 11기상은 밝힙니다. 그리고 이제 11기상 12장부터 11기의 마지막 장까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의 이유를 밝힙니다. 근데 참 안타깝기도 하고 충격적인 이유는 남왕국에도 20명의 왕, 북왕국에도 20명의 왕이 있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북왕국의 20명의 왕들 가운데 한 사람도 의롭고 경건한 왕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이스라엘의 열집화가 북이스라엘을 형성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20명의 왕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경건한 왕이 없었다는 거예요. 우리가 숫자로 보면 12지파 가운데 10지파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렸으니 훨씬 더 힘이 있고 능력 있는 나라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이 남유다보다 먼저 멸망을 당합니다. 130년 전 북이스라엘이 먼저 멸망을 당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열한기에서는 우리에게 알게 해줍니다. 남유다에는 경건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 왕들의 그런 선한 영향력을 통해서 남유다는 130년이나 더 존속할 수 있었는데 그러나 결국에는 남왕국의 왕들도 북이스라엘의 길을 걸어가면서 남유다가 주전 586년 바벨론에서 멸망을 당했음을 열암의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저는 열암의사가 어떤 책임가를 간략적으로 말씀을 드렸고요.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합이라는 왕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어떤 왕이었을까요? 이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끌어들였던 여러보암이라는 왕이 있습니다. 로호보암, 여러보암 이름이 비슷하죠. 솔로몬의 아들 로호 보암 때 남과 북으로 이렇게 이스라엘이 나누어졌는데 이 열 집파를 받아서 북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왕이 여로 보암입니다. 이 여로 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를 끌어들인 왕입니다. 금송화지 우상을 배들과 단에 세워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알고는 하나님이 아닌 금송화지를 섬기게 했는데 여러 부함 이후에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되는 사람이 바로 아합입니다. 이스라엘에 많은 악한 왕들이 있었습니다. 경건하고 선한 왕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 중에서도 가장 악한 사람을 뽑으라면 첫 번째는 여러 부함이고 그 다음이 아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아합은 그 안에 이세벨이라고 하는 이방 여인과 함께 부이스라엘의 발과 우사 발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도록 그렇게 촉구했는데요. 심지어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임으로써 북이스라엘땅에서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말살 시키려고 했던 사람이 바로 아합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 아카랑 아합의 시대에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엘리아라고 하는 선지자를 보내줍니다. 우리가 구양 역사에 보면 많은 기적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엘리아와 엘리사 시대에 기적이 나타났을 뿐 다른 선지자들은 기적을 행하는 그런 능력들은 없었는데요. 그 모든 기적들이 언제 있었냐면 아하베 통치기관에 있었다는 것은 참 놀라운 것입니다. 엘리아가 칼멜산에서 바할과 아세르를 섬기던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과 대결을 펼치죠. 정말 능력 있는 선지자였습니다. 근데 이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서 한탄하는 그 탄식이 11기상 19장 10절에 잘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렇게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탄식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함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원약을 버리고 주의 재단을 헐었으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하나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이제 나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라고 엘리야가 하나님한테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앙인들을 다 멸사를 다 몰아내고 그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다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바로 아합이라는 왕이었습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요. 하나님께서는 왜 악한 왕 아합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아합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죠. 왜 하나님은 이 악한 왕 아합에게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용을 좀 설명하기 위해서 11개상 20장의 스토리를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람의 왕이었던 북이스라엘 이웃에 있었던 아람이라는 나라의 왕 베나다시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를 쳐들어옵니다.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라 32명의 왕과 함께 쳐들어옵니다. 그 당시 아람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겠죠. 이 32명의 왕들은 아마도 아람에게 조공을 바치는 그런 왕들이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이 미워서가 아니라 아람 왕이 무서워서 전쟁에 참여했던 그런 사람들로 보이죠. 베나닷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아합과 그의 백성들을 위협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3절과 4절 말씀인데요. 내 은금은 내 것이오 내 아내들과 내 자녀들의 아름다운 자도 내 것이니라 하며 이스라엘 왕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네 주 왕이여 왕의 말씀같이 나와 내 것은 다 왕의 것입니다 하였더니 사마리에 쳐들어와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스라엘 왕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이스라엘 왕이 바로 아합입니다. 아합은 굴욕적인 태도로 베나닷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베나닷은 이러한 상태에서 조공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 담대하게 아합에게 이렇게 6절에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모든 이스라엘의 집에 들어가서 자기 신하의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물건은 내가 다 가져가겠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이 말은 사실상 사마리아를 베나다 자신이 직접 통치하겠다라고 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조공을 바치고 섬기는 것으로 그렇게 만족하지 않고 내가 직접 사마리아를 다 다스리겠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아합은 이제 나라의 장노들을 청해서 의논합니다. 그랬더니 장노들과 백성들이 이런 굴욕적인 그런 일은 왕이 동의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죠. 그래서 이제 거절 의사를 밝히게 되는데요. 근데 여러분 이 아람이라고 하는 나라가 그렇게 강력한 나라였는가를 생각해 보면요. 그렇지 않아요. 얼마 전 다이드 왕 때에는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치던 나라가 아람이었습니다. 다위시 정복하고 그 아람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던 그런 연약한 나라가 바로 아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아람이 이렇게 강력한 나라가 된 것입니까? 만일 북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 이런 굴욕적인 일은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죠.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서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면 우리의 능력도 상실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가장 강력하고 우리가 가장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일할 수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 안에 있을 때입니다. 유한복음 15장에 보면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렇게 말씀하시죠.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트리고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이고 한 사람도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그 죄악 가운데 빠지니까 예전에는 자신의 그런 자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던 그 나라에 굴욕을 당하고 이렇게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절에 보면요. 왕이 베나닷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직접 베나닷이 사마리아를 통치할 수는 없다라고 하는 그런 부드러운 말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구절 말씀은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베나다스의 사신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내조 왕께 말하기를 왕이 처음에 보내 종에게 구하신 것은 내가 다 그대로 하려니와 이것은 이것이라는 것은 2차 요구죠. 내가 사마리를 직접 통치하겠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아이다 하라. 베나다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거절 의사를 밝히는데 베나다시 이 아베 거절에 대해서 격노하면서 사마리아를 가로로 만들어 버리겠다. 멸망시켜서 가로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여러분 이때 아베의 마음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가장 강력해 보이는 이 아람이라고 하는 나라의 왕 베나다시 와서 사마리아를 다 가로로 만들어 버리겠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이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한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나아가서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내 손에 넘기리니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하나님 앞에 도움을 구하며 기도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압을 보시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이 열한기상 20장이 있어서 이 본문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하면 선지자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열한기상 20장에만 4번이나 하나님의 선지자가 출연하는데요. 13절에 나오고 22절에 나오고 28절에 나오고 38절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아합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라고 하는 그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아합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먼저 선지자를 보내주십니다. 이번에도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서 아합왕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나닷의 군대를 대적해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시는데요. 각 지방의 고관의 자녀들 232명이 앞에 나가서 전쟁을 시작하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아하광이 직접 7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베나다스의 군대를 맞아 싸우라. 그런데 여러분 이 전쟁이 얼마나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승산이 없는 전쟁인지 아십니까? 베나닷은 32명의 왕을 데리고 전쟁을 하러 왔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맞서는 아하베 군대는 몇 명입니까? 7천명이에요. 그런데 만일 왕들이 베나닷이 무서워서 억지로 전쟁에 참여했다면 많은 군대를 데리고 왔겠죠. 만 명만 데리고 왔대도 32명이면 얼마입니까? 30만이잖아요. 5천만 데리고 왔어도 15만입니다. 근데 아하베 군대는 지금 만 명이 안 돼요. 7천명밖에 안 되는 거예요. 열몇 배가 넘는 그 군대와 전쟁을 해서 이긴다? 오늘날에는 무기라든지 전쟁 장비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제레식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도 최첨단의 무기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승리하죠. 근데 그 당시에는 최첨단이라고 하는 그런 무기라는 게 뭐 있습니까? 뭐 칼과 활로 싸우는 시대인데 얼마나 많은 병력을 동원했는가가 결국 전쟁의 승표를 결정하는 그땐데 7천명으로 수십만, 십만이 넘는 병력을 맞아서 싸운다는 것은 거의 승산이 없어 보이는 그런 전쟁입니다. 그 전쟁을 주의해야 되는 압의 마음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압에게 승리의 약속을 주시는데 이것은 아압과 7,000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수화 같은 것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이 싸움에서 이기게 해주신다고 말씀하잖아요. 거짓 선지자도 아니고 아마 이 선지자는 미가야 선지자였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이 이야기하는데요. 저도 그렇게 동의합니다. 아압이 싫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했던 선지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이 미가여거든요. 아마 미가여를 보냈기 때문에 아합은 의심치 않았을 거예요. 이번에도 자신에게 흉하고 나쁜 이야기를 전해줄 것 같았는데 그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니까 너희가 전쟁에서 이긴다 하니까 한 사람이 말이지만 아합이 그것을 완전히 믿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대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20절과 21절이죠. 본문을 제가 다 읽진 않았지만 1차 침공에서 실패한 베나닷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죠. 아무리 군사적인, 전략적인 그런 실패가 있었어도 수십만의 군대를 동원했는데 7천명에게 패배한 베나닷은 그것으로 북이스라를 침공하는 것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신하들과 함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새로운 계략을 얻어내게 되는데 베나닷의 군사 전문가들이 베나닷에게 제시하는 두 가지는 첫 번째는 전쟁의 장소를 바꾸자. 산에서 싸우고 있으니까 이제는 골짜기에서 싸우자 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전략가로서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거죠. 지형을 바꾸자. 전쟁의 싸움들을 바꾸자. 그리고 두 번째는 전쟁의 주의관들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실전 경험이 부족했을 왕들이 아니라 정말 많은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장군들로 전쟁을 주의하게 하자. 그러면 이번에는 반드시 북위세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뀐 다음에 더 많은 그런 군대를 동원해서 2차 침궁을 감행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역시 하나님께서는 아하베에게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28절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나와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아람 사람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오 골짜기의 신은 아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내 손에 넘기리니 너희는 내가 요아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니라. 여러분 이 두 번째의 상황을 열한기상은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데 27절에 보면요. 처음보다도 더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쟁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도 소집되어 군량을 받고 마주나가니 그들 앞에 진영을 치니 이스라엘 자손은 두 무리의 적은 염소떼와 같고 아람 사람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적군은 그 땅에 가득했는데 이스라엘이 전쟁을 준비한다고 준비했지만 두 무리의 적은 염소떼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근데 하나님은 이번에도 아합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던가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며 엎드렸다는 그런 기록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아베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셔서 이번에도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내 손에 넘기리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더 큰 승리를 주십니다. 1차 전쟁보다도 더 큰 승리를 얻게 하시는데 그래서 배나 다시 회복되지 못합니다. 베나닷은 완전히 2차 전쟁에서 패배를 당해서 아합 앞에 엎드려서 목숨을 구걸하게 됩니다. 31절입니다.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들은 적 이스라엘 지배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 하니 만일 우리가 굵은 배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의 왕에게로 나아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릴 이다 하고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철저한 패배를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러한 열한기상의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아합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선한 엄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원약을 깨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말살하려고 했던 악한 원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 아베에게 지속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까? 여긴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요. 아람 왕 베나다세 교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참 싫어하시고 혐오하십니다. 아베 우상 숭배의 죄는 나중에 심판하십니다. 상 20장 2호를 읽어보십시오. 우상 숭배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시는데 그러나 베나닷의 교만을 당장에 심판하신 것입니다. 베나닷이 얼마나 교만했는지 한때는 이스라엘에게 조금을 바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좀 힘이 있다고 그가 얼마나 교만하고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그렇게 자만했는지 본문에 보면 12절과 16절에 보면 전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32명의 왕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미리 승리를 자축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교만에서 나온 것이죠. 아직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먼저 승리를 자축하면서 술에 취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전쟁에서 술이 취한 채 도망갔죠. 그것은 그의 교만함을 드러내는 것인데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의 공통된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일까요? 우리 또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베나닷을 심판하신 것, 아합의 우상 숭배보다도 그의 교만함을 먼저 심판하셨다라고 하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교만하지 않는가? 우리는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가? 교만은 폐망의 선봉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두 번째는요. 왜 하나님께서 아베게 거듭된 은혜를 베푸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에게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합이 두 번째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는데 두 번째 전쟁에서 아합의 군대에 죽임을 당한 사람이 10만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또 2만 7천 명의 병사들이 남아서 아백이라고 하는 성흡에 이렇게 숨었다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벡이라고 하는 성읍은 어떤 성읍인가 하면 튼튼한 성벽으로 잘 요새화된 성읍으로 알려져 있는 성읍입니다. 그런데 2만 7천 명이니까 아베 군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군대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충분히 베나다시 회복할 수 있는 그런 마지막 그런 기본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본문 30절에 보면 2만 7천명의 베나닷의 남은 군사들이 성벽에 깔려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튼튼한 성벽, 열의구성처럼 그렇게 튼튼한 성벽을 갖추어서 잘 유세화된 그런 성읍으로 알려져서 베나닷이 그 성읍에 들어가서 숨었는데 성벽이 무너져서 2만 7천명이 죽었다는 것은 어떠한 추측이 가능하게 합니까?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이죠.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튼튼한 성벽이 무너져서 2만 7천명이 깔려 죽은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이 두 번째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우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한 아압에게 이와 같은 승리를 주시는가, 이와 같은 은혜를 베푸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요. 아압은 이러한 호의를 입기에 전혀 합당하지 않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볼 때에도 아압은 이와 같은 은혜를 받기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아압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아압의 의로움이 아닙니다 그가 어떤 자격을 갖췄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러한 아압을 보면서 하나님이 유독 아베에게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그 시대의 아베에게만 이런 은혜를 베푸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정해 주시는구나 하는 것이죠. 압은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제 다음 장을 보세요. 21장을 읽어보세요. 궁금하신 분들은 압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갑니까? 아, 내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문제가 없구나. 내가 자격이 있구나. 내가 은혜를 받을만 하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은 우리 삶을 인정하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마합의 순종과 충성을 받으실 만한 하나님이심을 마합에게 알리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원약에 충성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사실을 깨달게 되었을 것입니다. 7,000명의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에서 나온 가장 믿을만한 장전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싸우시며 큰 승리를 이루게 하신 것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지자들 핍박하고 박해했지만 하나님이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니 이것을 깨달고 돌이켜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되겠구나. 이 사실을 알리시려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28절에 보면, 하반절에 보시면, 너희는 내가 여우아인 줄을 알리라. 내가 은혜로운 하나님, 자비로운 하나님인 줄을 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길을 계속해서 가도 좋다. 네 삶을 내가 인정한다. 너는 내 앞에 의롭다. 너는 은혜를 받기에 자격이 있다라고 하는 그런 사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길을 걸어가는 아압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며 내가 여호와인 줄 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열한계의서를 예레미야가 썼다고 이렇게 유대전승에 전해지는 것처럼 그것이 사실이라면 후일 바벨론에 붙잡혀가서 유대 백성들이 이 말씀을 읽게 되었을 때 얼마나 마음에 통탄했겠습니까? 우리 나라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이렇게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구나. 이렇게 많은 기회들을 우리에게 주셨구나. 그런데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가 받을만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돌이키지 못했구나. 그래서 이런 멸망을 당했구나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 얼마나 통분히 여겼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습니까? 우리를 향해서 그 얼굴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것이 꼭 하나님이 내 삶을 인정하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죠. 근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제 삶에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내가 자격이 있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전 자격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내가 이대로 계속 살아도 좋겠구나라고 하는 싸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모상을 버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들의 우리의 마음과 시간을 쓰며 살았던 우리의 삶에서 돌이켜서 하나님 가까이로 나아가라고 하시는 그런 기회를 주시기 위함인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음이 없고 이 은혜야말로 우리를 회개케하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2장 4절 말씀을 제가 읽고 설계를 마치겠습니다. 혹 내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기리 참우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심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 앞에 더욱 순종하고 충성하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을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도 또 11개 기록되어 있는 많은 왕들의 삶을 볼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받기에 과분할 정도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 이 모든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헛되이 여기게 되었을 때의 그 삶은 비참한 결과로 마무리됐던 것을 봅니다. 하나님, 그런데 이러한 은혜가 여전히 우리의 삶에도 베풀어지고 있음을 저희들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자격이 없지만 우리가 의롭지 않고 고룩하지 않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에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기회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배우게 하셨사오니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 앞에서 또 한 사람 아와비라고 하는 그 인생을 우리가 생각해 보면서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여주옵시고 하나님 앞에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오늘도 이 말씀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합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
Identifiant du sermon | 102823175345819 |
Durée | 43:27 |
Date | |
Catégorie | Service du dimanche |
Texte biblique | 1 Rois 20:1-21 |
Langue | coré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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